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시즌 2-51 (추가 개정판)
"반갑습니다. 협력사 담당자 여러분들! 한국자동차 전장구매팀 오만한 대리입니다. 금일 모두를 한자리에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최근 과도하게 상승하는 램프 사출금형비용에 대해 협의코자 함입니다. 다들 기탄없는 의견을 부탁드리며 금형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완성차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회의는 1차뿐만 아니라 2차 협력사까지 확대되어 적지 않은 인원이 참석했다. 최초 한국자동차 연구소에서 진행하려던 회의가 한국 오토모티브의 메인 신공장이 있는 곳에서 진행되었다. 이유인 측 최근에 완공된 한국 오토모티브의 국내 최대 규모의 최신식 램프공장을 견학하고 협력사에게 귀감을 이끌어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말은 협력사들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부추기는 것이다.
한국오토모티브는 창사이래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한국오토모티브의 램프사업 진출은 DG오토모티브에겐 창사이래 가장 큰 위기를 가져왔다. 점차 자동차 산업의 전장화(전자화)가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미국에선 테슬라라는 전기자동차 회사가 해성처럼 등장해 자동차산업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처음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전기차 시장에 불씨를 던졌다. 자동차는 내연기관의 동력기계라는 인식에서 디바이스라는 신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100년이 넘는 동안 운송수단으로만 여겨지던 내연기관의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동차 램프의 광원도 단순 할로겐과 HID에서 점차 LED로 그 비중이 넘어가고 있었다. 또한 램프에도 각종 센서 및 전자기기 모듈등이 장착되면서 원단위(자동차 한 대당 들어가는 비용)가 크게 올라가고 있었다.
“앞으로 사라질 회사가 한 둘이 아니겠구만”
“그러게요. 차 안에 무슨 전장품이 이렇게 많은지… “
“차가 아니라 전자기기라니까”
“이제 자동차에서도 기계공학과 출신들은 안 뽑는다잖아, 우리 때는 기계공학 출신은 제조업에서는 1순위 취업 100%였는데… 이제는 전자공학 아니면 전기공학 쪽이 대세라던데”
“우리 회사 공채도 이제 전자공학과 출신은 우대하잖아”
얼마 전 사장의 지시사항으로 전 직원이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대강당에 모여 [자동차의 미래]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다큐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다큐감상이 끝나고 구과장이 던진 말로 해외영업팀 직원끼리 자동차 미래에 관한 심각한 잡담들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업종이라는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내연기관이 사라져도 램프는 사라질 수 없는 부품 중 하나이다. 특히 자동차의 디자인과 외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미래 성장 가능성이 컸다. 그것을 놓칠 한국자동차가 아니었다. 결국 한국 자동차는 계열사인 한국오토모티브를 통해 램프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기존에 DG오토모티브가 국내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한국자동차도 물론 램프 설계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생산능력은 DG오토모티브와 몇몇 중소 램프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해 부품을 공급받는 상황이었다. 한국오토모티브는 기존에 여러 다른 자동차 부품 사업에는 진출해 있었지만 램프 사업 경험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반도체 설계를 잘한다고 생산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 또한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본은 경험을 대체할 수도 있다.
