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37
"띵동"
"Who's there?"(누구세요?)
"是我Vicky, 快开门啊!”(나야 빅키!, 빨리 문 열어)
저녁시간 수호는 윤아와 송이 그리고 성일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호는 윤아와 송이가 호주에 온 뒤 마음을 다잡고 일과 집만 오가며 윤아와 송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빅키와의 연락은 일체 끊어버리고 다시 가족들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빅키가 수호네 집으로 들이닥쳤다. 수호는 문 앞에 들이닥친 빅키를 보고 순간 얼어버렸다. 이건 윤아가 처음 호주에 와서 자신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와 얼추 외관상으로는 비슷해 보였다. 그때는 당황스럽고 놀라웠다면 지금은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你怎么了?你这几天都不理我的联系呀, 你想找死吗?”(왜 그래? 너 며칠째 내 연락도 안 받더라, 죽고 싶니?)
"수호 씨 누구예요?"
수호가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윤아는 거실로 나와 현관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빅키와 눈이 마주쳤다. 빅키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코웃음을 지었다. 빅키는 그제야 왜 한동안 수호의 연락이 끊어졌는지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수호는 등 뒤의 윤아의 시선을 외면한 체 빅키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Vicky!求你了!"(빅키, 제발 부탁할게)
수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빅키에게 말했다.
"难怪…"(어쩐지!)”
"수호씨 이분은 누구셔요?"
"어? 어! 우리 교회에 성일형네 목장 식구야"
"아 그래요? 뭐해요? 그럼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요! 성일 오빠! 손님 오셨네요"
"어?! 누구?"
성일은 밥을 먹다 말고 거실로 나와 현관 쪽을 바라봤다. 성일도 빅키를 보는 순간 놀라서 입에 있던 밥풀이 튀어나올 뻔했다. 성일도 빅키와 수호와의 관계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수호는 성일을 바라보며 다급한 무언의 눈빛 신호를 보냈다. SOS 요청이었다.
“Hey! Vickey! What’s up?”(어~ 빅키 왠일이야?)
성일은 순간 얼굴 표정을 바꾸고 빅키를 반기는 척하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수호와 바통터치를 하며 빅키를 데리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빅키는 이미 둘의 연극을 눈치챘지만 그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순순히 연기를 해줄 그런 배우가 아니었다. 그녀는 성일형을 뿌리치고 거실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正好你们在吃饭的呀,我也饿着呢,我也可以吃一顿吧?”(잘됐다. 밥 먹고 있었구나, 마침 나도 배고팠는데, 나도 같이 먹어도 되지?)
빅키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국어에 윤아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영어라면 어찌 대충이라도 상황을 짐작하겠지만 중국어는 전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빅키가 뭐라고 말을 할 때면 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수호를 쳐다보며 그녀가 뭐라고 하는지 물어야 했다. 수호는 두 여자의 모국어가 다르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수호는 윤아가 물어올 때마다 필요한 부분만 걸러서 윤아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빅키!? 플리즈 컴 히얼 앤 싯다운"
윤아는 밥솥에서 밥을 한 공기 담아 빅키에게 내어주며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빅키는 그녀의 미소에 미소와 냉소 사이의 미묘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빅키는 먹지도 않는 음식 앞에서 젓가락만 까닥거리며 윤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말로만 듣던 수호의 본처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신기할 만도 했다. 오랜 시간 상상 속에서 존재하던 것이 현실에 나타나면 나타나는 반응이었다. 빅키의 시선은 줄곧 윤아를 향하고 있었다. 빅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윤아는 자신에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며 핸드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시 확인했다.
"근데 성일 오빠도 중국어 할 줄 알아요? 오빠 목장에 왠 중국 여자분이에요?"
"어?! 어! 아니 얘 호주 사람이야! 영어 잘해"
"아 그러시구나, 정말 부럽다. 영어에 중국어까지 난 영어 하나도 너무 어려운데...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이 젤루 부러워요.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면 호주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려요. 수호씨, ‘많이 드세요’는 중국어로 어떻게 말해야 해요?”
“어? 칭 뚜어츠디엔!이라고 하면 돼”
“아! 칭 뚜어츠디엔 빅키!”
“하하하 Thanks, Help yourself too!” (고마워요, 너도 많이 드세요)
수호와 성일은 갑자기 영어로 언어모드를 전환한 빅키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봤다. 다시 중국어 모드로 전환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네?! 이건 처음 듣는 영어네요, 수호씨 무슨 뜻이야?”
“당신도 많이 먹으라고!”
“아! 오케이, 땡큐땡큐!”
윤아는 빅키가 말한 영어가 무슨 말인지 몰라 수호에게 물어봤다. 그 모습을 쳐다보는 빅키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람 새는 코웃음 소리를 냈다. 윤아는 빅키를 쳐다보며 숟가락을 들어 먹는 시늉을 하며 많이 먹으라는 의사를 전달했다.
“这是你女儿啊?果然长得像你哟,一看就能看出来啊”(얘가 네 딸이야? 너랑 닮았네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야)
“请你帮我早点回你家好不好?以后我给你联系都解释解释”(부탁인데. 빨리 너의 집으로 가면 안 되겠니? 나중에 연락해서 모두 설명할게)
"엄마? 이 언니 뭐라는 거야?"
