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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라 Sep 07. 2020

[국제결혼기] 02. 불편한 시선

얼마 전 해외에서 큰 소포 하나가 배달됐습니다. 영어로 표기된 주소와 수령인을 가리키며 서명해달라며 기계를 쑥 내미는 배달원의 얼굴을 어리둥절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이상하다. 우리 집에 외국사람은 안 사는데..'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불현듯 이마를 탁! 치며 무언가 떠올랐습니다. '맞다. 와이프가 러시아 사람이었지' 하며 서둘러 사인을 하고 물건을 받았지요. 연애할 때부터 현재의 결혼까지 6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늘 함께 생활하고 한국어로만 소통하다 보니, 외국사람이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못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외국어도 통 안 쓰다 보니 언어능력이 퇴화되어 외국인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울렁증이 생기는 등. 웃지 못할 상황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아내를 외국인이라 지각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한 삶을 공유하고 있으나, 집 밖을 나가면 어러 불편한 시선을 내외국인으로부터 꽤 받는 편이랍니다. 




결혼 전 아내와 함께 연애를 해온 기간은 약 4년쯤 됩니다. 그동안 얼굴색과 생김새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손을 잡고 길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종종 주변인들에게 주목받아오곤 했습니다. 서울 홍대, 이태원처럼 내외국인이 붐비는 번화가 내에서는 우리는 수많은 보통의 커플들 중 하나였지만, 어쩌다 서울 외곽 너머 강릉, 보성, 여수처럼 지방이나 시골을 지나갈 때면 많은 사람들이 쑥떡 거리 곤 했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내외국인 이성의 조합이 신기하단 생각을 주는지 주변 사람들의 흘깃 눈길을 흘리는 시선과 위아래로 스윽 훑는 느낌들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죠. 함께 있을 때는 그나마 직접적으로 말을 걸거나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으나, 아내가 홀로 길을 걸을 때면 불편함을 넘어 불쾌한 상황이 붉어지곤 했습니다. 심지어 아내의 한국어 실력은 상당히 높음편임에도 한국인과는 다른 이목구비를 가졌단 이유로 반말로 말을 걸거나, 아내를 곁눈질하며 외국 여자가 한국 남자를 만나는 이유들을 노골적으로 속닥거리곤 했는데 그 소리를 듣곤 남몰래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는 처음 만나는 아내에게 대뜸 국적을 물어보며, 아름답다며 칭찬하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지나가다가도 "와 외국인이다! 헬로헬로" 하며 아내의 뒤를 졸졸 쫓았다니는 경우도 많았지요. 아내는 영어권 국가의 사람도 아니며,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구경거리가 아니었기에 남들이 볼 땐 별 볼 일 없는 일로 생각할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불편한 시선으로 느껴졌기에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상황들을 겪어오다 보니, 한국사람으로서 동방예의지국이라며 배워온 역사가 참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모든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이란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거나 불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며, 혹 외국인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의도가 불손한 의도를 담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단 이유로 과대 반응하여 외모를 칭찬하거나 격한 인사를 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인종이 같고, 생김새가 같았다면 과연 그러한 행동을 했을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한 시선은 비단 우리 한국사람에게 국환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외국사람들의 경우 한국인과 사귄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야유를 하거나, 불쾌한 인상을 부리며 '쉬운 여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합니다. 국제커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과거보다 열리고, 한국뿐만이 아나리 해외에서도 많은 국제부부들이 늘어가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도 주고 있으나, 보수적인 몇몇 사람들 마음에는 여전히 국제커플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는지, 우리 부부에게 상처를 '깊숙이' 남기고 맙니다.


서로 다른 인종, 서로 다른 국가의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여 가족을 꾸리고, 한 인생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신기하고 그 자체만으로 호기심이 생기는 일일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커플을 신비한 대상으로 살피기보단 그저 하나의 평범한 커플, 보통의 가족으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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