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35 (추가개정판)
“ㅅㅅ(시옷시옷) 소설!"
"음... 섹스! 큭큭"
"하하! 역시 미숙이! 니 머릿속엔 머가 들었냐? 참... 궁금하다. 춘곤! 뭐 해? 빨리해! 너 차례야"
"아놔~ 난 왜 빨리 생각이 안 나지"
"땡! 10초 시간 초과!"
"사슴, 순수, 상사, 수술 얼마나 많은데 넌 머리가 나쁜 거냐 순발력이 없는 거냐?"
"마셔라 ♪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춘곤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동갑 셋이 모여 앉아 술 먹기 게임이 한창이다. 춘곤은 이미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가고 있다. 토요일 저녁 춘곤과 나 그리고 미숙이 허름한 막창집에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야~ 씨 X! 나 안 해!"
춘곤은 짜증 섞인 말투로 GG를 선언한다. 녀석은 딸꾹질을 하며 자리에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한다.
"쟤 얼굴이 완전 홍당무인데, 안 따라가봐도 되겠어?"
"괘안타! 저 녀석 좀 토하고 나면 색깔 좀 돌아온다, 안 나오면 그때 가보지 뭐"
미숙은 비틀거리는 춘곤의 뒷모습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남자화장실을 따라갈 순 없다. 나는 그런 미숙을 바라보고 있다.
미숙이와 춘곤은 비공식적인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녀석의 힘든 타지 생활에 적지 않은 위안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원룸을 제 집 드나들듯 했다. 나도 모르는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주말에 가끔씩 우리 셋은 녀석의 비좁은 원룸에서 모여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카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둘은 나름 잘 어울리는 커플같아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춘곤이 나의 원룸으로 찾아왔다. 이미 알딸딸하게 술이 취해 있었다. 그는 나와 또 다시 2차전을 달리려 찾아온 모양이다. 그와 밤새 술을 마시며 그가 했던 취중진담이 떠오른다.
“미숙이랑은 잘 돼 가냐?”
“음…응”
“뭐야? 그 반응은.. 떨떠름한데…”
"미숙이랑 잤냐?"
"잤지~ 많~이..."
"그럼 뭐 이제 둘이 사귀는 거야?"
"뭐 그런 거겠지”
“어쭈! 이 자식 반응이 뭐 이래 뜨뜨 미지근해? 뭔가 있구만”
"나 미숙이가 좋은데... 근데... 싫다"
"그게 뭔 소리고?"
"걔의 주변이 싫다"
“배경?”
“걔! 애가 있더라"
"뭐!?"
미숙은 미혼모였다. 이미 유치원을 다니는 딸이 있었다. 미숙을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날 춘곤은 그녀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모텔에서 그녀와의 원나잇을 계획했던 녀석에게 그녀가 먼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모텔이 싫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 가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리를 떠나고 둘은 적지 않은 술을 마셨고 춘곤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해버렸다. 자정이 훌쩍 넘은 새벽 미숙은 만취한 그를 부축해 엘리베이터도 없는 연립주택 3층까지 올라가느라 진땀을 뺐다. 현관문을 열고 불 꺼진 적막한 집안으로 들어섰다. 미숙은 현관 바로 옆방의 침대 위에 그를 눕히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춘곤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침대로 끌어당겼고 그녀의 입술을 훔치고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술이 취했어도 끓어오르는 성욕을 잠재울 수 없었다. 춘곤은 미숙의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질 때였다.
"엄마?! 왔어?"
춘곤은 순간 움찔하며 움직이던 손을 멈췄고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세워 그의 입술에 갖다 대며 녀석에게 침묵의 신호를 보냈다. 그는 술기운이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아직 안 잤어?"
그녀는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로 나가 아이를 데리고 아이 방으로 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은 숨죽여 빈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왔다고 한다. 다음날 저녁 미숙은 녀석의 원룸으로 찾아왔고 둘은 그날 밤 못 이룬 질퍽한 정사를 치렀다고 한다. 녀석은 그날 밤 그녀와의 잠자리가 잊히질 않는다고 한다. 여태껏 만나본 적 없는 여자였다. 그녀의 몸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둘은 서로의 살 냄새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사무엘!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싫어! 나 저 아저씨랑 놀기 싫어 집에 가! 어서!”
“너 왜 그래? 자꾸 이러면 엄마한테 혼난다. 너가 소풍 가자고 해서 나왔잖아?”
“내가 언제 저 아저씨랑 같이 가고 싶다고 했어?”
“….”
“미안해 춘곤”
“아… 아냐 괜.. 괜찮아”
그녀는 춘곤을 남성뿐 아니라 남자, 더 나아가 아빠의 역할까지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이와의 나들이에 그를 등장시켰고 그는 내키지 않은 삼촌 역할을 해야 했다. 그도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도 그를 내켜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직감적으로 안다고들 하지 않던가? 춘곤은 아이에게 측은함은 느꼈지만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아이도 그런 그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상황을 힘들어했다. 그녀는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을 그와 함께 공유하며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을 모습을 꿈꾸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춘곤과 아이는 그걸 원치 않은 모양이다. 춘곤은 모자(母子) 둘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그만 만날까?"
