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사라진다

평범한 남자 시즌 2-34 (추가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희택씨! 잘 지내요?"

"어~ 누구?"

"섭섭하네요 벌써 제 목소리도 까먹은 거예요?"

"지호씨?!"

"오~ 이제야 알아보시네요"

"와!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떻게 지냈어요? 서울 올라갔단 소문은 들었는데..."

"덕분에 잘 지내죠 하하 며칠 전에 DB 중공업 갔었는데... 희택씨 퇴사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거기서 나온 지 좀 됐죠, 지호씨 나가고 반년 뒤쯤 나왔나? 지호씨 없으니까 힘들어서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구요 하하하"

"하하하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희택씨 능력남인거 다 아는데요. 근데 참 지금은 어디 계세요?"

"대구 쪽에 있어요"

"오~ 진짜요? 잘됐다. 나 지금 부산 내려가는 길인데 이제 대전 지나니까 2시간 뒤면 도착하겠네요 잠깐 봅시다"

"예?! 오늘요?"

"예 때 마침 딱 점심시간이겠네요 같이 밥이나 먹어요"

"어... 그.. 그래요 그럼"


지호씨는 전직장인 DB 중공업을 떠난 후 서울로 올라가 보험 관련 일을 한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을 뿐 그 후로 2년이 넘도록 직접적인 연락은 닿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연락에 적지 않은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한다. 그것도 모자라 급 번개 식사 만남까지 성사되었다. 난 그에게 나의 직장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점심시간이 다되어 다시 연락이 왔다.


"희택씨! 저 도착했어요!"

"아 그래요? 어디예요?"

"회사 안 주차장이에요"

"예?! 회사 안이라고요?"

"예~ 와 회사 생각보다 엄청 크네요, 직원들도 많은거 같고"

"어... 어떻게 들어왔어요?"

"어떻게는요 그냥 들어왔죠 "


그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왜냐하면 회사 안 주차장에는 상무이상 고위 임원들과 회사 차량 혹은 귀빈 차량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손님은 사전에 정문 경비실에 예약을 해야만 회사 안 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다. 나는 서둘러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사무동 건물을 빠져 나와 바라본 본사 건물 앞 주차장에는 하얀색 BMW 컨버터블 세단이 뚜껑이 열린 체 회장의 차인 검정 에쿠스 리무진 옆에 주차되어 있다. 때마침 점심시간 몰려나온 사무실 직원들은 전부 그쪽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웅성거린다. 경비실에서 걸어 나오는 경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어~ 희택씨! 여기예요!"


검은색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나를 확인하고 손을 흔들며 예전과 같은 너털 웃음을 지어 보인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쪽으로 향한다. 나는 잽싸게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체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정문 밖으로 나간다. 회사 정문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건다.


"지호씨~ 거기에 주차를 하면 어떡해요? 어서 나와요!"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거긴 사장님 자리예요 그리고 저희 회사는 외제차 출입금지예요"


잠시 뒤 그가 차를 끌고 나타났다. 나는 주변을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


"와 ~ 희택씨 이거 너무 오랜만이네요"

"그... 그래요 근데 이거 뚜껑부터 좀 덮으면 안 될까요?"

"왜요~ 날씨도 좋은데"

"사람들이 쳐다봐요"


그는 주위를 한번 휙 둘러보더니 나의 표정을 의식하고는 콘솔박스 아래에 있는 뚜껑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뒤에서 트랜스포머가 변신하는 소리를 내며 뚜껑이 덮인다. 난 목을 젖히고 지붕이 덮이는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미안해요~ 들어가면 안 되는지 몰랐어요 아무도 안 잡길래?"

"우리 회사에 외제차 뚜껑 열고 들어온 사람은 지호 씨가 처음일 거예요, 아마 경비도 당황해서 못 잡은 거겠죠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나 보죠"


당시 한국 자동차의 협력사들의 오너들은 모두 한국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사에 방문할 수가 없을 뿐더러 협력사 라인업에서 제외될지 모른다. 협력사들은 회사 규모에 따라 신차 출시 때마다 일정 수량의 차량을 강제로 할당 구매를 해야 했다. 그래서 협력사의 업무차량은 모두 한국 자동차이다. 또한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완성차 직원 수준에 비할바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차량 할인을 적용해주었기 때문에 수많은 협력사의 직원들은 가격적인 면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고객사의 차량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사에 출장 시에 타사 차량은 진입이 안되기에 여러모로 불편하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어쩐지 직원들이 다들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더라고요 하하하"


그는 자기가 식사대접을 하겠다며 회사 근처에 괜찮은 식당으로 안내해달라고 한다. 난 그와 회사에서 좀 떨어진 복국집으로 향했다.


"와~ 여기 복국 정말 시원하네요"

"그렇죠? 여기 나름 허름해 보여도 맛집이에요, 회사에서 전날 회식 있거나 하면 점심 때여기와서 해장을 하곤 하거든요"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복국 그릇을 한 손에 들고 남은 국물을 모조리 입 속으로 부어 넣는다. 그는 전 직장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관심분야인 금융 관련 일이 적정에 맞는 듯 보인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그의 이름 위에 '부지점장'이라는 직급과 한 번쯤은 들어본 외국계 보험사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


“벌써 부지점장이예요?”

