유시민 작가의 말을 듣다가...
"권력도 영향력도 없는 진실은 광장에서 박수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이라면, 언젠가 누군가의 폐허 속에서 다시 문장으로 피어난다." - Carpenwriter -
권력도 영향력도 없이 끊임없이 쓰고 말하는 자는 그것을 얻고자 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해도 계속 쓰게 된다면 그 자는 권력과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쓰고 말하며 자신 안에 새로운 자신들을 발견하는 환희와 즐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죽음 이후에 비로소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그때의 영향력은 소멸되지 않고 영원하다.
얼마 전 유시민 작가의 ABC 논쟁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누군가(정치인 or 언론인)가 그가 권력을 이용해 대중을 선동한다고 말했다. 그 자는 권력과 영향력을 구분할 줄 모르는 자가 분명하다. 그런 자들은 보통 유시민과 같은 문해력이 뛰어난 자 앞에서 1:1로 토론하면 꼬리를 내리게 된다. 유시민은 자신의 언어로 영향력을 얻은 인물이다.
권력은 사회 조직과 교육 기관이 부여한 자격과 학위 그리고 이해관계로 얽힌 공동체 속에서 주어지는 자리(직위, 직권)가 만든 힘이다. 이 힘은 권위를 가지고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으며 상대의 동의 없이도 그것을 관철시키고 작동시킬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진다. 하지만 영향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건 누군가 특정인(권위자)이나 단체로부터 주어지는 자리 나 지위가 아니다. 이건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동의(이성적 - ex. 유시민)와 공감(감성적 - ex. 김영하)의 누적된 총합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 부여하는 아우라 같은 것이다. 이것이 영향력이다.
권력은 불특정 다수의 동의나 공감이 없이도 얻을 수 있다. 권력은 영향력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비교적 덜 든다. 시험에 응시해 자격을 취득하고 학위를 얻으면 그 즉시 권위와 권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영향력은 그렇지 않다. 이건 오랜 시간의 일관된 언행의 축적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고 점진적이며 견고하다. 반면 권력은 기회와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권력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정권은 한순간에 교체되지만 민족의 정체성이나 기업과 사회 문화는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다만 권력은 그것을 쥐는 순간부터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것에 취하면 통제력과 강제력의 힘을 동원해 대중의 동의와 공감을 무시하고 그것을 지속하려 한다. 독재와 파시즘이다.
"권력과 영향력은 다른 것이에요."
물론 유시민의 말이 틀리진 않지만 단 변화의 가능성은 다분하다. 유시민은 현재 권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자는 언제나 권력을 가질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있다. 그건 대중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시민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금은 맞지만 그것이 계속 유효할지는 그가 죽을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 그가 작가로 남고자 한다면 권력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권력을 가진다면 그의 날 선 말과 글이 칼을 쥐게 될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유시민이 작가와 비평가로 남길 바란다. 그럼 언젠간 그를 부러움이 아닌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그는 정치인과 언론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사상가의 모습을 띄고 있다. 사상가의 말과 글은 아주 이성적이고 또한 냉철하다. 사회에 이슈를 던지고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 논쟁은 그 사회가 직면해 있지만 우매한 대중들과 가식적인 정치인들에 의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비평가과 사상가들은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그렇게 대중을 일깨우고 보이지 않던 가려지고 외면되었던 생각들을 불러내어 다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는 그런 류의 글과 말을 보고 들으면 다소 흥분된다. 지금 쓰는 글은 그 흥분된 감정을 이성의 글로 가라앉히고 있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유시민 작가는 감정이 풍부하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일 것이다. 글은 말을 정제하고 절제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의 매력이 감정이 이성에 의해 절제된 감성적 표현이라 생각한다. 유시민은 감정이 이성에 의해 절제된 이성적 표현의 작가일 것이다.
