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기도

평범한 남자 시즌 2-52 (추가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쨍그랑! 쨍쨍 쨍~"


회의실에 금속성 물질이 바닥에 부딪칠 때 날 법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회의실의 자리한 협력사 직원들과 완성차 직원들은 그 거슬리는 소리에 귀를 막거나 눈가를 찌푸린다.


"이게 무슨 소리 같습니까?"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회의실의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렸던 램프의 사출 구조물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건 이번에 프로젝션 모듈(Projection module)의 앗세이(Assembly) 구조물에 신규 적용된 브래킷입니다. 기존에는 알루미늄 재질을 썼죠. 이번에 자동차에서 플라스틱으로 재질을 변경했습니다. 알루미늄을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소재죠. 그런데 사실 방금 소리를 들으셨겠지만 강성은 알루미늄에 버금갈 정도 단단합니다. 질감도 뭐 거의 돌덩어리 같은 느낌이죠. 플라스틱이 이 정도의 강성을 가지려면 Glass fiber(유리섬유)가 40% 이상 함유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소재를 사출 성형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금형 마모로 인한 금형 수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현재 고객사에서 산출하는 금형비 산정 시스템은 다양해진 소재와 램프 제품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협력사 직원들은 숨죽여 내 얘기에 집중한다. 그들은 여태껏 완성차의 구매담당자 앞에서 이런 발언이나 행동이 쉽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언권이 주어진다고 아무 말을 해선 안 되는 것이 갑을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완성차 구매 담당자는 팔짱을 끼고 등을 의자에 붙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쏘아본다.


"금형비를 인하할 것이 아니라 인상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동차에는 수많은 종류의 플라스틱 사출 부품이 적용된다. 그중에서 램프에 적용되는 사출부품은 품질 조건이 꽤나 까다롭다. 램프는 자동차의 눈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눈에 띄고 상징적인 부분이다. 외관 디자인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 램프 안에 플라스틱 구조물은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심미적인 역할까지도 소화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출품의 외관부에 티끌 하나 스크래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다. 때론 광택이나 필링(Feeling)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불량품이 되기도 한다. 램프부품의 불량률은 타 부품의 불량률을 압도한다. 불량률이 높다는 말은 손실이 크다는 것이고 그 손실은 협력사들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된다. 과거부터 램프 제품의 까다로운 특성 때문에 램프 협력사에서는 완성차에서 제시하는 플라스틱 사출 원가 표준 적용이 어렵다는 호소를 해왔다.


협력사의 끊이지 않는 원성에 완성차의 설계원가 표준팀에서는 램프 부품을 위한 별도의 원가 표준을 제정했고 일부 부품에 한해서 예외사항을 적용해 주었다. 하지만 램프 부품의 원가 표준은 빠르게 변해가는 램프 업계의 신기술이나 공정, 그리고 신소재 적용 등의 변화를 따라오지 않았고 협력사의 제안에도 표준 개정은 지지부진했다. 다른 공정 관련 원가 표준은 해마다 개정을 거듭했지만 유독 램프 원가 표준만은 개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램프 표준과 상황에 맞지 않는 일반 플라스틱 원가 표준을 적용해서 부품 및 금형 가격을 책정하니 협력사의 사정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래요! 거 참 말 한번 잘했소! 전 금성 몰드(Mold) 김직언 부장이라고 합니다. DG 오토모티브의 램프 금형을 제작해주는 업체입니다. 사실 저희 회사는 전자 부품이랑 자동차의 다른 사출 부품 금형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램프 금형이 만만치가 않아요! 또 요즘 자동차 램프가 휀다쪽으로 깊게 감싸고 들어간 구조로 디자인되는데 이런 길고 깊은 형상의 베젤(Bezel)이나 렌즈(Lens) 금형은 금형 구조도 복잡하고 금형 사이즈도 엄청 커지죠 금형 가공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발언에 이제 다른 협력사 직원들까지 웅성대기 시작하며 불만 사항을 하나둘씩 토해내기 시작한다. 금형비 절감을 위해 소집한 회의가 갑자기 금형비 인상 회의로 바뀌고 있다. 완성차 구매와 설계원가 담당자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자! 자! 여러분 잠깐 휴식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20분 뒤에 다시 회의실로 모여주세요"


그들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의실을 퇴장한다. 나와 사공차장도 회의실을 나와 한국 오토모티브의 공장동 휴게실 앞 커피자판기에 서서 커피를 한잔 한다. 그때 회의실에 발언을 했던 그 김 직언 부장이라는 사람이 이 쪽으로 다가온다.


