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에서 악으로, 악에서 선으로

평범한 남자 Final (추가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눈 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검은색 우비였다.


순간 퍼즐의 결정적인 조각이 끼워 맞춰지며 그동안 벌어졌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서 연결된다. 그리고 파노라파 뒤에 희미하게 장주임의 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며 오버랩된다.


“설마… 그럴 리가… 왜?! 무엇 때문에?


순간 경악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다시 복층 계단을 빠른 속도로 올라간다. 다시 옷장을 열어 서랍장의 자물쇠가 잠겨있는 서랍을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튀어나왔는지 모르지만 자물쇠 고리가 뜯겨나가며 서랍이 방바닥으로 나가떨어진다. 방바닥에는 온갖 기괴한 성인 용품들과 속옷들이 쏟아져 널브러져 있다.


“도…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띠리리링”


순간 현관에서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빠른 걸음으로 다시 복층 계단을 내려가서 인터폰 화면을 확인한다. 건장한 남성 둘이 문 앞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둘 사이 뒤로는 경찰 옷을 입은 자들이 눈에 보인다.


“쾅쾅쾅!”

“경찰이다. 어서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당장 열지 않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가겠다.”


당황한 나는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다. 여기는 15층 오피스텔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다. 지은 죄도 없이 죄인이 된 기분이 이런 것일까? 때론 상황이 없던 죄책감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쾅쾅쾅!”

“마지막 경고다! 어서 문 열어!”

“웽에에에엥~”


거친 기계 소음이 들린다. 문고리를 절단할 모양이다. 방법이 없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고 그 순간을 놓칠세라 문 앞에 서 있던 형사는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나에게 돌진한다.


엄청난 가속도로 밀어 덮친 형사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나는 거실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형사는 재빨리 엎어진 나의 몸 위에 올라타 몸을 짓누르며 나의 팔을 꺾어 수갑을 채운다. 들이닥친 다른 경찰들은 오피스텔 곳곳을 뒤진다.


“너를 불법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체포한다. 너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예?! 무슨 말이에요?!”

“여자는 어디 갔어? 야! 여자 없어?”

“김형사님! 여기 이상한 성인용품이랑 속옷들만 잔뜩 널브러져 있고 여자는 없는데요!”

“뭐?! 그… 그럴 리가?”

“도대체 무…무슨 말이신지?”

“너 뭐야?!”

“여기는 제 여자 친구 집인데요”

“뭐!?”


그녀의 오피스텔에 수시로 드나드는 수많은 낯선 남자들의 발길에 이를 수상하게 여긴 주변 이웃에서 신고를 했다고 한다. 경찰은 오피스텔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신고를 접수받고 출동을 했고 오피스텔에 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덮친 것이다. 그런데 여자가 현장에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다행히 나는 증거 불충분으로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그 일로 장주임이 승무원으로 한국과 중국을 오고 가며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94번 고객님! 5번 창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핸드폰의 액정이 깨졌다. 제주도 여행 때 막걸리에 취해 바위 그루터기에서 넘어지면서 액정에 금이 갔다. 얼마간 그냥 깨어진 채로 쓰던 액정 교체를 위해 핸드폰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고객님, 액정 수리비는 10만 원입니다. 교체해 드릴까요?”

“네, 참 그리고 핸드폰이 너무 버벅거리는데, 좀 봐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대기실에 앉아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잠시 뒤 직원이 다시 나를 부른다.


“고객님 핸드폰에 위치 추적 앱이 설치되어 있네요. 혹시 본인이 직접 설치하신 건가요?”

“예?! 아… 아뇨, 그게 뭔가요?”

“그럼 누군가가 악성코드를 심어서 설치했거나, 고객님 핸드폰을 직접 조작해서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종류의 악성 앱은 상시 작동되어서 핸드폰의 성능 저하와 배터리를 계속 잡아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저기 혹시 그 앱이 언제쯤 설치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음… 3개월 전쯤으로 보이네요”


‘설마 그때?!’


