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3 (개정판)
"아~ 깜빡 잠들었네"
사방이 어둠이다. 주변을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는다. 액정화면에 조명이 들어오며 방안의 모습이 희미한 형체를 들어낸다.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와 예기치 않던 대청소가 몸의 피로를 가중시킨 모양이다. 방바닥에서 뜨끈한 온기가 올라온다. 내 몸 위에는 보지 못한 이불이 덮여있다. 누군가가 들어왔던 것이 분명하다.
몸을 일으켜 방안의 불을 켠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한다. 불 꺼진 불투명 미닫이 문안에서 얕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누군가가 자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의 룸메이트일 것이다. 결국 그와 인사도 하지 못했다.
볼일을 보고 세수와 양치를 마친다. 냉장고를 열어 물통을 들고 목구멍으로 부어 넣는다. 냉수가 목구멍을 타고 위 속으로 내려가며 온몸으로 퍼져가는 냉기가 잠자던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냉장고 불빛에 비친 싱크대 위에는 라면을 끓여먹은 양은냄비가 씻기지 않은 채 담겨 있다. 그는 내가 해놓은 밥과 함께 라면을 끓여먹은 모양이다. 냄비 안에 묻어있는 국물에 빨갛게 물든 밥풀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으~~ 확실히 여기는 더 춥네"
이른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첫날은 무조건 일찍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30년이 넘도록 고쳐지지 않는다. 부산과는 다른 내륙의 추위가 느껴진다. 한기가 옷을 뚫고 몸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논밭에는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덮여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방안에 하얀 곰팡이가 슬어있는 메주를 연상케 한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모카라테 위에 바닐라 가루랄까?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회사 주소를 입력한다.
예상소요시간 10분? 기숙사는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천천히 아파트의 앞 논두렁 길을 빠져나간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시골의 고요함을 뚫고 도로에 진입한다.
아직 도로 위는 한산하다. 멀리서 밝아오는 노란 태양빛이 하늘의 푸른빛을 찾아주고 있다. 잠시 뒤 도로 양쪽으로 공장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공장들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서 있다. 작지 않은 규모의 공단임을 짐작하게 한다.
여기도 대구의 제조업이 위성도시로 뻗어 나온 격일 것이다. 이곳도 제조업의 지방 이전의 물결을 피해 가지 못한다. 그래도 대구에서 출퇴근하기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DG오토모티브]라는 현판이 적힌 커다란 삼각 기둥이 본사 건물 입구에 세워져 있다. 본사 건물 앞 도로에는 출퇴근 직원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양쪽으로 주차선 비스듬이 그려져 있다. 아직 출근시간이 일러 회사 앞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다. 정문 앞에 주차를 한다.
"어이! 여긴 안돼~ 차 빼요~"
"예?"
"여긴 지정 주차야 차 대시는 분들이 따로 있어!"
"아!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문 경비실에서 주차하던 나를 보던 경비원이 나와서 한마디 한다. 그리고는 주차 금지 팻말이 적힌 입간판을 몇 개 들고 와서 정문 바로 앞의 주차 칸에 놓는다. 나는 다시 정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정문으로 걸어간다.
"오늘 제가 첫 출근이라서요, 잘 몰랐습니다. 죄송해요. 참 해외영업팀으로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죠?"
"아~ 어쩐지… 왜 거기 주차하나 했네, 여기 출퇴근 지문 체크하고 저기 바로 건물 1층으로 들어가 사무실 천장에 부서명이 보일 테니 찾아가면 될 거야. 근데 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예! 첫날이잖아요 하하하"
"이제 새벽 6시야~ 참! 별놈이네"
어둠 속에 잠자고 있던 사무실을 깨운다. 형광등 불빛에 드러난 1층 사무동은 파티션이 나눠진 책상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입구 왼편에는 눈높이에만 불투명 유리로 처리된 작은 회의실들이 여러 개 눈에 들어온다. 우측에는 임원들의 사무실이 별도의 공간으로 배치되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해외영업팀] 팻말이 발견한다.
