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라는 또 다른 가족
평범한 남자 시즌 2-38 (추가개정판)
"야~ 씨X! 좆같아서 못해먹겠다. 때려치우고 나오든지 해야지"
춘곤은 소주가 나오자 마다 뚜껑을 따고 잔에 따르기 무섭게 들이켜기 시작한다. 술은 아직 취하지도 않았는데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다. 술기운이 오르기도 전에 이미 화 기운이 잔뜩 올라 있다.
"와? 뭔 일인데?"
"아놔! 그 썅년이 완전 나를 무슨 개잡부로 본다 아이가"
"누구? 접때 말한 그 이사장 딸이라는 여자?"
"아! 씨X! 아직도 손에서 냄새가 나네"
춘곤은 소주잔을 내려놓고 손을 코로 가져다 대고는 인상을 찌푸린다. 그는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대안 학교의 수학교사 자리에서 행정실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이유 인즉은 원래 수학 담당이었던 여교사가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것이다. 그 여교사는 정교사였고 계약 임시직인 그는 그녀에게 수학 선생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춘곤에게 행정실 말단 계원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행정실로 옮겨야 했다.
"아니 뭐 어째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놔~ 정말 답 없는 인간이네"
그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행정실의 최고 우두머리는 다름 아닌 학교 이사장의 딸이었고 그녀는 우리와 같은 잔나비띠의 동갑이었다. 그녀는 춘곤에게 학교의 온갖 잡일들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학교 화장실의 깨진 변기를 수리하는 일을 하다가 깨진 변기 사이로 터져 나온 오물을 뒤집어썼고 그걸 지켜보던 행정실장은 그를 걱정하기는커녕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며 녀석에게 내던진 말이 춘곤의 안에 날개를 움츠리고 있던 악마를 깨웠다.
"으으으윽! 내 그 년을 잡아 죽이든가 해야지 씨X!"
춘곤은 안주도 나오기 전에 이미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기세다. 그도 그동안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듯 보인다. 그럴 땐 그냥 옆에서 술잔이나 채워주며 들어주는 것이 친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다.
"혹시 니가 뭐 잘못한 게 있는 거 아냐? 그 여자는 왜 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내가 뭐 잘못할 게 있겠냐? 그 년 완전 똘아이라니까. 행정실 사람들 다 싫어한다. 생긴 것도 어디 고사상에 올라간 돼지머리 같이 생겨가지고 으흐윽"
"잘 생각해봐봐"
"아... 혹시... 그것 때문인가?"
"뭐 뭔데?"
춘곤이 처음 행정실 왔을 때는 상황이 달랐었다고 한다. 행정실장인 그녀는 그가 동갑인걸 알고는 녀석에게 상냥하게 대해 줬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든 40~50대의 아저씨와 아주머니 직원이 대부분이라 또래의 남자가 들어와서 적잖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춘곤은 나름 키도 크고 나름 여자들한테는 먹히는 비주얼과 입담이 있었기에 그녀도 그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행정실 직원들과 가진 첫 회식 때 일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대리기사 왔네요~ 오늘 즐거웠습니다. 저 먼저 들어갈께요. 그럼 다들 조심히 들어가시고"
"춘곤씨 집이 어디 쪽이에요? 경대 쪽입니다."
"오 정말? 같은 방향이네요, 같이 타고 가요 가는 길에 내려줄게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타요! 어서!"
그녀는 춘곤의 팔을 끌어당겨 그녀의 빨간 벤츠의 뒷좌석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손에서 덩치에 걸맞은 상당한 완력이 느껴졌다고 한다. 그녀도 뒷좌석으로 들어와 앉고 차문을 닫고는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차 안에서 둘 사이에 어색한 적막이 잠시 흘렀다.
"춘곤씨 학교생활은 어때?"
"예?! 뭐 괜찮습니다."
"편하게 얘기해 둘이 있을 땐... 우리 동갑이잖아"
"아...니 그래도..."
"참! 여자 친구 있어?"
