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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비 코브라 427을 경험하다

자동차 이야기

by 자칼 황욱익

1995년 개봉한 윌 스미스, 마틴 로렌스 연의 액션 영화 나쁜 녀석들(Bad Boys)은 빠르게 진행되는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지금이야 액션 영화 거장 반열에 이름을 올린 마이크 베이가 첫 감독으로 나선 이 영화를 통해 그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액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깨알 같은 디테일, 마이애미를 펼쳐지는 젊은 전문직(?) 남자들의 극명한 삶이 투영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포르쉐와 셸비 코브라 427이 선과 악을 상징하는 도구로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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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자동차 추격전은 전체적인 맥락을 놓고 보면 별건 없다. 긴 직선을 달리는 단순한 플롯을 짧은 편집과 색감으로 살려 어찌 보면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 등장하는 포르쉐(964) 터보와 셸비 코브라의 대결은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간다. 별 것 없는 플롯을 화려하고 빠른 전개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장명의 80%는 자동차가 했다고 본다.


포르쉐야 스포츠카를 좀 안다는 사람들을 비롯해 요즘은 그야말로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불린다. 반면 포르쉐의 상대로 나왔던 악역 셸비 코브라는 여전히 생소한 차다. 동글동글한 보디에 지붕이 없는 로드스터 형식인 코브라는 요즘 자동차들과는 그 모양도 확연하게 다를뿐더러 국내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차이다. 최근 국내 업체가 쉘비 코브라와 모양이 같은 차로 한창 프로모션을 하고 있는데(이 회사가 수입하는 차는 코브라로 부를 수 없다) 이 차는 생각보다 계보가 복잡하고 원형 보다 레플리카(복제차)가 훨씬 많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또한 포드에서 생산하는 스포츠카인 머스탱에도 코브라 버전이 있을 정도로 셸비 코브라, 셸비 머스탱, 머스탱 코브라 등 파생형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원형은 셸비 코브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1980년대 코브라에 대한 상표권과 모든 권리는 포드가 사들이면서 이제는 코브라라는 이름을 셸비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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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비 코브라는 미국의 레이서이자 튜너인 캐럴 셸비가 영국의 스포츠카 전문 업체 AC 카즈와 협업으로 만든 차이다. 1950년대 영국에서 경량 섀시의 진가를 맛본 캐럴 쉘비는 경량 섀시에 고출력 엔진을 탑재한 차를 고안하게 된다. 그래서 접촉한 곳이 당시 경량 스포츠카를 생산하던 AC 카즈인데 당시 AC 카즈에서 생산하던 2인승 경량 로드스터인 에이스를 최종 모델로 선택한다. 이때 캐롤 셸비는 AC 카즈와 계약하면서 한 가지 특별한 조건을 내세웠는데 ‘엔진은 미국에서 조달할 것’이었다. 엔진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닌 셸비는 당시 쉐보레 콜벳의 V8 스몰 블록 엔진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레이스에서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쉐보레는 셸비의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AC 카즈와 협력관계에 있었던 포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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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코브라에는 포드의 V8 289 큐빅인치(약 4.3ℓ) 스몰블록 엔진이 탑재됐다. 셸비는 엔진을 계속 개량해 1965년에는 V8 427 큐빅인치(약 7.0ℓ의 포드 윈저 엔진 기반)까지 사이즈가 커졌으며 출력은 450마력까지 올라갔다. 코브라 427이라고 불리는 최종형이 가장 유명하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모델이다. 레이스에서의 성적은 좋았지만 AC 카즈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판매량 감소를 버티지 못하던 AC 카즈는 1970년대 말 최종 파산했고 이후 상표권과 권리가 여러 회사를 떠돌며 법정다툼에 시달리다 1990년을 마지막으로 셸비 코브라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손을 뗀다.


