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다고 버릴 수 없다
평범한 남자 시즌 2-50 (추가개정판)
"아~~ 아야! 목이야!"
"와! 전대리님 목이 많이 뭉치셨네요"
봉래씨가 나의 뒤로 와서 어깨를 주무른다. 찌릿한 통증이 어깨에서 온 몸으로 전달되며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는 이미 사무용 노트북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 백팩 가방을 둘러맨 채 퇴근할 준비를 완료했다.
"퇴근 안하십니까?
"몇 시야?"
"10시가 넘었어요. 집에 들어가시죠"
"아~ 벌써 그렇게 됐어? 먼저 가! 나 이것만 마저 하고 갈 거야"
"그냥 회사에 라꾸라꾸 침대라도 한 갖다 놓으시죠 하하"
일과시간이 끝나고 밤이 찾아오면 비로소 집중이 가능하다. 잦은 전화도 그 누구의 간섭과 갈굼도 없는 밤이 찾아 들어서야 비로소 한 가지 일에 집중이 가능하다. 낮에는 콜센터 직원처럼 이리저리 걸려오는 업무전화에 , 이것저것 주문하는 상사들의 지시에, 쏟아지는 이메일에 대한 답신에, 도저히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나는 멀티태스킹에는 꽝인듯 하다.
“낮에 그놈의 메신져로 어찌나 달달 볶아대는지… 견적 업무를 하나도 못했어”
“전 그래서 항상 [자리비움]으로 해놓잖아요”
“[자리비움]으로 해놓으면 카톡으로 연락온다니까 휴우~ 벗어날 수가 없어”
“뭐 그렇긴 하죠, 그놈의 메신져가 개목줄이죠”
"몇년 전에 카톡 첨 생겼을 때는 좋고 편하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부터 목줄이 채워진거였어"
완성차 고객사와 협력사간에는 "M톡"이라는 직통 메신저 프로그램은 연결되어 있다. 실시간으로 협력사에게 업무 협조 아니 명령이 하달된다. 고객사는 협력사와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채널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이건 협력사 직원들에게는 개목줄과 같은 것이다. 아침에 출근과 동시에 컴퓨터에 전원을 켜면 그와 동시에 고객사의 M톡과 사내 메신져에 자동으로 로그인 된다. 일과 중에는 고객사 메신져와 사내 메신져 그리고 이메일로 수많은 업무들이 쏟아진다.
눈이 어지럽다. 잠시 자리를 비우면 핸드폰의 카톡이 울려댄다. 업무 단톡방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화장실에서 똥싸면서까지 업무를 지시받는다. 카톡을 안 읽으면 결국 전화가 온다. 거미줄 같이 펼쳐진 네트워크 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미줄에 걸려 몸부림 치는 파리의 기분이 이러할까? 몸부림치면 칠수록 자신만 지쳐가고 죽음의 시간만 앞당길 뿐이다.
그 즈음 답답하던 3G에서 4G로 속도까지 업그레이드 되었다. 초연결 사회는 초강력 감시와 통제의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세상의 발전은 겉으론 화려하고 편리해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편리에 익숙해짐과 동시에 통제와 감시에도 익숙해져 간다. 그리고 어느새 그 익숙함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헉! 거기 누구야?"
현관문 앞에 검은 물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현관문 앞 자동 센서등이 고장 나서 계단을 다 올라오고 나서야 발견했다. 나는 핸드폰의 라이트를 켜서 현관문 앞을 비춘다. 띠아오챤이다. 그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한참을 울었던 것일까? 그녀의 눈가에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그녀는 힘겹게 일어서더니 나의 목덜미를 감싸며 와락 껴안는다.
"你为什么这么玩才回来?我等你好久”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예요?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요?)
그녀의 손에는 작은 설탕 한 봉지가 들려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다 다 떨어진 설탕을 사러 나왔다가 문이 잠겨버린 것이다. 나에게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방안에 놔두고 나왔다. 하는 수 없이 문 밖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我以为你发生什么事了呢”(무슨 일 생긴 줄 알았어요)
"미안해! 늦어서..."