수호는 상황의 심각성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빅키에게 밝은 표정으로 어둡고 심각한 내용을 전했다. 서로 이질적인 말과 표정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만큼 힘든 게 없었다. 송이는 빅키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윤아에게 물었다. 빅키도 그런 송이가 신기한 건 마찬가지였다. 성일은 가운데 끼여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좌불안석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성일도 중국어는 문외한이라 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你打算怎么样?”(이제 너 어쩔 거야?)
빅키가 말했다. 수호는 먹던 숟가락을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기 시작한다. 괜히 당황한 표정이나 행동에 혹시나 윤아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빅키를 대하려고 하지만 빅키의 돌발 질문에 마음처럼 표정 관리가 쉽지가 않았다. 빅키는 그런 상황이 재밌는지 이제는 여유 있게 그런 수호의 모습을 즐기는 모양새였다.
”这事儿以后再说吧,你看现在都不好说嘛”(나중에 얘기하자, 지금 말하기 좀 그렇잖아)
“没事 你说吧, 反正他们都听不懂我们俩在说什么, 这又很惊喜又有意思,对不对”(괜찮아 말해, 어차피 다들 우리 둘이 무슨 말하는지도 못 알아듣잖아, 이것도 나름 스릴 있고 재미있네 안 그래? 하하"
"求你拜托了” (제발 부탁이야)
윤아는 빅키가 계속 중국어로 말을 하는 모습에 수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뭐라고 하는지 물었다. 수호는 대충 윤아에게 둘러댔다. 수호는 성일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Vicky! Shall we go up to my room if you're done eating?" (빅키, 다 먹었음 내 방으로 올라갈까?)
"No thanks, I just dropped by, now I'll go home, see you later"(됐어요, 집에 갈게요,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거예요, 나중에 봐요)
성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빅키를 이층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빅키는 더 이상 연기를 하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수호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인지 일단 무대 밖으로 퇴장하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빅키는 반짝이는 자신의 명품 백에서 지갑을 꺼내 100불짜리를 지폐 한 장을 송이에게 건넸다.
"Hey, little lady! get something delicious, see you again soon!"(헤이 꼬마 아가씨! 맛난 거 사 먹어, 또 보자)
“아니 이런 거 안 주셔도 괜찮아요~ 수호씨 말 좀 해줘요”
윤아는 빅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어떻게 영어로 말해야 할지 몰라 수호만 쳐다봤다. 그러는 사이 빅키는 이미 현관에서 하이힐을 신고 또각 거리며 현관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삐빅, 부릉”
밖에는 그녀는 타고 온 빨간색 벤츠 세단에 라이트가 깜빡이더니 자동으로 시동이 걸렸다. 잠시 뒤 차창이 내려가고 빅키는 수호와 성일이 같이 서있는 현관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누구한테 날리는지 알 수 없는 야릇한 윙크를 날리며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수호와 성일은 긴장한 모습으로 현관에 서서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중국 여자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송이는 빅키가 주고 간 100불짜리 지폐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엄마! 이거 얼마야?”
"저 여자분은 무슨 애한테 이런 큰돈을 주고 그런데요? 돈이면 다인 줄 아나? 송이야 그 돈 이리 줘! 이런 큰돈은 함부로 받는 거 아냐, 성일 오빠~ 이 돈 나중에 다시 저 여자분한테 돌려주세요. 송이야 그 돈 이리 줘!”
“싫어! 내 거얏!”
윤아는 100불짜리 지폐를 흔들고 있는 송이의 돈을 가로채려 했지만 송이는 지폐를 들고 도망가 버렸다. 윤아는 송이를 잡으려 해 보지만 또다시 잽싸게 도망쳐 버린다.
“그나저나 성일 오빠, 잘해봐요! 저 여자분 예쁘시고 세련되어 보이던데, 이 시간에 혼자 집까지 찾아온 거 보면 오빠한테 관심 있는 거 아녜요? 큭큭 오빠가 좋아하는 스타일 같아 보이는데? 아녜요? 하하"
수호는 윤아의 말에 그녀가 자신과 빅키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에 그나마 안심한 표정이었다. 윤아는 다시 주방 식탁으로 돌아가 식사가 끝난 식탁을 정리했다. 수호와 성일은 집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공터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너 어쩔 거야? 빅키"
"뭘 어째요? 떼어내야죠"
"되겠니?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아까 봤지? 빅키, 고년 고거 연기력이 장난이 아니던데… 뭐 아카데미 여우 주연 뺨치겠던데 큭큭”
“형! 이게 웃을 일입니까? 휴우~ 남의 속도 모르고”
“쏘~쏘리! 근데 어쩌냐? 보아하니 빅키도 쉽게 물러날 거 같지 않아 보이는데... 너도 걔한테 물려있는 게 많잖아"
빅키는 수호가 도박으로 폐인이 되어 돌아왔을 때 수호의 도박 빚을 모두 청산해 주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수호는 고리의 중국 사채를 끌어다 쓴 탓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고 빅키가 아니었다면 수호는 사채업자들한테 붙잡혀 그의 몸은 산산이 분해되어 새 생명을 살리는 데 쓰였을 것이다. 당시 수호는 그녀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었다. 빅키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았다.
빅키는 수호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대가로 별도 차용증 계약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수호는 그 대가로 빅키를 자신의 여자로 받아들여야 했다. 빅키 또한 수호가 이제 한국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자신에게 돌아온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윤아의 등장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남자에게 돈과 여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지만 때론 그것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옭아맬 수도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멀어지면 애타게 찾게 되고 가까이 다가가면 조금씩 옥죄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