"... 그래 그게 낫겠지? 서로를 위해서…"
둘은 세상이 원하는 바람직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입으로 헤어짐을 얘기했지만 밤이 찾아들면 둘은 서로를 갈망했다. 둘은 결국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몸을 섞었고 미완성된 그림으로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한다.
"헉헉! 이 녀석 완전히 골로 갔구만"
"자! 희택아 정말 고생했다. 힘들지? 물 마셔"
결국 막창집에서 시체가 되어버린 춘곤을 둘러업고 그의 원룸까지 날아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미숙이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건넨다. 건네받은 물 한 통을 다 마셔버린다. 춘곤은 침대에 대자로 뻗어 방이 떠나갈 듯 드르렁드르렁 골아댄다.
"한 잔 더 할래?"
"여기서?"
미숙이 나에게 2차전을 제안했다.
"응 뭐 어때?"
"그... 그래 그럼 나 먼저 좀 씻을게"
"그래, 그럼 난 술상을 준비하께 큭큭"
미숙의 제안으로 좁디좁은 원룸 방에서 2차전이 진행될 분위기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니 작은 밥상 위에 놓인 프라이팬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콘치즈와 땅콩과 오징어가 캔맥주와 함께 놓여있다.
"야~ 때 미냐? 뭔 남자가 그리 오래 씻냐? 빨리 앉아!"
"어... 언제 또 콘치즈를 만들었데?"
"너 샤워할 동안 사골국도 끓이겠다 이 자식아~ 어서 앉아"
"치이이익 탁!"
"쨘!"
그녀와 나는 좁은 원룸 방에 앉아 코골이 돌비(Dolby) 써라운드 음향 속에서 맥주 캔 딴다. 한동안 좁은 방안에 술 넘기는 소리와 녀석의 코 고는 소리 그리고 가끔씩 음식을 씹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건 나였다.
"너 애 있다며?"
내가 던진 말에 콘치즈를 휘젓던 그녀의 젓가락이 멈췄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던진 말이 더 어색한 상황을 만든 것 같았다.
‘아~놔 내가 왜 이 말이 튀어나온 거지?’
"어 그런데?"
나의 질문에 의성어인지 답변인지 모를 수긍의 짧은 음성과 함께 화제 전환과 동시에 나의 의도와 생각을 파악하고자 하는 말꼬리를 올리는 세 마디의 접속 부사로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너무 짧은 대답과 질문이 나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무슨 말로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할지 몰라 다시 침묵이 흐른다.
이번엔 그녀가 침묵을 깨뜨린다.
"놀랐나? 내가 미혼모라서?"
"음... 어..."
"왜? 내가 불쌍해 보이나?"
"아... 아니야"
“아니긴, 니 눈이 그렇게 보고 있는데… 하하”
“오해마 그런 거 아냐”
"난 행복해 내 딸이 있어서"
그녀는 나의 눈을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 모습이 여태껏 내가 생각하던 그녀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보였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과 고정관념이 그녀를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자들도 불쌍하게 바라보는 자들로 인해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난 니들 둘이 더 불쌍해 보여”
“그게 무슨 말이야”
“넌 행복을 위해 불행을 견디는 녀석 같아 보여. 춘곤은 행복을 좇지만 그게 불행을 가져오는 녀석 같구 하하”
“….”
미숙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말에 뭔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불행을 견디며 행복을 기다린다는 그녀의 말은 듣기 거북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직장인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다. 만약 그녀가 고통을 견딘다고 했다면 좀 듣기 좋았을지 모른다. 고통을 견디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수많은 책 속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고통은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세상의 고정관념 때문일까 하지만 불행이라는 말은 왠지 나의 운명이 정해진 것 같은 느낌을 같게 한다. 나의 노력 여하와는 상관없는 정해진 피해 갈 수 없는 것 같은 것이다. 나중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불행을 감수하는 것보다 나중에 불행이 닥칠지라도 지금 행복한 것이 더 나을 거 같다.
"너도 녀석처럼 현재 너의 행복을 찾아! 그게 불행이 될지 행복이 될지는 가야 봐 알 수 있는 거잖아"
"어?!..."
그랬다. 춘곤은 항상 현재의 행복에 충실했다. 항상 행복해지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 모습이 머리가 굵어진 친구들 사이에선 철없는 모습으로 비치곤 했지만 우리 다섯 명의 꼬치친구들 중에선 가장 행복해 보였다. 나는 항상 지금의 고통 아니 불행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으로 평소 춘곤의 태평한 모습에 습관처럼 핀잔과 쓴소리를 내뱉었다. 마치 내가 더 어른스럽고 잘난 놈 인냥.
“뭐가 그리 심각해?”
“어? 어…”
"자! 한 잔해!”
“퍽!”
“우리 셋의 행복을 위해!"
그녀는 침대 프레임에 기대 있던 몸을 돌려 침대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춘곤의 엉덩이를 한 대 후려갈기며 한 손으론 맥주 캔을 추켜 올린다.행복은 어디에도 있지만 찾지 못할 뿐이다. 그녀는 그 행복이 어디 있는지 찾은 듯 보인다.
밤이 깊어간다.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