"아~ 젊은 청년! 아까 참 말 잘하데... 내 속이 다 후련하더구먼"

"아... 네..."

"사공 차장님! DG에 이런 직원도 있는 줄 몰랐네요"

"저도 오늘 전대리가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우리도 사실 한국 자동차 금형 정말 하기 싫어, 돈도 안되고 까다롭기는 어찌나 까다로운지, 우린 요즘 해외로 눈을 돌려가 일본이랑 유럽 완성차 금형을 수주해서 제작 하는데... 그게 참 돈이 되지. 그 쪽에서도 우리 꺼 몇 번 쓰더니 가격이랑 품질이 만족했는지 계속 주문이 들어오더라고, 정말 우리가 우물 안에 개구리였지 정말"

"아! 부장님! 그래서 요즘 우리가 금형 좀 부탁하면 까칠하셨구먼요? 다른 주머니를 차면 생각이 바뀌나 봐요 하하하"

"아~ 참! 사공 차장님 그렇게 얘기하심 섭섭하지요 하하"


2차 협력사들도 나름 자기들 살 길을 직접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 같다. 완성차에서 내려오는 원가 압박은 결국 하위 업체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내 파이가 줄면 나눠줄 파이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전에 주던 파이로도 배가 고팠다면 이제는 생사의 기로에서 다른 파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1차 협력사들은 결국 파이 사이에 낀 형국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의 제조업은 대기업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1차 협력사들이 가운데 끼어 위로 비위 맞추고 아래로 달래 가며 이끌어온 것이다. 이제 2차 협력사도 딴 주머니를 차고 목이 뻗뻗해지니 1차 협력사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1차 협력사가 다른 주머니를 찾는다는 것이 한국의 대기업 구조 문화 속에서 쉽지가 않다. 독과점의 한국 자동차 제조업에서 다른 글로벌 고객사와의 거래는 한국 자동차의 입장에서 껄끄러운 것이다. 혹여나 자사의 설계 및 원가 관련 정보들이 다른 글로벌 경쟁사로 흘러들어 갈 우려와 협력사의 해바라기 충성심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DG오토모티브도 한국 자동차가 매출 비중은 클지언정 이익률은 해외 고객사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부적으로 경영진들은 해외영업에 더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글로벌 부품사로 거듭나야지만 종속되지 않는 그나만 자유로운 경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 갇혀 사육되는 형국이랄까? 한국의 자동차, 조선, 전자등의 간판 대기업들의 존재감은 세계적이지만 글로벌 부품기업으로 거듭난 회사가 드문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한국의 대기업은 마치 한국의 부모를 닮아 있다. 자식의 성장을 위해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지원하지만 다 커서도 이래라저래라 하며 세상 밖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지 않고 복종하길 원한다.


마치 품 안에 자식처럼...




“어이! 전대리! 너 도대체 고객사 회의 가서 무슨 얘기를 하고 온 거냐?"

"예?! 무슨 일이라도?"

"아놔! 개념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원가절감 회의에 가서 가격 인상 얘기를 하는 놈이 어딨냐? 그리고 니가 협력사 직원들 선동했다며?"


이틀간의 원가절감 TFT 활동이 끝나고 완성차 전장구매팀에서 DG오토모티브는 차후 원가절감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통보가 떨어졌다. 회의에서의 나의 행동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나로 인하여 원가절감 활동이 협력사의 애로사항 접수 회의로 바뀌어 버렸다. 잠시 뒤 부사장의 호출이 이어졌다.


"전대리,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물의를 일으켜서"

"무슨 물의를 일으켰지?"

"고객사 회의에서 소란을 일으킨 것 때문 아닌가요?"

"그게 소란인가?"

".... 그럼?"

"잘했네!"

"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나를 올려다본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대가 한 것 같네"

"예?!"


직장생활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속에서 갇혀 안일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은 않게 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미룬 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 인기척이 없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헉! 이게 다 뭐야! 띠아오챤!?"


순간 머릿속에 불안한 예감이 엄습한다. 그녀의 핸드폰은 꺼져있다. 쑨샹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도 띠아오챤의 행적을 알지 못한다.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안에스더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정말요? 띠아오챤이 없어졌다고요?"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띠아오챤의 집 앞으로 나타났다. 황급히 뛰어온 모양이다. 그녀의 이마에선 땀이 맺혀있고 가쁜 숨을 헐떡인다. 그녀도 띠아오챤의 이름을 외치면 집 문을 두드려본다.