"아니... 요"
"그래? 여자들한테 인기 많을꺼 같은데"
"아니..예요"
"아~ 오늘 좀 많이 마셨더니 취하네"
그녀는 슬며시 춘곤에게 몸을 기댄다. 그녀의 육중한 몸에 밀린 춘곤은 반대편 손으로 차 시트를 받치며 그녀를 지탱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춘곤을 깔고 누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손이 슬며시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온다. 순간 움찔한 춘곤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고 벌어졌던 다리를 쨉싸게 오므렸다.
"운동하나 봐?"
"잠깐 마.. 만 이.. 러"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아... 나 나 여기서 내릴게요"
"뭐야? 아직 멀었는데"
"아.. 아저씨 여기 좀 세워줘요!"
춘곤은 차가 정차하자마자 문을 열고 나가버렸고 뒤도 보지 않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 날 이후 그녀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고 한다.
춘곤은 동병상련의 정 때문인지 행정실의 20대 초반의 계약직 막내 여직원과 유독 사이좋게 지냈고 그녀는 그런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학교는 그전까지 계속 연장해 오던 그 여직원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 그녀가 맡고 있던 업무는 고스란히 춘곤에게 돌아왔다.
그 뒤로 학교 내의 온갖 잡일들을 그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교실의 책상 수리부터 페인트칠, 화장실 보수공사 등등 수학 교사로 왔던 그는 학교 공무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 황당한 건 행정실의 다른 직원들이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여직원이 쫓겨나는 모습을 본 뒤로 다른 직원들은 춘곤과 말도 섞지 않으려 했다. 그는 학교에서 철저히 왕따가 되어가고 있었다.
"희택아~ 세상이 원래 이래 좆같냐?"
"으이구~ 그래 좀 적당히 눈치 좀 보고 행동하지 그랬냐?"
"좆도~씨발! 돈 없고 빽 없으니 개무시만 당하는구나"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춘곤이 당한 괄시와 수모는 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제 녀석도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인간은 피폐해진다. 아름답게 포장된 미디어 속 세상과 휘황 찬란한 도시의 화려함은 사람들의 피폐함을 먹고 자라나는 듯 보인다.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들은 다들 말한다.
"그게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오늘은 안 에스더 목녀의 간증을 들어보려 합니다."
계속되는 토요일 근무로 부산에 내려가지 않은지 몇 달이 지난 것 같다. 부산에 그리 멀지 않은 대구라 고향인 부산을 자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그저 생각일 뿐이었다. 일요일 오전에 평소에 야근으로 부족한 잠을 자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오후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교회 예배당으로 향했다.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냥 예배당에서 사람들 속에 묻혀 라이브 반주에 목소리를 높여 찬양을 따라 부르다 보면 전날 마신 술도 깨고 기분도 좋아지는 걸 느낀다. 갑갑한 노래방보다는 탁 트인 공간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그녀가 단상에 올라간다. 청중을 한 번 둘러보고 크게 한 번 숨을 들이키고 천천히 말문을 연다.
"전 어린 시절 어머니를 하나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 손에 자랐습니다. 그는 어머니나 하나님처럼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는 저를 성적 노리개로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전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 속에서 지우기 힘든 상처를 받았습니다. 현재 저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습니다. 며칠 전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예배당의 사람들은 그녀의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간증에 다들 숨죽여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나 또한 그녀에게서 눈과 귀를 뗄 수 없다. 예배당에 잠시 적막이 흐르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전 지금 사회복지사로 성폭력 방지 센터에서 심리상담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시련과 상처를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받아주지 않으시더군요. 절 쓰실 곳이 있었나봐요. 사실 제가 겪은 상처는 타인의 상처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감싸줄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주시려고 했던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로 하여금 어둡고 낮은 곳에 있는 자들을 감싸안는 일을 시키시려고 하신 모양이예요."
