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s

데모도 ep 36

by 글짓는 목수

결국 수호의 부모는 파국을 맞이했다.


다시 바다에서 돌아온 수호의 아버지는 또 넘치는 끼를 버리지 못하고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또다시 외도를 저질렀다. 그 젊은 여자는 수호와 수호의 어머니를 집에서 쫓아내었다.


“사실 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내가 어찌 알겠어 내가 바다에 나간 사이 언 다른 놈이 씨를 뿌렸을 줄… 쩝”


수호 아버지는 술에 취해 저주 같은 망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 맞아들인 젊은 여자 집은 부산에서 힘 꽤나 쓰는 지방 정치인의 딸이었다. 수호의 아버지는 눈이 맞은 젊은 여자에게 수호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잡아뗐다. 아버지의 시부모들도 그 젊은 여자를 새 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수호의 어머니는 어느새 그렇게 마을에서 바람난 화냥년이 되어있었다. 마녀사냥이었다.


그 모습을 보다 참다못한 수호 어머니의 남동생, 그러니까 수호의 외삼촌이 결국 들고일어났다. 그는 힘 꽤나 쓰는 동네 깡패 패거리를 데리고 수호 아버지가 있는 시가댁으로 쳐들어 갔고 수호의 아버지를 끄집어내어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두들겨 패버렸다. 그리고 외삼촌은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징역 30년이라는 어처구니없이 부당한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들리는 후문에 그 젊은 여자 아버지가 판사에게 힘을 썼다는 얘기가 떠돌았다.


수호의 어머니는 수호를 데리고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항을 떠나 부산과 울산 사이의 어느 작은 시골 어촌마을로 이사했다. 그녀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수호가 항상 안쓰럽고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없는 살림에도 수호가 원하는 것이라면 빚을 내어서라도 모두 해주려 했다. 단 한 번도 매를 들거나 아이에게 상처될 말들은 하지 않았다. 수호는 그런 엄마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수호는 유년시절의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 때문인지 학창 시절 좀처럼 마음을 다 잡지 못하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갖은 사고를 치고 다녔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수호가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하고 돌아다니느라 온갖 수모와 손가락질을 다 받아내야 했다.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호에게는 매를 들기는커녕 항상 자신이 미안하다며 오히려 수호에게 ‘다 이 못난 엄마 잘못이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뛰어난 외모는 어딜 가나 수컷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새로 정착한 시골 동네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는 오랜 시간 어머니에게 공을 들였다. 결국 그녀는 수호를 부양하는데 어떠한 책임도 다 하겠다는 서약서에 지장까지 찍은 문서를 받아내고서야 그를 수호의 새아버지로 받아들였다. 다행히 그 남자는 능력 있는 일식 요리사 출신으로 읍내에서 작은 일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아내를 사별로 잃고 자녀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홀아비였다. 수호 어머니는 그의 일식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 함께 일을 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기에 서로의 아픈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새아버지는 수호 어머니가 수호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간섭이나 충고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맡겼고 물질적,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새아버지의 일식 식당이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면서 형편이 나아졌다. 수호는 새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을 남부럽지 않게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친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에 새아버지에 대한 좋은 감정이 쉽사리 생겨나진 않았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는 모습에 해롭지는 않은 존재로만 여겼다. 그의 새아버지는 수호가 사고를 치고 다른 아이를 때리고 와도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고 그 사건의 뒷수습만 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수호는 단 한 번도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수호에게 ‘김 씨 아저씨’였다.




송이의 모습은 수호의 어린 시절과 꼭 닮아 있었다. 다만 수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는 속일 수 없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닮아있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수호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천천히 돌이켜 봤다.


수호는 학창 시절부터, 새아버지의 식당 사업이 나날이 번창해 그 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으로 소문이 났다. 수호는 부유한 가정환경으로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수호는 항상 주변의 부러운 시선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호 주변에는 친구들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그 친구들이란 존재가 대부분 수호가 아닌 수호가 가진 배경과 물질에 관심이 더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호는 새아버지 재력 덕분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금전과 물질 공세로 환심을 살 수 있었다. 학교에서 싸움 꽤나 한다는 애들도 모두 그에게 뒷돈을 받고 그의 뒤를 봐줄 정도였다. 수호 어머니는 수호가 학생으로서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용돈을 요구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 아들이 받은 상처를 그것으로 보상하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었다. 새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정신적 상처는 물질로 치유될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잠시 잊을 수 있을진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수호는 성인이 되고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대학생활에 따분함을 느꼈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한국과 잘 맞지 않았다. 적지 않은 유학생활의 학비와 생활비 또한 부모님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호화로운 유학생활을 영위했다. 집과 자동차 그리고 중국에선 말만 하면 알아주는 명문대학까지 중국에서도 돈이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실 그 모든 비용은 그의 새아버지가 그를 위해 자신의 사업체를 담보로 빚을 내서 해준 것들이었다. 어미새와 아비새는 자신이 먹을 것까지 모두 수호에게 내어주고 있었다.


결국 빚의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시내의 잘 나가던 일식 레스토랑은 은행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새아버지는 다시 남 밑에 들어가 일하는 식당 종업원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새아버지는 수호의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도 지극했고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려 수호에게는 그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수호는 아무것도 몰랐고 계속 집에다 돈을 부쳐달라고 어미새만 쪼아대었다.


집에서 오던 금전적 지원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수호는 뭔가 심상찮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 위기감이라는 것이 돈을 쓰지 않으니 자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쌓아 올린 관계는 돈이 없어지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건 마치 모래성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쉽게 쓰던 버릇은 쉽게 살아지지 않는 법이다. 수호는 누려왔던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고 중국에서 산 집을 담보로 사채를 빌려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은 중국의 법을 잘 몰랐다. 집을 살 때 자신이 아닌 여자친구의 명의를 빌려 집을 샀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치에 찌들어 있던 여자친구는 수호가 더 이상 짜내도 돈이 나오지 않는 걸 알고는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새로운 집주인이 등장했다. 도망간 여자친구가 집을 팔아버렸다. 수호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수호는 갈 곳이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볼 면목도 그렇다고 중국에서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자신을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렇게 수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픈 과거는 허황된 삶을 쫓고 또다시 아픈 과거를 되풀이한다. 수호는 눈앞에 송이가 자신의 과거임을 알지 못했다. 인생은 계속 돌고 돈다. 그 돌고 도는 원 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벗어나지 못함을 알지 못하며 계속 돈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늦은 밤 병원 응급실 앞, 수호와 택건이 서 있는 앞에 택시가 한 대 멈춰 섰다. 택시에서 손님이 내렸다. 택시기사가 둘을 쳐다봤다. 혹시 택시를 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눈빛이다. 열린 택시의 창문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Run away, but we're running in circles

Run away, run away ♪ ♫”

(도망쳐, 하지만 우린 빙빙 돌고 있어

도망쳐, 도망쳐)


당시 호주 곳곳에서 자주 들리는 팝송이었다. 택건은 자주 심심찮게 듣던 이 음악의 가사가 모두 다 이해되진 않았지만 저 후렴구 부분만은 기억에 남아 항상 따라 부르곤 했었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제자리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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