"아놔! 또 지랄들이네, 야! 조용히 좀 살자! 아놔 어째 저년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

"아저씨! 혹시 이 집 아이 들어오는 거 보시지 않으셨어요?"

"저기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죠?"

"그만 씨부리고 좀 꺼져줄래? 그 새끼들은 모르겠지만 니들 정도는 내가 제대로 주물러 줄 수 있거든!"

"그 새끼들이 누구죠?"


누군가가 띠아오챤의 집을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띠아오챤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리가 없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몸을 의지하러 왔다. 그리고 나의 방이 아수라장이 된 건 다른 외부인이 침입했다는 증거다. 그녀는 그 침입자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옆 집 남자는 귀찮은 듯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난 현관문을 잡는다. 그는 험상궂은 표정을 나를 바라본다. 난 뒷주머니를 더듬거리다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지폐를 3장 꺼내 그에게 건네며 띠아오챤의 집에 찾아왔다는 사람들의 인상착의를 물어본다. 그는 눈을 깔고 턱을 들어 올리며 나의 지갑 속을 쳐다보며 남아있던 만원짜리 지폐 두장마저 쏙 빼내간다.


"항상 들락거리는 떡대 좋은 놈들이 있지, 나도 왕년엔 잘 나갔었는데... 딱 보면 알지 뭐하는 놈들인지 알지, 사채 돌리고 간도 쓸개도 빼내가는 놈들이지 뭐 보나 마나"

"어이~ 형씨! 내 얘기하는 거요? 쓰읍! 저 양반이 덜 맞았구만"

"헉! 쿵!"


계단 밑에서 떡대 좋은 사내 둘이 올라온다. 그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을 걸어 잠궈버린다.


"니들 뭐야? 뭔데 이 쨩개 년 집 앞에서 얼쩡거려? 그 년 어따 숨겼어?"

"짱개 년이라뇨? 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쿵!"


근데 떡대들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다. 한 녀석은 팔에 깁스를 또 다른 녀석은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다. 둘의 얼굴은 거즈와 밴드로 곳곳이 도배되어 있고 그나마 보이는 부분도 피멍이 들어있다. 그 떡대 중 팔 깁스를 한 녀석이 다른 쪽 팔로 안 에스더의 어깨를 밀친다. 그녀는 벽에 부딪쳐 바닥에 쓰러진다.


"상황 파악 못하네 이년이! 우리 짱개 년 때문에 지금 스팀이 많이 올라 있거든... 그년이 사람까지 풀어서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거든... 내가 그 짱개 년은 어떻게든 잡아 족치고 만다."

"야! 뭐하는 짓이야!"

"퍽! 쿵!"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녀석에게 달려들었고 떡대는 몸을 틀어 주먹으로 나의 턱을 날렸다. 순간 턱이 돌아가며 나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턱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뇌까지 전달되며 뇌의 전원을 꺼뜨려버린다.


"희택씨!"

"아놔! 이 좆만한 새끼까지 덤비네 이제, 내가 지금 상태가 이래도 너 같은..."


머릿속 화면이 사라지고 귀속으로 들려오던 떡대의 음성마저도 끝까지 들리지 않고 꺼져버린다.




"희택 형제! 정신이 좀 들어요?"

"여기가...?"

"병원이에요 괜찮아요?"

"아~ 머리가..."


눈을 뜨는 순간 머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무언가가 목 전체를 꽉 잡고 있다. 눈동자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안 에스더의 얼굴 보인다. 그녀는 볼은 피멍이 들어 있고 입술 터져 마른 핏자국이 보인다.


"뇌진탕이래요! 쓰러질 때 머리를 바닥에 세게 부딪쳤어요. 다행히 경미한 수준이라 좀 쉬면 회복될 거래요"

"그 녀석들은?"

"도망갔죠, 내가 어떻게 해보려 달려들었다가 보시다시피 나도 나가떨어졌어요 하하"

"그랬군요..."

"그런데 도대체 띠아오챤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


그녀의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 순간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빛을 바라볼 때면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마치 하나님 앞에 속죄하는 죄인 같은 기분이랄까?


"이제 힘든 일이 생기면 같이 해요, 알겠죠? 제가 힘들 때도 같이 했잖아요"


그녀는 나의 얘기를 듣고는 나지막이 말을 꺼낸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는다.


"우리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 할까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한 기도밖에 없다. 우리는 삶 속에 많은 일들을 겪지만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그럼 기도만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되어버런다.


자신을 위한 기도에만 익숙했던 나는 이제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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