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물림

데모도 ep35

by 글짓는 목수

"윤아랑 너무 싸워서 이제는 나도 지친다"

수호는 병원 앞에 서서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윤아와 송이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호주로 와서 수호와 합치고 난 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그 문제의 중심에 송이가 있었다.

송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윤아는 송이가 그동안 아빠가 곁에 없어서 조금 엇나가는 것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럴수록 윤아는 송이를 더 보듬고 품으며 모든 것을 받아줬다. 아빠 없이 자란 빈자리를 자신이 다 채워주려 맹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그럴수록 송이는 더욱 엇나가기 시작했다. 말과 행동은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송이는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화내지 않고 말로만 타이르는 엄마를 자신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송이는 화가 나면 그 화를 참지 못하고 엄마를 꼬집고 깨물며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송이의 폭력적인 행동은 선을 넘기 시작했고 그 행동은 주변 아이들에게서도 드러났다. 다른 아이가 자신에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을 무시하면 엄마에게 하듯 밀치거나 깨무는 등의 똑같이 위협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송이는 엄마에게 더욱 강한 집착을 드러내었다.

송이가 다른 아이들을 해코지할 때마다 마다 윤아는 주변의 부모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아이의 죗값을 자신이 모두 짊어져야 했다. 그 죗값은 현실의 금전적 비용도 포함했다. 그건 또한 수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게 아이 때문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도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상황도 계속 악화되기 시작했다. 수호 혼자서 세 가족의 생계비와 체류비용 거기다 송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필요한 돈은 수호 혼자 감당할 수 없었다. 윤아는 과거 한국에서 벌어놓았던 돈을 모조리 끌어와서 급한 불들을 꺼야 했다.

윤아가 그런 송이를 제어하려 하면 송이는 엄마를 물고 할퀴는 통에 윤아의 온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윤아는 송이의 그런 버릇을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차마 매를 들거나 강압적으로 아이를 몰아칠 만큼 독해지지는 못했다. 그러려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아이가 숨이 넘어갈 듯 울어버리면 아이를 품에 안고 미안하다며 자신이 더 크게 울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또다시 후회했다.

"왜 자꾸 아이를 싸고 돌기만 하냐고? 넌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애가 이 모양 이 꼴이야?"

"당신이 없는 동안 내가 송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기나 해욧?"

"뭐, 오냐 오냐 하며 키웠겠지 그러니까 애가 저런 거 아냐!"

"송이는 아픈 아이예요! 당신처럼 그렇게 대하면 안 돼요!"

수호는 송이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호는 윤아가 아이를 잘못 키웠다고 생각했고 윤아는 그런 송이와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수호가 얄밉고 원망스러웠다. 아이로 인한 생긴 불화는 점점 커져갔고 아이는 둘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갈수록 상태가 더 악화되어 갔다. 송이는 아빠를 대할 때와 엄마를 대할 때의 말과 행동을 달리 했다. 아빠에게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존재였고 엄마는 예전보다 더 함부로 하고 괴롭히는 대상이 되어 갔다. 송이는 아빠라는 새로운 존재가 스며든 낯선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스스로 학습하며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습득해 가고 있었다.

“또 어딜 가요?”

“남이사! 어딜 가든 뭔 상관이야! 이 노무 집구석 진짜 미쳐버리겠네 정말! 쾅!”

수호는 송이로 인해 윤아와 불화가 생기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수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건 밖에서 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에서는 안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안식은 사라졌다. 숨이 막혀 왔다. 숨 쉴 곳이 필요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스스로 주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엔 대화로 해결해 보려 했지만 윤아 또한 한 치의 양보 없이 그와 대립했다. 둘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서 전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앙금은 계속 쌓여만 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송이의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혼자서 자신만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이웨이로 살아오던 수호에게는 이런 변화가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윤아 또한 수호의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모습에 충격과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송이는 그런 아빠와 엄마의 충돌 사이에서 혼란의 시기를 맞이했다. 수호는 그런 충돌이 생길 때마다 집을 나가버렸다.