“어쩌다 보니 그리 됐네요 하하하”

“얼굴이 폈네요 폈어, 옛날 DB중공업에서 근무할 때랑은 완전히 다르네요”

“그때는 월급쟁이 였잖아요, 지금은 내가 하는 만큼 인정받으니까 일할 맛 나죠”

“지호씨는 이쪽 일이 잘 맞나 보네요”

“그런거 같아요, 누구의 터치나 간섭없이 내 스스로 뭔가 만들어 가는 기분이랄까요 뭐 그 만큼 책임이 따르기도 하지만 자유롭잖아요”


지호씨는 DB 중공업 기획실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항상 PR관련 기획안을 작성하고 도팀장의 결재를 받을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도팀장의 요구사항과 수정사항에 따라 뜯어고치다가 결국 자신이 의도했던 기획안이 아닌 도팀장의 원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괴로워 했다. 자신이 만들지만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이의 것을 대신 만들어주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건 물론 지호씨 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다른 직장인들도 다 공감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상사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그것을 만들어내고 인정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원하는 것을 만들고 인정받길 원한다.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사는 자와 나를 위한 삶을 사는 자의 차이점이라고 할까? 결국 직장인의 삶은 타인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삶인 것이다. 수많은 직장인이 그런 삶을 살기에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근데 부산에 무슨 일로 가는 거예요?”

"요즘 부산 쪽에 고객이 많이 생겨서 자주 내려가요 가끔씩 강연 요청도 있고요"

"오~ 강연도 해요? 지호씨 완전 잘나가네요"

"그런가요? 강연도 한번 두번 해보니까 재밋더라구요 사람들 반응도 좋고, 그래서 지점에서 외부강사로 임명됐어요 하하하”

“와! 멋있다”

“그래도 DB중공업에서 희택씨랑 일할 때 참 힘들어도 재미는 있었는데..."

"그래요? 하하하 난 전혀..."

"지금은 좀 어때요? 전 직장보단 나아요? 오다가 잠깐 회사 검색 좀 해보니까 거래소 상장사고 규모도 꽤 크던데..."

"그럼 뭐해요~ 내 것도 아닌데요 하하하"

"뭐 그건 그렇죠 직장인이 뭐 다 그렇죠 하하하"


간이 병풍으로 가려진 옆 방에 여러 명의 무리가 방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사장님 들으셨습니까? 좀 전에 웬 이상한 놈이 BMW 오픈카를 타고 회사에 들어와선 본사 건물 바로 앞 사장님 주차 자리에 떡하니 주차하고 회사 안을 두리번 거렸다네요. 근데 좀 전에 가게 앞에 보니까 그 컨버터블 차가 주차되어 있던 거 같은데요. 그 녀석이 식당 안에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요? 재밋네요. 저도 집에 BMW 컨버터블 있는데 한 번 타고 출근해 봐야 겠네요 하하”

“하하하 회장님이 아시면... 좀..."

“아~ 또 회장님 회장님~”

“앗~ 죄송합니다”


오너의 맏아들인 젊은 사장과 그의 졸개 임원들이 늦은 점심을 먹으로 나온 모양이다. 임원 중 한 명이 의문의 오픈카 주인을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근데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랍니까?"

"회사에 아는 사람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경비도 당황해서 들어오는 거 잡지도 못했다고 하네요"

"어떤 간 큰 놈이 외제차를 몰고 들어왔데?"

"직원들한테 공지해서 다시 한번 주의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지호씨는 그 대화를 엿듣고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손으로 틀어 막는다.


“됐어요 뭐 그런걸로 또 공지까지 합니까, 아이구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직도 이런 마인드로 회사를 운영하니 참 어이가 없네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사장님, 아무리 협력사지만 고객사 차만 타라는 법 있습니까”

“그럼 어쩌겠습니까, 한국자동차 눈 밖에 나면 한 순간에 나가리 되는게 이 바닥인데요…”

“됐습니다. 그만들 하시고, 참 미국 쪽 타OE(Original Equipment) 신차 램프 공급 건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어요?”

“예 지금 막바지 협상 중에 있습니다, 그쪽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반응 말고 긍정적인 결과를 내세요! 언제까지 한국자동차 눈치만 보며 살 겁니까?”

“넵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은 단호한 말투에 임원들은 왈가왈부하던 말들은 싹 사라져 버렸다. 나는 말없이 눈짓으로 지호씨에게 나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지은 죄도 없는데 마치 도둑마냥 까치발로 조용히 방을 나와 음식점을 빠져나왔다.


"희택씨 오늘 정말 반가웠어요"

"저도요 이렇게 보게 될 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네요"

"난 직장생활은 체질이 아니라서 휴~ 어딜 가나 똑같아 보이네요 희택씨 고생이 많겠어요 혹시 보험이나 재테크 관심있으면 연락줘요 그리고 혹시 이쪽 일 관심 있음 연락해요 희택씨랑도 정말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하하"


직장생활이 체질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직장인은 적성이 아닌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이전 직장에서도 그랬고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월급에 노예가 되면서 꿈은 서서히 사라진다. 시간이 더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뚜껑이 열리며 굉음과 함께 멀어져 가는 그의 차를 바라보며 자신의 꿈을 향해 질주하는 그의 모습이 부러워진다. 아직 꿈도 찾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나의 꿈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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