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4 (개정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무동의 자동문이 열리며 몇 몇 직원들이 입장하는 것이 보인다.
"오~ 희택씨? 경력? 맞지?"
"예 반갑습니다. 전희택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반가워 난 주부단 차장이야~ 일찍 왔네"
"예 기숙사가 생각보다 가깝더라고요"
2대 8로 빗어 넘긴 머리는 도포되어 윤기가 흐른다. 네모난 은테 안경 속 두 눈은 가늘게 찢어져 눈동자의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곁눈질에 용이한 눈을 가진 자이다. 가끔씩 옆으로 흘겨보는 표정이 음흉하게 느껴진다. 그런 외모와는 상반되게 옷 매무새는 매우 단정하다. 셔츠의 목 단추까지 채우고 넥타이를 조여 맨 모습이 보는 이도 답답해 보일 정도이다. 그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책상에 얹고는 전원을 켜고 파워케이블과 랜선을 연결한다.
"전에 조선업계에서 일했다며?"
"예"
"그럼 이 바닥은 잘 모르겠네, 듣기로 기획부서에서 일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영업부서로 지원했네"
"예 그게 해외영업으로 이전 회사에서도 해외영업으로 입사 했었다가 보직이 변경돼서요"
"그래? 참 특이한 케이스네, 뭐 잘 됐어~ 기획 출신이니 우리 해외영업팀 기획총괄담당은 너가 하면 되겠다 큭큭"
"예?! 무슨말씀이신지?"
"그런게 있어, 특기를 살려야지 않겠어? 하하하"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혼자 웃는다. 그리고 화면이 켜진 노트북에서 아웃룩(Outlook)을 켜서 메일을 확인한다. 몇 개의 메일을 확인하더니 금세 표정이 굳어진다.
"아~ 짜증 나네 또 *CR(Cost Reducticon)이야? 휴~"
"무슨 일 있으세요?"
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내 물음에 답이 없이 메일을 쓰기 시작하더니 내가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채 집중한다.
무안해진 나는 자리에 앉아 나의 것으로 추측되는 노트북을 열어 만지작 거린다.
"누구?"
"안녕하십니까? 전희택입니다."
"아~ 경력?"
"예"
"어 그래~"
사람의 얼굴에도 모서리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네모난 얼굴은 처음이다. 눈 주변이 어두운 것이 며칠 동안 잠을 못 잔 건지 피곤함이 아우라처럼 퍼져서 나에게도 전달된다. 졸음이 쏟아지는 안경 쓴 판다 한 마리가 노트북의 꺼내며 자리에 앉는 형국이다. 그의 자리 파티션 명판에는 [이노총 대리]라고 적혀있다.
그는 잠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노트북 윈도우 화면이 로그인되고부터 나에 대한 관심은 바로 로그오프된다.
"노총~! 오전까지 CR자료 제출!"
"예?! 또요? 저 오전에 공장 가봐야는데요"
"하고 가!"
"아놔~"
그는 주차장이 던진 말에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며 한숨을 내쉰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어깨에 손을 얹힌다. 고개를 돌려 본 그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숱이 많지 않은 머리를 길게 길러 넘겨 두피를 가리고 있다. 얼굴에는 미소를 띠며 여유 있는 모습이 좀 전의 좀 전의 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안녕! 경력?"
"예 안녕하십니까 전희택입니다."
"어 반가워 유주철 과장이야~ 난 일본 담당이야~ 중국 담당이라고 들었는데 고생이 많겠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어~ 참! 자네 사수는 아마 좀 늦을 거야~ 중국 출장 갔다가 오늘 오후에나 들어오거든"
"아~ 네..."
"커피 한잔 할래?"
"예 감사합니다"
그는 서랍에서 믹스커피 두 개와 종이컵을 꺼내 들고 정수기로 향한다.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부어 넣고 뜨거운 물을 따르고는 믹스커피 포장 껍데기를 세로로 접어서 커피물을 몇 번 휘젓는다.
"자~"
"감사합니다"
"아까 서랍 안 박스 봤지? 커피나 차 먹을 땐 거기서 꺼내먹으면 돼 해외영업팀 스타박스야 하하"
"예!? 예 알겠습니다"
그와 나는 종이컵을 들고 본사 건물 밖으로 이동한다. 한겨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등나무 휴게장소가 보인다. 중앙에 커피와 음료수 자판기가 벽처럼 늘어서 있고 한쪽 편에는 사무직 또 다른 한쪽에는 생산직 직원들이 모여 근무 시작 전 구름과자를 음미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과거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동독과 서독의 모습 같다. 앙상한 등나무 가지 사이로 공장의 굴뚝처럼 하얀 담배 연기가 피어 오른다.
"몇 년생이야? 80년생입니다."
"그럼 올해 32살인가?"
"예 그렇네요"
"결혼은 했고?"
"아니요 아직"
"여자 친구는?"
"없습니다"
"큰일이네... 노총의 뒤를 이어가겠구만..."
"예?! 무슨 말이 신지..."
"아냐 아무것도..."
"유과장님! 저 담배 한 까치만 주십시오"
"어 왔어! 윤대리!"
자그마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팔자 걸음걸이를 하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이가 보인다. 윤기 있고 세팅력이 강력한 젤을 과도하게 발라서 세운 머리가 인상적이다. 달걀형 얼굴에 하얀 피부가 시커먼 숯덩이 같은 검은 눈썹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누구?"
"우리 팀~경력"
"아~ 오늘이구나!"
"반가워요~ 나 윤철민 대리예요~ 미주 담당이에요"
"예 반갑습니다."
"구대리님이 오랫동안 투덜대시더니 이제야 부사수를 맞이하셨네 이번엔 잘 지내셔야 할 텐데... 하하"
"예?!"
윤대리의 말에 옆에 있던 유과장이 옆구리를 찌르며 눈치를 준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둘만의 신호를 주고받더니 윤대리는 화제를 돌려 나의 호구조사를 실시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호구 소개 내용을 또 다시 재생한다. 오늘 또 몇 번을 더해야 할까?
"디리리리링"
본사 사무동 건물과 공장 건물에 종소리 같은 멜로디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를 들은 직원들은 서둘러 담배를 흡입하기 시작한다. 장초를 버릴 수는 없다. 다음 휴게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 니코틴을 충전해야 한다. 구두를 신은 발걸음은 사무동으로 안전화를 신은 발걸음은 공장동으로 나뉘어져 들어간다. 이 둘은 같은 회사의 식구이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 서로는 때론 무시하지만 때론 상호 작용한다. 제조업은 이 두 무리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냐가 아주 중요하다.
*CR(Cost Reduction) : 원가절감으로 완성차(고객사)에서 협력사에게 원가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제품비 혹은 투자비(금형 및 설비)를 인하시키는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