한국 오토모티브는 기존의 자동차 A/S 부품 사업으로 그룹사 중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기는 회사였다. 그룹사 중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였다. 거대 자본력으로 대규모 공장 설비를 짓고 및 램프 관련 인력 수급을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DG오토모티브의 설계, 생산, 생산기술, 품질 관련 인력들이 대거 한국오토모티브로 넘어갔다. 결국 DG오토모티브의 수년간 쌓여왔던 기술과 생산 노하우들은 사람들에 의해서 한국오토모티브로 빠져나갔다. 돈에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DG오토모티브 연봉의 두 배에 가까운 급여와 대기업의 여러 가지 복리후생 조건은 샐러리맨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사업초기 한국오토모티브는 경험 부족과 기존 인력과 신규로 유입된 경력직의 알력다툼 등으로 램프 생산과 품질면에서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내부적으로 성골과 진골로 파벌이 나눠졌다. 한국자동차 공채로 입사한 기존 멤버들과 1차 협력사에 경력으로 입사한 경력직은 서로 견제하면서도 협조해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곳곳에서 불화와 불통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건 DG오토모티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기업으로 빠져나간 실력 있는 경력직원 자리를 메꾸는 방법은 신규인력 채용이었다. 국내 시장에는 램프 관련 경력 직원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결국 신입들을 숙련시키는 데는 많은 기회비용을 쏟아야 했다. 설계 및 생산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품의 품질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한국오토모티브가 더 심각했다. 투자비와 고정비용 대비 생산효율과 품질 수준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국자동차그룹은 최초 목적은 그룹 내 경쟁사 만들어 램프 공급단가를 낮추고 품질 수준을 올리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오토모티브는 기존에 DG오토모티브가 납품하던 가격 수준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품가 대비 고정비용(인건비, 설비투자 상각비용 등)이 너무 컸다. 램프사업은 한국오토모티브에겐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렸다. 신규 사업진출 이래 단 한 번도 수익을 낸 적인 없는 적자 사업군으로 낙인찍혔다. 결국 램프사업은 기술 흡수와 경쟁사를 견제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자동차는 내부적으로는 계열사인 한국 오토모티브에게 DG오토모티브에겐 없는 단가 차별화를 통해 적자 수준을 보전해 주었다. 한국 자동차는 그렇게 DG오토모티브의 제품 단가를 잡아두고 한국오토모티브의 램프기술력과 생산능력을 흡수하려 했다.
그건 마치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1:1 매치 전과 같았다. 현실에 비유하자면 부잣집 자식이 부모님 수혈을 받으며 가난한 집의 능력 있는 자식과 경쟁하는 것이었다. 아직 경기는 진행 중이지만 누가보나 결과는 뻔해 보였다.
DG오토모티브는 그걸 알기에 해외 완성차 고객 유치에 혈안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국내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만 허락된다.
“우아~”
“헐!”
“와~ 정말 규모가 장난이 아니네요”
“워메~ 이건 뭐 공장이여 호텔이여?”
한국오토모티브 램프 공장 내부로 들어간 협력사 담당자들은 입이 딱 벌어진다. 3만 평의 광활한 부지에 지어진 현대식의 최첨단 램프공장의 규모부터 상당한다. 한국 오토모티브의 공장장이 직접 공장 라인에 내려와 협력사 직원들을 인솔하며 공장을 소개한다.
공장 내부는 상당히 넓고 깔끔하다. 새하얀 공장내부에 하얀 작업복과 모자 그리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직원들이 각자의 생산 라인에서 제품 생산에 한창이다. 공장 내부에는 공기정화 장치가 있는지 공기 또한 쾌적하다.
사출 라인 및 조립라인 간 공간도 넉넉하고 한눈에 보기에 뭔가 잘 정돈된 느낌이 든다. 공장 Lay-out이 아주 잘 짜인 것처럼 보인다. 사출 공장에는 1800톤급 대형 사출기부터 다색 사출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공장장을 뒤따라 들어간 금형 제작실에는 5축 가공기를 비롯한 고가의 유럽제 최첨단 금형 가공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광경을 본 협력사 직원들은 입이 딱 벌어진다. 특히 2차 협력사의 입장에서 참 구경하기 쉽지 않은 설비들이다.
"으따! 돈지랄을 했구먼 완전! 이건 뭐 공장이여 박물관이여?"
자사의 금형 제작팀의 사공금 차장과 함께 참석했다. 완성차에서 필히 금형 담당자의 참석을 요청하여 같이 오게 되었다. 그는 한국 오토모티브의 공장동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한 마디 내뱉는다. 그는 DG오토모티브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전라도 출신의 직원이다. 그는 DG오토모티브에서 금형설계팀에서 시작해 생산기술팀을 거쳐 지금의 금형제작팀까지 온 인물이다. 플라스틱 사출에 관해서는 사출 공정부터 금형까지 모르는 게 없는 전문가이다. 그의 제조업 공정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는 나를 탄복케 한다.