그녀의 차분하지만 임펙트 있는 말은 청중을 집중시킨다. 둘러본 예배당 안에는 같이 눈물 흘리며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과 충격에 휩싸여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사람 두 부류로 나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왜 감추고 싶은 과거를 굳이 들춰내어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절대로 개인적인 아픔이나 상처를 직장동료들과 공유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얘기했던가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라고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아픔을 나누면 더 큰 아픔을 가져다주고 기쁨은 나누면 타인의 시기 질투를 낳을 뿐이라고.
인간은 본디 겉과 속이 다른 동물이다. 그렇게 살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삶은 전쟁과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양 최고의 고전 <손자병법>에서도 어떻게 상대를 기만하고 나를 위장할지에 대해 강조한다.
인간 세상은 올바르게 살아라는 또 다른 고전 <논어> 속 공자의 말씀과 달리 세상은 전쟁터와 같으며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고 기회를 틈타 전세를 뒤집는 철저하게 전략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고 얘기한다. 웃긴 건 교과서에서는 공자의 말씀처럼 올바른 사람을 얘기하면서 세상은 손자의 처세술에 따라 승리하는 사람을 지향한다. 모순이다.
여기 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는 자들도 매주 성경과 목사의 말처럼 예수의 선한 가르침을 듣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손자병법서의 처세술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어찌 보면 여기 예배당에 앉아 선한 가르침을 듣고 있는 것 또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기만 전술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선한 가면을 쓰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한다. 허나 지금 강단 위에 서 있는 안에스더의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녀는 처세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다들 놀라셨죠?"
"어니~ 괘찬나요?"
"응 괜찮아 고마워"
예배가 끝나고 목장 멤버들이 교회 식당에 모여 앉았다. 아직 한국말이 어눌한 띠아오챤은 안 에스더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그녀도 같이 울었는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貂蝉!你都听懂了?”(띠아오챤! 너 다 알아듣는 거야?)
“差不多啊”(대부분요)
“哇! 这小孩子!韩语听力还不错嘛”(와~ 쪼마난게 한국어 리스닝 수준이 대단한데)
"大叔! 你别小看我!”(아저씨! 저 너무 얕보지 마요)
"别别!你们俩 别吵架了 吃饭吧!” (그만! 그만! 말싸움 그만하고 밥 먹어!)
띠아오챤(貂蝉), 그녀는 대구의 Y대학교에서 유학중인 중국학생이다. 언어에 소질이 있는지 한국에 온지 2년밖에 안되었는데도 한국말을 곧 잘한다. 뽀얀 피부에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듯한 볼살과 턱살 때문에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한 얼굴이 중학생이라고 해도 알아챌 길이 없을 정도로 어린 티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녀는 나름 신경써서 한 듯한 얼굴 화장과 각종 액세서리로 온몸을 치장을 했지만 아이의 티를 벗어내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인다.
그런 외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교회에서 그녀와 몇 번 마주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반말과 함께 어린애 대하듯 행동했다. 그녀는 그런 나의 태도에 적잖히 불만이 쌓인 모양이다. 띠아오챤과 나의 말타툼에 조선족 최씨 아주머니가 끼어들며 상황을 종료시킨다.
안 에스더는 좀 전까지 강단에서 보이던 슬픈 표정은 온 데 간데 없이 비가 개인 뒤 화창해진 날씨처럼 활짝 웃으며 우리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간증이 화제는 화제인 듯 보인다. 식당 안에는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숙덕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녀의 남자친구인 요한은 옆에 앉아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는 그녀의 아픔을 나눠가진 유일한 사람인 듯 보인다.
"뭘 그렇게 봐요~ 희택 형제!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하하하"
"아... 아니에요"
나는 안에스더를 한참 쳐다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뭔지 모르지만 그녀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이 느껴진다. 그것이 호기심인지 동정심인지 아니면 그 다른 무엇인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그녀의 간증이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과 신선함을 던져준 것이 분명하다.
“大叔! 干嘛你盯着看人家的脸, 吃饭!”(아저씨! 왜 사람 얼굴을 그리 뚫어지게 쳐다봐요 밥이나 먹어요 밥!)
