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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9. 2020

야근이 소중해진 이유

팔공 남자 시즌 2-76

"고맙습니다 대리님 이렇게 태워주셔서"

"저도 집에 가는 길인데요 뭘"

"참! 말 편하게 하세요 대리님"

"아직 편하지 않아서 하하 편해짐 그럴게요"

"대리님 출출하지 않으세요? 저희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먹고 갈래요? 제가 쏠게요"


 늦은 시간 야근을 마치고 그녀와 함께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제안에 공단 안에 위치한 편의점에 잠시 차를 세웠다. 늦은 시간이라 공단 안의 편의점엔 아무도 없이 홀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대리님 김밥 뭐 드실래요?"

"참치마요 먹을게요"

"와! 나랑 취향이 같네요 저도 참치마요 좋아하는데"


  그녀와 나는 편의점 창가에 서서 어둠이 내린 공단의 공장들을 바라본다. 시선의 초점을 당겨 바라본 유리창엔 그녀와 내가 삼각김밥이 얹힌 컵라면 용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 컵라면의 뜨거운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야근의 피로와 함께 노곤함을 불러온다.


"근데 도서관 만드는데 왜 혼자서 해요 이 늦은 시간에?"

"그게 음... 사실 저 혼자 하는 일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팀장한테 사내 도서관을 제안했는데 기각됐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 제가 못쓰는 서류 창고를 활용해서 도서관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죠 책은 직원들한테 기부받는 방식으로 해보려구요, 어차피 서류창고에 기한 지난 서류들을 파기해야 해서 그걸 제가 하는 김에 비워지는 공간을 이용하는 거라 팀장님도 알아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업무에 지장이 없는 조건으로 하하하"

"음... 시키지도 않는 일을 왜 굳이..."

"대리님이 얘기하셨잖아요 아무런 지원도 안 해주면서 요구하는 것만 많은 회사 때문에 힘들다고 하하하"


  그녀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처해서 고생이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녀는 그 일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매일 시키는 일에 치여 야근 속에 지쳐가는 나의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생기발랄하다.


  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과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이다.

  전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누군가의 지시를 잘 완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간다. 일의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괴롭고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는 건 결과에 대한 달콤한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이고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 믿는다.


  후자는 생계보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하는 일이다. 당장의 금전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존재감을 찾는다. 결과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긴다.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기에 구속되지 않으며 창의적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성공을 믿고 하는 일이 아니라 믿고 하다 보니 성공이 오는 경우가 많다. 성공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자는 의존적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맞춰가는 일이며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는 삶이다. 후자는 독립적이다.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일이며 세상의 기준을 만들고 바꾸는 삶이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든 자신이 그 삶에 만족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속할 수 없는 곳에 억지로 얽매여 있는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대다수의 직장인이 그렇다. 나도 그렇다.


"대리님 근데 제 이마가 이상해요?"

"예? 아... 아뇨 왜?"

"처음 저 봤을 때부터 계속 이마 쪽을 보시길래"

"아! 기억하는군요, 음... 미안해요 그냥 그리로 시선이 가네요"

"내 이마가 너무 넓은가... 앞머리를 내릴까 봐요"

"아... 아뇨, 보기 좋아요 유진 씨 매력 포인트인데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친절하다. 논리적이다. 독단적이다. 계산적이다. 등등 그 사람을 겪어보고 나서 그 사람의 성향을 통해 기억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외모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기억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 외모에 뚜렷한 포인트가 없는 사람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거나 수수한 사람은 기억하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어느 한 포인트를 찾으려 한다. 쉽게 찾아지고 뚜렷한 포인트가 있는 사람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대리님은 야근 좋아하시나 봐요, 많이 하신다던데"

"어떻게? 아 봉래 씨?! 쓸데없는 얘기를... 좋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정말 일이 많으신가 봐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인 거죠 뭐 일머리가 없어서"

"너는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거야"

"..."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에요"

"갑자기 그 말은...?"

"대리님은 야근에 바친 시간이 길었기에 일이 아닌 야근이 소중해진 건 아닐까요? 하하하"


  그녀의 말이 알 수 없는 먹먹한 울림을 가져온다. 그녀의 말처럼 야근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실체가 없는 행위가 소중해진 것일까? 매일 일상처럼 반복되는 행위는 결국 무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이상해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인간은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쏟아붓다 보면 의미 없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야근이 소중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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