[전희택 사원]
"이 지겨운 사원 딱지도 이제 3개월만 버티면 끝이다"
나는 입사할 때 DB 중공업에서 3년 넘게 근무한 경력을 대부분 인정 받았다. \그래서 이곳 인사발령시기에 맞춰 대리 승진을 확답 받고 입사를 했다.
'구고관 대리?'
나의 명판이 적힌 자리와 함께 옆자리에 적힌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구고관 대리] 이름이 유별나다. 내 자리에는 새것으로 보이는 노트북 하나만 달랑 놓여있다. 주변을 둘러본다.
"와~ 무슨 팀이 이렇게 많아! 총무팀, 영업기획팀, 국내영업팀, 영업지원팀, 일반구매팀, 외주구매팀, 새시영업팀, 총무팀..."
사무동 1층에만 수많은 팀이 있다. 책상이 족히 70~80개는 될 듯 보인다. 자동차 업계는 확실히 조선업보다는 뭔가 더 체계적이고 디테일함이 엿보인다. 조선업계의 1차 협력사와 자동차 업계의 1차 협력사는 규모부터 다르다. 매출액 사이즈부터 확연히 다르다.
1차 협력사 기준에서 조선업은 천억 대의 매출이면 보통 큰 편이었지만 자동차 업계는 이미 조 단위를 넘어섰다. 확실히 불특정 다수를 고객(소비자)으로 하는 자동차가 특정 선주들만 고객으로 하는 선박보다는 양적으로 우세하다. 매출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차가 잘 팔리는 회사이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당시(2011)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TOP 5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완성차의 규모에 커짐에 따라 그 협력사의 규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커져 있었다. 메이저 완성차의 1차 협력사의 연봉이 메이저 조선소에서 받는 급여를 뛰어넘는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였다. 그만큼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잘 나가던 조선업 영광의 바통이 이제 자동차로 넘어가고 있었다. 덩어리가 큰 것들은 이제 한국이 아닌 중국의 차지가 되는 듯 보였다. 중국은 당시 한국의 조선업을 따라잡고 자동차 산업을 넘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한국의 메이저 자동차 회사와 그 협력사의 중국 유치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한국의 메이저 완성차의 중국 진출로 수많은 협력사들이 따라서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DG오토모티브도 그 중 하나였다. 중국 공장 증설과 매출 증대에 따른 인력 충원에 나도 포함된 것이었다. 중국은 조선업 때보다 더 빠른 기술 및 생산 노하우의 흡수를 위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국내(중국) 진출을 합자회사로만 승인해주는 강수를 놓았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독자경영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10억 명이 넘는 초대형 시장을 놓칠 수 없기에 전 세계의 완성차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중국의 자동차 회사와 합자를 통해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서 진출했다.표면적으로는 글로벌 브랜드이지만 속사정은 반중국 회사이다. 그렇게 중국은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의 글로벌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중국 시장에서 승리하는 자가 세계시장을 선점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오~ 일찍 왔구먼, 반갑네"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쓰다듬는다. 고개를 돌린 나의 눈높이에 한참을 못 미치는 곳에 하얀 백발에 숱이 많이 남지 않은 중년과 노년 사이를 지나는 남자가 서있다. 커다란 금테 안경을 한 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허허"
"아~ 네 알겠습니다"
그는 나의 등을 툭툭 두어 번 두드리고는 총무팀 앞 테이블에 놓여있는 신문을 집어 옆에 방으로 들어간다.
그 위에는 [영업본부장 이웅재 전무]라는 명판이 걸려있다. 그러고 보니 면접 때 제일 구석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이 얼핏 떠오른다. 그는 영업의 최고 사령관이다. 영업은 회사의 꽃이며 선봉장이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고 씨를 퍼트릴 수 있고 선봉장이 적들의 기선을 제압해야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풍채와 외모는 선봉장도 꽃의 기운도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너무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봐선 어떠한 기세나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명판을 확인한 지금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하나다.
'작은 고추가 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