“你别说大叔, 好不好!"(너 아저씨 소리 좀 하지 말지)
“向大叔叫大叔有什么问题吗?”(아저씨를 아저씨라 부르는데 뭐가 문제예요?)
“大叔是已婚的男人,我不是已婚的呀”(아저씨는 유부남이고 난 총각이야)
"我不管!” (전 상관안해요!)
"아놔! 진짜 요즘 애들은 참..."
"하하하 둘이 왜 그래요? 싸우지 마요, 요한! 얘네들 뭐라는 거에요? 얘네들 좀 말려봐요"
“응 알았어요, 你们俩冷静点儿好不好?这里是教会不是你们热闹的地方。 喜宅哥! 你是哥哥嘛。你别惹她怎样?你关怀她吧, 还有貂蝉! 你也顺从听哥哥的话好不好?” (둘이 좀 진정하면 안되겠어요? 여긴 교회예요 당신들이 떠들고 하는 곳이 아니예요. 글고 희택형! 형이 오빠잖아요.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게 어때요? 그녀를 좀 배려해요 그리고 띠아오챤! 너도 오빠 말 좀 듣는 건 어떻겠니?)
“알겠어, 요한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네.”
“…. 저도 죄송해여”
요한 목자의 중재로 나와 띠아오챤의 말싸움은 진정되었다. 그는 가정 교회에서 중국 목장을 이끌고 있는 목자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말과 행동은 나보다 어른스럽다. 그 때문인지 그를 대하는 나의 행동은 조심스럽다. 요한은 최씨 아주머니와 같은 연변 조선족이다. 남자가 봐도 준수하고 잘생긴 외모에 말투도 조선족 사투리가 전혀 없이 표준어를 구사해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가 조선족일거라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때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왔고 식당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한국의 인(in)서울 유명대학 공과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 다니다가 직장 내 차별을 견디다 못해 일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일년 전 그의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이후 어머니와 이곳 대구로 내려와 대학교 앞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신실한 신앙인이다. 그와 안에스더의 만남은 대구의 어느 지하철 역에서였다. 당시 안에스더는 심각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녀는 지하철 플랫폼 끝단에 서서 달려오는 멀리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고 철로로 뛰어내렸고 그것을 본 요한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철로로 뛰어내려 그녀를 구했다. 그 일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요한은 홀로된 그녀를 보듬어 감싸 안았고 하나님 품으로 인도했다.
그의 정성어린 관심으로 안에스더는 기나긴 우울증과 공황장애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그의 사랑과 신앙심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둘은 연인관계를 넘어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고 교회에서는 두 남녀의 모습에 많은 귀감을 받고 있었다.
“자! 그럼 둘이 서로 사과해요 어서!”
“…”
“…”
안에스더의 말에 나와 띠아오챤은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말없이 쳐다본다. 에스더는 갑자기 나의 손을 잡아 끌더니 띠아오챤의 손과 맞잡게 한다. 그리곤 나를 인자한 미소와 함께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对不起 我错了”(미…안, 오빠가 잘못했어)
“没有我就对不起你,我不应该你这样”(아…아녜요, 제가 미안해요, 오빠를 못살게 군거 같아요)
“뭐라는 거야? 둘이 화해 한거 맞지? 하하”
“자! 그럼 오늘 목녀가 간증도 하고 둘이 화해도 했으니 기념으로 제가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쏘겠습니다.”
“우아~ 난 베스킨라빈스!”
“오케이”
요한의 말에 최씨 아주머니의 어린 딸인 향미가 가장 좋아 펄쩍펄쩍 식당 안을 뛰어다닌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우연히 발을 디딘 교회에서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것 같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과 만나 같이 식사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것이 이제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피를 나눈 것만이 가족은 아니다. 밥을 먹으며 삶을 나누는 것 또한 가족이다.
그래서 식구(食口)라는 또 다른 가족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