오리지널과 가장 흡사한 슈퍼포먼스 Mk.Ⅲ

이후 셸비 코브라는 소규모 생산 업체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의 레플리카로 등장한다. 워낙에 오리지널 모델인 AC 코브라의 생산량도 적었지만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같은 차를 생산하다 보니 상표권이나 판매권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427 엔진을 탑재한 1960년대 오리지널 모델의 가격은 최소 20억 가까이 되지만 수많은 레플리카 업체에서 만든 모양만 비슷한 복제차들의 가격은 1억 이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레플리카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셸비 코브라 다음으로 대우받는 회사도 있다. 미국 소규모 자동차 회사인 슈퍼포먼스가 제작한 차들인데 이 차들은 AC 카즈의 디자인과 제작방식으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오리지널 셸비 코브라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해도 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 개인 컬렉터들이 가지고 있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물이 나오자 자마 사라진다. 반면 원형을 제대로 재현했다는 슈퍼포먼스의 코브라는(편의상 부르는 이름)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편이다. 아쉽게도 셸비나 코브라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가장 원형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셸비 코브라를 찾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운 좋게 슈퍼포먼스의 Mk.Ⅲ를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코브라 427의 복각판인 Mk.Ⅲ는 스틸 파이프로 짠 프레임에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했으며 엔진 역시 셸비가 튜닝한 포드 427FE를 사용했다. 빵빵하게 불려 놓은 리어펜더나 또랑또랑한 앞모습, 미국 스타일로 휠 하우스를 꽉 채운 17인치 휠, 미끈한 굴곡을 가진 사이드 뷰까지 우람한 근육질 보디와 관능적인 섹시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5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이 디자인은 요즘 디자인에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스틸 프레임에 알루미늄 패널을 올린 외관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비율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FRP로 성형한 패널을 사용해 무게를 더 줄인 버전도 있지만 코브라는 알루미늄 패널이 정석이다. 가격 역시 알루미늄 패널 쪽이 훨씬 높으며, 일본 내에서는 최소 900만 엔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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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Ⅲ는 요즘 차들과는 전혀 다른 차이다. 엔진을 제어하는 ECU 대신 기계식 카뷰레터가 있고 전자장비는 전혀 없다. 무거운 클러치와 낮은 시트 포지션, 불편한 운전석, 커다란 스티어링 휠 등 편의성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안전벨트도 요즘의 버클식과 다르다. 말 그대로 운전자를 시트에 묶는 방식에 가깝다.

실내는 매우 단출하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대시 보드에는 rpm 게이지, 속도계, 유온계, 수온계 등 간단한 것들만 제자리에 있다. 차체 중앙에 자리 잡은 시프트 노브는 상당히 긴 편이며, 구조가 최근의 것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도어 안쪽의 패널은 과감하게 생략되었으며, 탄탄한 느낌의 시트도 클래식한 멋이 가득하다. 얇은 프레임의 윈드 스크린과 윈드 스크린 아래쪽에 자리 잡은 룸미러도 오리지널 사양을 그대로 가져왔다.


미국 엔진답게 427 엔진은 초반 토크가 매우 강하다. 변속하는 타이밍을 놓치면 3단에서도 휠 스핀이 발생할 정도로 다루기가 어렵다. 천정이 없는 로드스터, 가벼운 차체, 590마력의 폭발적인 출력까지 고려하면 Mk.Ⅲ를 운전하기 위해 운전자는 많은 것을 배우거나 포기해야 한다.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이 많지만 이 차는 운전석에 않아 차를 출발시키면 모든 단점을 잊을 수 있다. 낮은 차장 너머로 불어오는 맞바람과 기분 좋은 배기음, 토크 스티어만 주의하면 착착 감기는 손맛까지 그야말로 오감만족이 따로 없다. 물론 이런 차를 일상주행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브라는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꿈꾸는 멋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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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를 타게 되면 단순히 비싼 차와 좋은 차의 기준이 보다 명확해진다. 요즘이야 워낙에 성능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는 차는 거의 없고 출력도 예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여기에 다양한 편의장비까지 기본 제공되니 메이커만 다를 뿐 개성이나 차별성 같은 것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물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편하고 빠른 차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반면 좋은 차의 기준은 사람마다 여전히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개성 있는 디자인을 가진 차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디자인은 포기하더라도 폭발적인 성능을 가진 차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비싼 차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좋은 차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할수록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


PS : 이 기사를 쓰면서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각난다. 가장 좋아하는 차로 언제나 셸비 코브라를 꼽았던 친구인데 그가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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