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보금자리

평범한 남자 시즌 2-2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달그락! 달그락!"

"아우~씨~ 왜 안 열려?! 이거!"


10분째 아파트 현관문이랑 씨름 중이다. 열쇠 구멍에 꽂힌 열쇠는 돌아가지도 빠지지도 않는다. 문고리를 돌려보고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문도 열쇠도 꼼짝을 않는다.


"열쇠가 말썽이네"


가끔씩 복도를 지나가는 이웃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지나간다. 그때마다 괜한 오해를 받기 싫어 혼잣말을 궁시렁 거린다.


"저기 아까 전 룸메이트 전희택입니다. 기숙사에 도착했는데요~ 문이 안 열리는데요"

"아~ 참! 말씀드린다는 게 깜빡했네요. 그 문고리가 좀 문제가 있어요. 문을 당기면서 키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탁 걸리는 느낌이 있을 거예요. 그때 문을 밀고 열쇠를 돌려보세요 그럼 아마 열릴 거예요"

"예???!"

"총무팀에 기숙사 문 고쳐달라고 얘기한다는 게 계속 깜빡하네요"


그의 말대로 문고리를 잡아당기면서 열쇠를 이리저리 돌리니 열쇠가 걸리는 느낌이 온다. 그때 문을 밀어보니 열쇠가 돌아간다.


"끼익"

"읍!"


문이 열리고 등 뒤로 비치던 햇살이 현관을 통해 집안으로 쏟아진다. 퀴퀴한 냄새가 콧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좁은 거실 통로를 따라 정면에 미닫이 유리문이 보인다. 그 거실 바닥은 뽀얀 먼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들로 덮여있다. 쏟아지는 햇살이 바닥에 깔린 먼지에 난반사되어 눈 안으로 들어온다. 꽤나 오랜 시간 쌓인 것으로 보인다. 거실 통로 중간에는 오솔길처럼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다. 그곳만 먼지가 없다. 현관에 짐을 잠시 놔두고 먼지를 피해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옮겨 들어간다. 현관 바로 옆에 그 룸메이트 형이 얘기했던 나의 방으로 보이는 방문이 있다. 일단 집을 구경하려 직진해서 집안 깊숙이 들어간다. 몇 발작 자국을 더 들어가니 왼쪽으로 숨겨진 공간이 나타난다.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이다. 부엌으로 갈라지는 먼지 없는 오솔길은 냉장고에서 멈췄다.

싱크대 앞에는 음식물이 자국인지 설거지물이 튄 것인지 알 수 없는 얼룩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양말이 더러워 질까 싱크대까지 갈 수 없다. 냉장고 앞에 서서 바라본 싱크대 위는 햇살이 막혀 어둡지만 더 많은 양의 먼지가 쌓여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가스레인지 위는 기름 떼와 얼룩이 잔뜩 묻어 있다. 오랜 시간 닦지 않아 굳어있는 모양새다. 열어본 찬장에는 뜯긴 라면봉지 안에 부서진 반 개의 라면이 하얀 면발을 드러내고 있다. 원래 1개는 아쉽고 2개는 부담스러운 것이 라면이다. 라면회사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알면서도 왜 1개 반짜리를 만들지 않는 것일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싱크대 위에는 양은냄비와 몇 개의 젓가락과 수저 그리고 플라스틱 밥그릇이 보인다.

유일하게 먼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부엌에서 유일하게 사람 손이 닿는 것은 라면 제조와 섭취를 위한 도구들뿐이다.


열어본 냉장고에도 'XX집 김치'와 계란 몇 개, 수분이 날아가고 시커멓게 굳어버린 쌈장 그리고 먹다 만 소주와 콜라 그리고 아직 따지 않은 맥주캔 몇 개가 보인다. 냉동실에는 몇 개 남지 않은 냉동 만두가 하얀 눈얼음에 둘러싸여 있어 꽤나 오랜 시간 동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실 끝의 미닫이 문이 안방인 듯 보인다. 나를 제외한 두 명이 그 방을 쓰는 모양이다. 살짝 열어본 그 방안은 방 양쪽으로 이 층 침대가 놓여있다. 이층은 이불더미와 온갖 잡동사니들이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쓰지 않는 듯하다. 일층 침대에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베란다를 등지고 있는 성인 허리만 한 높이의 탁자 위에는 21인치쯤 되어 보이는 브라운관 TV가 놓여있고 방바닥에는 작은 밥상 위에는 노트북이 얹혀 있다.


방 바로 옆에 붙어있는 베란다에는 세탁기가 있고 두 남정네들의 빨래가 빼곡히 널려있어 그 습기 때문인지 베란다 창문은 서리가 차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얼룩과 먼지로 서리가 끼지 않았어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안방 미닫이 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불을 켠다. 다시 한번 경악한다. 누런 백열등에 드러난 화장실은 천장부터 구석 곳곳에 곰팡이가 서식하고 있다. 무슨 곰팡이 배양실 같은 느낌이다. 바닥 수채 구멍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머리카락과 털들이 시커멓게 엉켜 붙어 있다. 황토 욕조는 분명 태초에 순백의 흰색이었을 것이다. 물 떼로 누런 옷을 입고 있는 욕조의 수채 구멍 역시 털들로 막혀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아~ 씨발! 뭐야~ 사람 사는 집 맞나?"


대충 둘러본 집안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무리 남자들만 사는 기숙사라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걱정을 가득 안고 내 방문을 열었다. 1평 남짓한 작은 방이다. 한쪽에 매트리스가 놓여있고 작은 옷장이 하나가 놓여있다. 다행히 청소를 했는지 방안에 먼지는 없다. 창문은 아파트 복도로 나 있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검은 형상이 보인다. 이중창으로 되어있고 안쪽 창문이 불투명이라 방안을 들여다볼 순 없지만 복도의 소음은 고스란히 방안으로 전달되는 듯하다.


"아~ 정말 이런 데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일단 짐을 방으로 옮기고 청소에 돌입한다. 아파트 앞 슈퍼마켓에서 고무장갑과 화장실 청소 도구와 수세미등을 사서 올라왔다. 내가 청소를 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들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굴러들어 온 자의 기본자세이다.


쓸고 닦고 3시간에 걸친 대청소가 진행되었다. 한겨울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청소가 끝나갈 때쯤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미닫이 안방 문과 베란다 문을 여니 현관에서 들어온 바람이 거실을 통과해나의 방과 화장실을 휘감고 안방을 거쳐 베란다로 빠져나간다. 그 서늘한 바람이 곳곳에 쌓여있던 더러움도 같이 날려 보내는 기분이다.


허기가 밀려온다. 밥을 하고 찬장에 있던 프라이팬으로 어머니가 싸준 밑반찬을 이용해서 간단히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아파트 복도에서 서서 어둠이 깔리는 논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내뱉는 뽀얀 담배 연기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든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일과 사람 그리고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노곤함이 밀려온다. 좁은 방의 낯선 냄새가 베여있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다.

눈꺼풀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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