권력도 영향력도 없이 계속 쓰는 자
나는 권력도 영향력도 가지지 않은 글쟁이일 뿐이다. 권력도 영향력도 없이 계속 쓰면 어떻게 될까... 대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야 맞을까. 내가 거의 10년째 글을 써오면서 느낀 점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새벽이면 글을 쓰고 쓴 글을 또 퇴고한다.
나는 사실 책 보다 내 글을 더 많이 읽는다. 작가인 동시에 독자이다. 쓴 글을 출판사에 투고하고 공모전에도 보내기 위해 읽고 또 읽는다. 무응답과 수많은 거절의 회신에 익숙해진다. 나는 많은 일을 겪고 느끼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명작가의 일상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글과 말을 평가하기 전에 그 말의 출처를 먼저 본다. 누가 말했는가. 그 사람은 유명한가. 직업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의 말과 글을 듣고 읽는가. 인간 사회는 그 생각보다 자주 내용이 아닌 그 위치를 더 중시한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학위와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에 열을 올리는지는 이와 연관이 깊다. 학위와 자격증이 마치 인성과 품성을 대변한다.
"왜 책을 읽으세요?"
언젠가 독서 모임에서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다들 각자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지식 습득, 흥미, 자기 계발, 허영심 등등 책은 여러 이유와 목적으로 읽힌다.
“저는 쓸려고 읽어요.”
나는 쓰기 위해 읽는다고 말했다. 물론 읽지 않아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읽지 않는 자의 글은 깊이가 얕고 넓이가 좁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나의 글에 권위를 쑤셔 넣기 위해 책을 읽는다. 권력과 영향력이 없는 작가의 글이 무시를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수년간 독후감을 써왔는지는 이와도 연관이 깊다. 고전과 베스트셀러 속의 한 문장이 나의 글에 힘을 실어 준다. 그렇게 무명작가는 유명 작가의 권위에 기대어 일어선다. 기생충 같아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 그 유명작가도 그렇게 성장했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지껄이냐?"
맞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옳은 소리를 할 수가 없다. 이상하지만 진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옳은 소리나 맞는 말을 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거나 볼품없는 직업을 가졌거나 행색이 초라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에밀리 디킨스 시에 나오는 글귀 혹은 프란츠 카프가가 했던 말 아니면 페르난두 페소아의 산문에서 발췌한 문장이에요라고 하면 그들은 나의 말과 글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웃긴 사실은 방금 언급한 이 세 명의 작가도 살아생전에 이런 무시와 괄시 속에 평생을 살았던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죽고 난 후에 그들의 작품이 세상에 드러나고 고전이 되었다. 영향력은 종종 죽고 난 뒤에 생긴다. 그런 영향력은 더 크다.
진실은 검증된 매개체를 원한다. 지금과 같이 콘텐츠(글, 이미지, 영상)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검증되지 않은 소리를 모두 소음을 여기기 쉽다. 누군가는 맞는 말을 했지만 피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지만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으로 남는다. 공동체는 종종 정의와 공정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적당히 넘어가는 침묵을 선호하고 편의와 타협으로 유지된다. 그 침묵과 편의와 타협을 건드리는 자는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그자와 가까워지려면 다수와 불편해짐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다수의 편에서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존 본능이고 대중 심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건…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 쓰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에 완전히 포획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향력이 오지 않더라도 내면에서 울리는 진실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도 듣지 않는 밤에도 문장을 세우는 이유는, 그 문장이 당장 세상을 흔들 수 있어서가 아니라 먼저 자기 존재를 무너지지 않게 붙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오래 남는 문장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광장의 박수에서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책상 앞에서. 세계를 설득할 힘도, 세계를 지배할 힘도 없는 한 인간이 그럼에도 한 줄을 끝까지 밀고 가는 순간에서 자신의 살아있다는 유일한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때의 글은 권력도 아니고 영향력도 없지만 이미 한 존재가 자기 소멸에 맞서 세운 작은 형식이 된다. 그리고 문학은 늘, 그런 작고 완강하고 무모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형식들 위에서 탄생한다.
당신은 당신만의 형식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