3개월 전이면 싱가포르 전시회 출장 때이다. 순간 그곳에서 우연히 장주임을 만나 일행들과 돌아다니다가 나의 핸드폰으로 찍은 전시회 사진을 그녀에게 보여주다가 그녀에게 폰을 맡기고 화장실에 갔다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의 위치를 알고 움직였던 것이 분명하다. 미애의 집 앞에서 그리고 우도에서의 우연한 만남까지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나의 집 근처에서 수시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띠링띠링”


[오빠 ^0^ , 나 내일 부산 간다. 오빠 볼 생각에 너무 신난다. 오빠 공항에 나올 거지?]


장주임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굳은 얼굴로 메시지를 바라보는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만약 내가 끼워 맞춘 퍼즐 조각과 일련의 예감들이 맞아떨어진다면 도저히 그녀를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듣고 싶다. 진실을… 왜 그랬는지’




김해국제 공항 안은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린다. 해마다 급증하는 해외여행객을 소화하기 힘들어 보인다. 인천 국제공항이 생기며 수도권의 여행객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있었지만 동남권 지방의 여행객 수요를 충족시켜 줄 또 다른 공항이 필요해 보인다.


나는 입국장 앞에 서서 장주임을 기다리고 있다. 상해발-부산행 K항공편이 도착했다는 것을 공항 내 대형 전광판을 보고 확인했다. 잠시 뒤면 그녀가 나타날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지금의 두근거림은 설렘도 긴장감도 아닌 또 다른 두근거림이다.


입국장 게이트가 열린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캐리어를 끌며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항공 승무원들은 탑승객이 다 빠져나온 뒤 나올 거라는 걸 알기에 하염없이 게이트 쪽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으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체 웃음 지으며 그녀를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연기자가 아니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많은 인파 속에서 그녀에게 화를 내며 진실을 얘기하라고 그녀를 잡아 흔들며 다그칠 수도 없을 것 같다. 어떻게 그녀를 맞이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다. 도착한 여행객들이 모두 빠져나왔는지 입국장 게이트는 한 동안 열리지 않고 있다.


“어머! 어머! 저것 봐!”

“헐! 저게 무슨 일 이래?”

“저 스튜어디스 왜 수갑을 차고 있데?”


입국장 게이트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열린 문에서 장주임이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건장한 두 남성 사이에 끼어 걸어 나오고 있다. 그 뒤로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다른 스튜어디스들이 앞에 가는 장주임을 쳐다보며 수군거린다.


“무…무슨 일입니까?, 장주임! 어떻게 된 일이야?”

"..."


장주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 없이 나를 한번 올려다보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당신 누구야? 저리 비켜요!”

“전 이 여자의 남자 친구입니다, 장주임! 무슨 말을 좀 해봐!”

“이 여자 얼마 전 대학가 모텔 마약 살인 사건 용의자들의 진술에 따라 뒤에서 살인을 사주한 공범으로 지목되어 연행 중입니다"

“예?!, 张主任, 你是不是把我的英语老师杰西卡也… 你说这是不是真的?”(장주임, 너 설마 내 영어 선생인 제시카도… 말해봐! 사실이야?)


나의 말을 들은 장주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다. 그 충혈된 눈은 슬픔이 아닌 분노로 가득 찬 모습이다.


“那你为什么不早就给我联系呢, 都是你,都怪你了!”(오빤 왜 나한테 그전에 연락하지 않은 건데, 모두 당신, 너 때문이야!)

“둘이 무슨 얘기하는 거요?! 어서 저리 비켜요!”

“공무집행 방해하지 마시고, 일단 저기 궁금한 사항은 경찰서로 오셔서 얘기하세요”


형사가 나를 밀치며 그녀를 연행해 지나간다.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선 채 끌려가는 장주임을 바라본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과거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처음 장주임을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벌어졌던 모든 불행의 씨앗이 장주임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단 말인가?


내가 그녀에게 남긴 상처에서 그 불행의 씨앗이 자라난 것인가? 결국 그 씨앗이 자라나 나의 목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집 근처의 오피스텔에서 온라인을 통해 개인적인 성매매를 일삼으며 마련한 돈으로 한국에서의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장주임은 한국에 있을 때 주말마다 제시카가 나타나는 대학가 외국인 펍에서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다. 제시카와 펍에서 자주 만나며 친한 언니 동생사이가 되었다. 장주임은 성매매를 통해 알게 된 미국 남성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제시카에게 접근해 마약으로 그녀를 중독시키도록 사주했다는 것이다.