그녀는 나의 목을 더 꽉 껴안으며 다시 울기 시작한다. 나는 그냥 그렇게 한참동안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서 있는다.
“够了吧?” (이제 됐지?)
그녀는 그제야 나의 목을 감싸던 팔을 풀고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那我们进去吧”(이제 들어갈까?)
“응”
방안에는 그녀가 준비한 밥과 음식이 식탁에 차려져 있다.집안에는 맛있는 향이 가득하다. 그녀는 서둘러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식은 요리를 데우며 사온 설탕을 냄비 안에 몇 스푼 집어넣는다.
"쨘~ 我为了大叔,亲自做菜让你尝尝! 你很荣幸吧?” (내가 아저씨를 위해 손수 요리를 했어요! 영광이죠?)
“荣幸荣幸! 这是什么菜?”(영광이야 영광! 근데 이건 무슨 요리야?)
“地三鲜, 你上次在教堂说过喜欢吃地三鲜的嘛?”(띠싼씨엔, 저번에 교회에서 띠싼씨엔 좋아한다고 말했잖아요)
“真的吗? 你这都还记得?”(정말? 그걸 다 기억해?)
그녀는 젓가락을 들어 나에게 건네며 빨리 맛을 보라는 듯 재촉한다. 감자와 청고추 그리고 가지가 갈색 소스에 노릇하게 볶아진 비주얼은 옛날 유학시절 중국에서 먹던 그 추억을 상기시킨다. 나는 젓가락으로 감자와 가지를 집어 입안으로 가져간다. 단짠이다. 근데 너무 달고 너무 짜다. 단짠의 위력에 식재료 고유의 맛이 묻혀버렸다. 나는 조용히 물이 담긴 컵으로 손을 옮겨가려던 찰나였다.
“怎么样?” (어때요?)
“好...好吃" (마... 맛있어)
"真的吗?这是我第一次做的菜” (정말요? 처음 해보는 요리인데)
그녀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기뻐한다. 분명 처음일 거라 생각했다. 처음 만들어본 음식이 맛있을 리 만무하다. 요리라곤 해본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시 그녀를 울릴 순 없지 않겠는가? 이 음식은 맛보다 마음으로 먹어야 될 것 같다.
“哥! 你口渴吗?”(오빠 목 말라요?)
“咦? 有点儿 哈哈”(어? 어 조금 오늘 좀 덥네 흐흐)
그녀의 즐거운 모습을 더 오래 지켜주고 싶다. 나는 물컵을 들었다 젓가락을 들었다를 반복하며 결국 접시에 담긴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녀는 빈 접시를 들어 음식을 더 담아오려 한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再吃点儿,我做了很多”(더 먹어요 많이 했어요)
“…”
나는 대답없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는 내가 잡은 손목을 의아한 눈으로 내려다본다.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일어서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그 방법만이 그 순간 가장 옳은 행동이라고 판단했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는 것이 보인다.
"쨍그랑!"
그 순간 그녀의 손에 쥐고있던 접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접시는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 곳곳으로 흩어졌다.
"아야!"
"야~ 小心!别动!” (조심해! 움직이지 마!)
그녀는 순간 발을 움직이다 깨진 접시 파편을 밟은 듯 짧은 비명을 지른다.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 넣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를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접시 파편들을 주우려고 몸을 숙이려는 찰나였다. 그녀의 손바닥이 나의 뺨을 감싸며 나의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또 다시 그녀의 입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단짠한 띠싼시엔의 맛이 가시지 않은 입술을 비비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不好吃也不会扔了吧?”(맛없다고 버리진 않을 거죠?)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눈빛에는 여태껏 보지 못한 간절함이 서려있다. 그 간절함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那你再吃点吧!”(그럼 더 먹어요!)
그날 저녁 나는 결국 남은 띠싼씨엔을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사다 놓은 1.5리터 생수를 다 마셔버렸다. 그리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