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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21. 2020

문을 닫아가는 삶

팔공 남자 시즌 2-77

"어! 안 에스더?"

"왔어요? 희택 형제 많이 늦었네요"

"헉! 목녀님이 시간에 웬일로? 요즘 일이 많아서 계속 야근이네요"

"자! 이거 주려고요"

"이게 뭐예요?"

"밑반찬들 만들어서 좀 가져왔어요"

"아!  뭐 이런 거까지 연락을 주시지 제가 가지러 가도 되는데..."

"문자 넣었는데 답이 없길래..."

"아! 일할 때 집중 좀 해야 돼서 무음으로 해놓았네요 죄송해요, 어쨌든 고마워요!"


  안 에스더가 나의 원룸 건물 앞 가로등 아래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 가방이 들려 있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플라스틱 반찬 용기가 들어있다. 


"그럼 가볼게요"

"잠깐 들어갔다 가세요 오래 기다리셨는데... 반찬까지 해주시고 그냥 가시면 제가 너무 미안하잖아요"

"괜찮아요 늦었는데"

"에~이 들어오세요 커피라도 한잔 대접해야죠 오늘은 목원 집에서 목장 모임 한다 생각하시고"


  나는 목녀의 손목을 잡고 원룸 방으로 올라간다. 그녀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 나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그녀는 나의 원룸 방을 들어오더니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본다. 나는 커피물을 끓이고 냉장고를 뒤져 과일과 과자 준비한다.  


"희택 형제는 남자 혼자 사는데도 깔끔하네요"

"그런가요?"

"옛날 오빠 방은 정말 쓰레기장 수준이었는데...하하 매번 제가 갈 때마다 청소해주곤 했거든요"

"에~이 설마!? 요한 목자님이 정말요?"

"믿거나 말거나 하하"


   생전 교회에서 보였던 요한의 준수한 외모와 행동으로 미루어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이다.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 중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겉으로는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모가 비호감이면 상대와의 관계 조차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TV 속 드라마와 각종 광고에 드러난 연예인들의 모습을 추종하고 그것이 표준이 되어간다.    


  나는 준비한 다과를 내놓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녀는 이제 요한 목자의 죽음이 어느 정도 편안해진 모양이다. 그 전에는 목자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먼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요한 얘기를 꺼내고 있다.


"와~ 딸기네요? 과일까지 참 잘 챙겨 먹네요"

"혼자 사는데 잘 챙겨 먹어야죠 하하하"

"저기 책상 위에 보니까 오메가 3에 비타민C, 마그네슘 뭐 온갖 영양제가 다 있네요. 희택 형제는 참 오래 살겠어요 하하하"

"뭐 잘 챙겨 먹어도 하나님이 맘에 안 들어하심 데려가시겠죠 뭐 일단 살아있는 동안은 건강해야 되지 않겠어요 하하하"

"희택 형제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 하고는 정말 다른 사람인 거 같아요"

"겉으론 어떻길래요?"


  그녀는 두 눈동자를 왼쪽으로 올리며 나를 처음 교회에서 봤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의 입안에서 가시지 않은 술냄새를 풍기며 교회에 찾아든 나의 모습에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무뚝뚝한 표정과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에 차갑고 딱딱한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유머스럽고 다정한 나의 다른 모습에 처음의 비호감이 호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고 한다. 요한이 떠나고 난 후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과 행동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한다. 


"먼지는 잘 있어요?"

"음... 아뇨"

"왜 무슨 일 있어요?"

"근데 얼마 전 갑자기 밤에 창밖을 보며 밤새도록 어찌나 울어대는지... 동네 사람들 민원 넣고 난리도 아녔어요 그날 이후로 밥도 잘 안 먹고 갈수록 야위어 가고 있어요"

"예?! 정말요?"


  그 날은 내가 베이징에서 띠아오챤을 만나고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때였다. 먼지는 띠아오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나와 그렇게 헤어지고 난 후 띠아오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우리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해요"

"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없는 저희의 목원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그녀가 어딘가에 무사히 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부디 그녀가 어디에 있든 항상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시옵소서..."

"아~~~ 악!"


  순간 뒤통수에서 찌릿한 통증이 엄습한다. 한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간다. 그리고 귓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 비명은 띠아오찬의 목소리가 분명하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귀를 찔러 뇌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양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보지만 비명 소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왜 그래요? 희택 형제?"

"비명소리가!"

"예? 비명소리요?"

"안 들려요?"

"도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예요?"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에게만 들리는 것인가? 띠아오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는 마치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듯한 장면을 떠올린다. 잠시 뒤 비명이 그치고 통증이 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마에 흘러내린 식은땀이 좀 전의 상황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보여준다. 안 에스더는 손수건을 꺼내 나의 이마에 흥건히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아준다.


"희택 형제 괜찮아요?"

"예 고마워요. 내가 그때 띠아오챤을 구했어야 했는데... 흑흑"

"희택 형제 잘못이 아녜요"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침울해진 나의 어깨를 살포시 감싸안는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만약 그 이별이 자신으로 인한 것이거나 자신의 도움이 미치지 못해서 발생한 일이라면 그 아픔은 뼛속 깊이 새겨져 트라우마로 평생을 따라가게 된다. 


  삶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늘어간다. 그 이별의 아픔들이 하나둘씩 쌓여갈수록 우리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아간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소중했던 관계들은 좀처럼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그건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문을 활짝 열고 태어나서 문을 조금씩 닫으면서 죽음으로 향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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