제시카가 죽던 그날 밤도 장주임은 우연히 그녀와 펍에서 만난 척 가장해 자연스럽게 그녀가 잠시 화장실에 가며 자리를 비운 사이 마시던 칵테일에 수면제을 탔다. 잠에 취한 제시카는 미국 남성들에 의해 모텔로 끌려가 강간을 당했고 결국 마약 과다 투여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에 의해 미국으로 도주하려던 범인들은 공항에서 체포되고 그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장주임의 실체가 드러났다.


“你为什么,到底为什么!”(너 왜, 도대체 왜!)

“那你为什么不理我了?”(그럼 오빤 왜 날 무시한 건데?)

“…”

“我就变成了春艳一样,你不是喜欢那样的女人的嘛?可你还是不理我,那我该怎么办呢?”

(나 춘옌이 됐잖아, 오빠는 이런 여자 좋아하잖아, 그런데 왜 날 모른 척 해, 그럼 난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 건데?)


경찰서에서 그녀와 다시 대면했다. 그녀의 눈빛은 분노로 불타고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분노로 변한다. 다만 그 분노가 어디로 또 어떤 형태로 분출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녀의 분노는 타인을 향한 살기로 변했다.


“是不是那天春艳在机场被公安抓住的都是由你来报警的?” (그럼 그날 공항에서 춘옌이 공안에게 잡혔을 때 너가 신고한 거야?”

“是啊,我报的, 因为有那个丫头你都不爱我的嘛”(그래, 내가 했어, 그년 때문에 너가 날 사랑하지 않은 거잖아)

“你怎么会。。。?”(어… 어떻게)

“从那天开始了“(그날부터 시작됐지)


장주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녀의 분노는 이제 나의 분노로 이어지고 있었다.


“那媄爱也是… 아아아악!” (그럼 미애도… 으아아악!)

“你觉得只有那三个?”(네가 보기에 그 둘 뿐인 거 같아?)

“那你说不只是那三个人?”(그럼 그 둘 뿐만이 아니란 말이야?)

“으흐흐흐”


순간 배 위에서 실종된 치중과 그녀가 얘기했던 차오찡의 죽음이 떠오른다. 그녀의 섬뜩한 미소는 웃음으로 바뀌고 있다. 처음 중국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순수하던 천사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악한 악마가 자리 잡았다.


“这都是你杀的, 你让我杀的!, 你就是杀人犯!”(네가 모두 죽인 거야, 너가 나에게 시킨 거니까! 네가 바로 살인자야!)

“이건 아니야! 으아아아악~~”


나는 지금 악마를 보고 있다. 그 악마는 내가 만들었다. 비록 나는 의도치 않았지만... 나는 오열한다.


나는 경찰에게 그녀의 집에서 발견한 검은색 우비와 우도에서 일어난 일, 내 핸드폰의 위치 추적 장치 등에 관한 모든 것을 진술했다. 경찰은 그녀의 핸드폰과 집에서 발견한 컴퓨터에서 나의 핸드폰을 추적한 사실 등을 확인했고, 발견된 우비 안쪽에서 발견된 미애의 혈흔 자국으로 인해 그녀의 추가 살인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중국 국적인 그녀의 신분 때문에 범죄사실을 중국 측 공안으로 알렸고 이에 중국 측 공안에서도 그녀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차오찡의 시신을 그녀의 집에서 발견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는 자신의 집에 업소용 대형 냉동고를 가져다 놓고 그곳에 차오찡을 죽은 채로 그대도 얼려놓았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한중을 넘나드는 희대(稀代)의 여성 연쇄살인마라는 특종 기사를 쏟아내었다. 이 기사는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특종 기사로 퍼져나갔고, 그녀는 결국 한국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고 중국에서는 사형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우리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선과 악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어 한쪽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세상 속에서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변해간다.


누군가는 선에서 악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악에서 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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