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1 (개정판)
"안녕하세요 전희택이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선행연구팀 서은택입니다.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경력직으로 입사하셨다고요? 해외영업팀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예 해외영업팀 맞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제가 들어줄 부탁까지 있겠어요. 참! 집 열쇠! 여기요. 기숙사가 좀 지저분할 거예요. 이해해 줘요. 남자들만 사는 기숙사라서 하하. 들어가시면 현관 입구 바로 옆에 작은 방을 쓰시면 돼요. 방은 다 치워놨어요"
"예 감사합니다."
"전 월요일 새벽에 바로 회사로 출근해서... 그럼 월요일 봬요. 아마 올라가시면 룸메이트 한 명 더 있을 거예요"
일요일 아침 해운대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처음으로 회사 동료이자 룸메이트를 만났다. 하얀 피부와 준수한 외모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부산 사투리가 섞여있지만 전혀 촌스럽거나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준엄한 느낌이 날 정도이다. 덩치나 행동보다 말투와 자세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압도당한다. 그는 나보다 형이며 기혼자이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듯하다. 다행히 그가 부산사람이라 집 키를 받아서 대구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근데 일찍 올라가시네요"
"예~ 미리 가서 짐도 좀 정리하고 주변 구경도 하려고요"
"하하하 주변에 구경할 게 없을 텐데..."
"예?!"
"자기야~! 안 가?"
"아~아무것도 아녜요. 전 가봐야 될 거 같네요. 그럼 월요일에 봐요"
"예 감사합니다."
그는 허둥지둥 아파트 단지 입구에 비상등이 켜진 채 정차되어 있는 H사(社)의 흰색 SUV 차량으로 뛰어간다. 차 조수석에서 차창 밖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뒤를 돌아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곧 차의 정지등에 불이 들어오고 이내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다. 그가 적어준 기숙사의 주소지는 대구와 붙어있는 경산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주소를 차량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한다. 차가 묵직하다. 트렁크부터 뒷좌석까지 타지 생활의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기 위한 짐들로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집 떠나는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한 보따리 가득 싸준 반찬들로 표현된다. 가득 실린 짐처럼 기대와 걱정도 한가득 안고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창문을 열어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새 보금자리로 향한다.
'잘못 왔나? 여기 완전 시골이잖아...'
1시간 반 가량을 달려 도착한 주소지 주변은 온통 논밭이다. 그리고 논밭 한가운데 생뚱맞은 낡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메인도로에서 논두렁 길을 따라 5분여를 들어가서 도착한 두동 짜리 아파트는 주변에 정말 뭐가 없다. 세상과 동떨어진 섬 같은 느낌이랄까? 논밭이 바다를 대신하고 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 도로에 주차하고 짐을 끌고 아파트 입구로 걸어간다. 아파트 앞에 허름한 상가 주변에 녹지 않은 눈이 흙과 쓰레기로 뒤섞여 있다. 그 주변에서 놀고 있는 몇몇 아이들이 보이고 작은 슈퍼마켓 안에서 서리 낀 유리창을 통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방인의 접근을 쳐다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보인다. 낑낑거리며 짐을 끌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내리며 나를 곁눈질로 흘기고는 이내 사라진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짐을 쑤셔 넣고 15층 버튼을 누른다.
"끼이이익~~ 텅!"
엘리베이터는 마치 아파트 공사장에 간이로 설치된 승강기에서나 날듯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온 아파트 복도에서 내려다본 주변은 광활한 농토와 멀리 읍내인지 시내인지 모를 곳에 몰려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반대쪽으로는 파란 슬레이트 공장 지붕이 즐비한 공단이 펼쳐진다. 아마 내가 일하는 곳이 저곳 어디쯤일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공장은 도시와 갈수록 멀어진다. 그 말은 삶터와 일터가 멀어진다는 말이다. 한번 멀어지기 시작한 삶과 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기 힘들어 보인다. 이 기숙사는 아마 일터의 연장이지 삶터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열악해 보인다. 물론 이곳이 삶터이자 일터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자들은 그들이 원해서가 이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곳 아파트는 주말이 되면 조용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의 룸메이트인 그 형도 쾌적한 삶터에서 가족과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터인 이곳으로 돌아온다. 열악한 일터의 환경은 더 나은 삶터를 만들기 위한 희생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멀리 떨어진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면서까지 일터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중 한 명이다. 미래의 나의 안락한 삶터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은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