"사공 차장님, 무슨 말이에요?"
"공장이 크고 화려하면 뭐더요, 효율이 떨어지는데... 이런 규모의 공장에 저런 최신 설비까지 투자비나 고정비가 만만치 않타니께... 그리고 공장 라인 봤는가? 보기엔 좋아 보이것지, 근데 거시기 공간 효율성으로 봤을 땐 말짱 꽝이랑께"
"예?!"
그의 눈에 들어온 공장 구조는 입을 딱 벌리고 보고 있는 내가 본 것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는 듯하다.
"이런 공장에서 년 3000~4000억 매출을 한다는 게 말이 된당께? 우리 대구 메인 공장이 년 3000억 가까이 소화해 내는데..."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겉만 보고 실속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DG 오토모티브의 메인 램프 공장 부지나 공장 면적에서 이곳의 거의 1/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DG오토모티브 램프공장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첫인상은 무슨 도떼기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슨 양계장 닭장 같이 비좁고 복잡한 구조 속 곳곳에 작업자들이 끼어서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다. 저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그곳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축적된 공정기술이 녹아 있는 곳이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는 것이다. 그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그 공간 속에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만이 아는 규칙과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공간 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작업자들을 그 시스템과 구조에 트레이닝시킨 것이다. 작업자의 짧은 동선구조 그리고 공정간 이동을 최소화시켰다. 자재 입고부터 생산, 납품까지 이어지는 원스탑 lay-out은 시공간 운영의 최적화를 추구해 온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일하는 인간은 거의 로봇 수준에 달하는 이동 패턴과 속도를 갖추었다. 좋게 얘기하면 고도로 숙련된 작업자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로봇이 되어가는 인간이다. 그만큼 피로도가 가중되기 마련이다. 공장이 돌아가는 그곳의 사람들은 생각을 하지도 할 수도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기업가는 그들이 생각할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허긴 뭐 작업자들 널널해서 좋긴 허네, 허벌라게 쾌적한 근로 환경이구마이... 거 참! 인간다운 모습이랑께 하하하"
"아! 그래서 한국 오토모티브가 허구언 날 적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군요"
하지만 대기업의 공장은 효율만 생각할 순 없다. 대외적인 시선도 고려해야 한다. 근로자의 쾌적한 근로환경과 외부 언론과 인사들도 고려한 것이다. 대기업의 간판 공장은 정재계 인사들의 간헐적 방문과 언론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남녀노소 누구나 다 ‘대기업! 대기업!’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기 8:7-
당시 성경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출처까지 확실히 기억하며 가슴속에 품고 있던 말씀이다. 첫 직장을 중소기업에서 시작한 나는 가슴속에 원대한 꿈을 품고 이 구절을 되뇌곤 했었다.
"하하하 야~ 쨔샤! 니 시작이 미약하면 니 나중은 더~욱 미약할끼라! 큭큭,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이미 중소기업을 다니며 이미 사회 물을 먹은 친한 대학 선배와의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내가 당당하게 외치며 읊었던 성경 구절을 듣고는 비웃듯이 얘기했다. 그는 직원이 5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중소기업을 3년가 다니다가 퇴사했다. 더 크고 좋은 회사로의 이직을 꿈꾸었지만 이미 끼워버린 첫 단추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더 나은 회사는 그 보다 낫지 않은 회사의 인간을 근로자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소주잔을 비우며 내게 했던 그 말의 의미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그 의미를 이해할 것 같다.
한국에서의 신분상승의 기회는 학창 시절까지만 유효하다. 대학의 간판이 정해지고 첫 직장의 명함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이후 삶의 질이 결정되어 버린다. 그걸 이미 경험한 부모들은 어떻게든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자식이 놓치지 않길 바란다.
[기회는 변화다]라는 말이 있다. 기회를 잡지 못하면 삶의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의 Chance(기회)와 Change(변화)가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나는 첫 번째 기회를 놓쳤다.
‘두 번째 기회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