행복을 가져올 줄 알았던 이산가족 상봉은 예상치 못한 더 큰 위기를 맞이했다. 송이는 그런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건 분명 되물림이었다. 송이는 수호의 과거였다.


수호는 무관심한 아버지와 윤아처럼 한없이 다정하기만 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수호의 아버지는 원양 어선의 선장이었다. 몇 년을 바다 위에서 떠돌다 돌아온 고국이었다. 그가 어머니를 만난 건 부산항 근처 중앙동의 어느 국밥 집이었다. 어머니는 당시 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 국밥 집에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부둣가 주변에서 남자들 사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미모의 여성으로 소문나 있었고 바닷 일을 하는 수많은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 덕에 그 국밥집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수호의 아버지도 인물 하나는 훤칠한 남자였다. 그는 원양어선을 타고 수없이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마다 현지에 애인을 있을 정도로 카사노바의 기질을 타고난 남자였다. 미인을 보고 그냥 지나칠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육지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어머니에게 갖은 애정공세와 물질공세를 퍼부었다. 결국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다짐과 결혼 약속을 받아내고 그날 밤 그의 원양어선의 선실에서 거사를 치렀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수호의 조부모 그러니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당시 이미 아들을 위해 혼사처를 정해둔 상태였다. 조부모는 부산에서 잘 나가는 유지였고 혼사처 또한 잘 나가는 상인의 집안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국밥집에서 허드레일하는 여자를 데려와 결혼을 하겠다는 아들을 받아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수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양부모를 모두 전쟁 통에 잃은 천애 고아였다. 하지만 수호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했다. 둘은 하객이 없는 조용한 성당에서 신부님의 주례에 맞춰 결혼식을 올렸다.

한 달여간의 달콤하고 짧은 신혼생활을 끝내고 그는 다시 바닷길에 올라야 했다. 그가 떠난 후 그녀는 시가 친척들로부터 온갖 설움과 핀잔을 홀로 견뎌내야 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미움과 시기 질투가 사랑이 떠나고 나니 피부로 와닿았다.

그리고 뱃속에는 수호가 자라고 있었다. 수호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바다에 있었다. 수호의 아버지는 수호의 존재를 전해 들었지만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는 여전히 여자의 살냄새가 그리워했고 세계 각지의 뭍에 닿을 때마다 다른 여자의 살냄새를 맡으며 아내와 수호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었다. 물론 그는 아내와 수호를 위해 꼬박꼬박 부족하지 않은 생활비를 붙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댁집에서 그 사실을 알고 그 돈을 모두 가로챘다. 수호 어머니는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포대기에 수호를 엎고 다시 국밥집 허드렛일을 해야 했다. 국밥 집에 예전만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애 딸린 과부는 애 없는 처녀보다는 인기가 덜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거친 바닷 일을 하는 늙은 홀아비들은 여전히 침을 흘리며 그녀가 일하는 국밥집에 찾아들었다. 애엄마이지만 아직도 처녀 때의 미모가 다 죽진 않았다. 충분히 눈요기 거리가 되었다.

“이런 불에 태워 죽여도 시원찮을 년! 애새끼 낳고 데려오면 뭐 넘어가줄 꺼라 생각했어?”

시가 부모의 반대는 여전했고 그 핍박은 갈수록 더 거세졌다. 수호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할 때쯤 손을 붙잡고 찾아간 시부모 댁에서 시어머니의 찬물과 소금 세례를 뒤집어써야 했다. 시어머니는 수호와 그의 엄마를 떼어놓으려 했고 수호는 할머니의 손을 깨물고는 엄마에게로 뛰어갔다. 그렇게 둘은 다시 도망쳤다.

그리고 둘은 수호 아버지의 가족들 몰래 숨어 지내야 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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