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생이 대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한다. 합격 통지를 받고 등록금도 다 납부한 상태인데, 아무래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새내기라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수강 신청이었다. 학점의 기본 개념부터 요일 공강의 중요성까지 귀가 닳을 정도로 주입시키고 있다. 다른 학교라 정책은 많이 다를 테지만, 신입생이라 입학식 이후 수강 신청도 학교에서 모아 따로 하는 것은 비슷하기에 수강 신청 자체에 대한 부담을 아직 말하진 않았다.
내가 수강신청을 장렬하게 망한 적이 딱 두 학기 있었다. 첫 번째는 아직 수강신청이 망했을 때의 경험이 없었던 시절, 1학년 2학기이다. 두 번째는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라 다음에 천천히 말해보겠다. 어리석게도... 당시까지의 나는 우리 집 컴퓨터를 너무나 믿고 있었다. 이미 내 컴퓨터로 영화도 금방 다운로드하고 메이플에 롤까지 돌려도 끄떡없는데 설마 PC방까지 가야겠어?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선물 받은 내 컴퓨터는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었던 좋은 성능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비흡연자라 담배 냄새가 풍겨오는 PC방을 정말 싫어했다. 최근에는 금연구역, 흡연구역을 따로 나누어 쾌적한 곳이 정말 많아졌고 대부분이지만, 어릴 때 처음 가봤던 PC방은 더러운 조명과 고약한 냄새 탓에 너무나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여러 이유 때문에 굳이 PC방까지 가서 수강신청을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 학교는 아침 9시에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학기 중도 아닌 황금 같은 방학에 일찍 일어나서 가기에는 정말 피곤했다.
신입생일 당시에는 학교에서 아예 신입생들만을 위해 정원을 따로 정리했고,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신청을 하게 했었다. 대학생들은 알겠지만, PC방만큼 좋은 컴퓨터가 서버가 공통된 학교 컴퓨터라서 성실한 학우들은 학교 도서관이나 전산실에 미리 가서 컴퓨터를 선점해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우리 과는 컴공이었으니 여기에서는 매우 이득이었다. (나는 이것을 주로 학기 중 정정기간에 이용했었다.) 그렇기에 아직 내게는 수강신청의 무서움이 그다지 없는 상태였다.
수강신청 당일, 서버가 열리기 1시간 전에 일어나 대충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잠도 깰 겸 빵 한 조각 우걱 먹으면서 미리 짜둔 시간표를 다시 검토하고 있었다. 전공은 필수 과목이 많았던 관계로 꿀 교양을 넣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라 선배들과 학교 커뮤니티를 통해 알음알음 알아낸 영어 과목으로 도배해서 교양을 편하게 다닐 계획이었다. 게다가 가장 듣고 싶던 수업은 모든 시험과 과제가 절대 평가라서 토익도 750점 이상을 따오면 기본으로 A0를 준다고 하니 의욕에 불타 있었다. 그리고 원대한 목표는 목요일 공강이었다. 목요일만이 전공 필수 과목이 하나도 없던 날이라 정말 교양 과목만 테트리스 잘해서 넣는다면 깨끗하게 비워둘 수 있었던 것이다. 왕복 2시간 이상 통학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라도 학교를 안 가는 날이 더 생기는 것이 얼마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인지.
서버가 열리기 20분 전, 대학생들, 그리고 티켓팅 좀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는 그 사이트 네이 X 즘에 들어가 학교 사이트를 입력해뒀다. 당시 그 사이트에는 간단한 채팅방이 있었다. 시간에 맞게 들어가면 학우들이 저마다 수강신청을 부르짖었다. 채팅은 안 하고 다들 멘탈이 나간 상태를 구경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사이트를 티켓팅 때문에 자주 접속해 들어가는데, 이제는 티켓팅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서 시간만 간단히 확인하고 만다. 동시에 학교 커뮤니티에도 온갖 말들이 올라왔다. 직전까지 과목을 신청할지 말지 고민하는 글과 내 자리 하나만 남기고 다들 성공하자! 나는 그 마음이었다. 다들 원하는 시간표대로 다니면 얼마나 좋겠어?
이제는 티켓팅 용도로 더 자주 들어가게 된 그 사이트. 무조건 크롬 브라우저에서 새로 고침 30초 전까지 해줘야 한다.
기숙사 혹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은 같이 PC방에 모여서 수강신청을 했다고 들었다. 과 단톡에서 조마조마하며 이야기를 보던 중, 다 같이 10초 전부터 말이 사라졌다. 나도 역시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이 순간에 내 한 학기 운명이 걸려있었다. 제발 올클해서 목 공강, 제발 올클해서 목 공강!
5, 4, 3, 2, 1...
1?
1?
1?????????????????
이상하다. 새로고침도 했고 정시가 되었는데 접속이 안 된다. 야속한 안내 메시지가 떴다. 무서운 것은 사이트에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짜 큰일 났다.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처음부터 배정이 미리 되어 있던 필수 과목을 제외하고 꿀 교양이나 쉬운 전공 선택 수업 정원이 다 차버린 것이다. 충격과 눈물의 순간이 따로 없었다. 접속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히 수강신청 창이 떠야 하는데.
출처: 잡코리아, 알바몬 설문조사 결과 / 관련 기사: http://edu.donga.com/?p=article&ps=view&at_no=20180910172449742180
이렇게 허무하게 신청 버튼을 눌러보지도 못하고 30분이 넘어서야 겨우 접속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교양은 아주 꽉 차버렸기에 아무것도 누를 수가 없었다. 초과된 정원이라는 말만 야속하게 뜨고 있었다. 학교 게시판에는 나처럼 수강신청 망한 사람들이 즐비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필수 과목 중 시간대 정도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정정기간의 성공을 기원하며... 나는 다시 잠을 자고 점심이 넘은 시간에 일어났다. 여전히 아침에 벌어진 대참사를 인정할 수 없었다. 끝내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낮술을 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담으면서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PC방 가야지. 정정 기간에도 꼭 PC방 갈 거야. 그러나 정정 기간에서 아무도 빠지지 않아 그대로 다니게 되었다.
원하지 않은 여유로운, 그렇지만 매일 통학해서 여유로운 학기는 전혀 아니었다. 졸업 부담이 다소 적은 저학년일 때 빡세게 다녀놔야 화석일 때 편한 것을... 1학년 2학기에 겨우 16 학점을 신청하고 만 것이다. 계획은 21학점을 들을 생각이었는데. 졸업 학기가 아닌 이상, 우리 학교는 15학점이 최저 이수 학점이었다. 웃긴 것은 학점이 적었으나, 정말 망한 수강신청이라서 공강인 날이 없었다. 주 5일을 꼬박 통학으로 나가야 했던 것이다. 정말 지겨웠다. 아침 10시 강의 겨우 두 시간 듣고 집에 오는 날도 있었다. 교수님이 쿨하신 분이라 가끔 한 시간 만에 끝나는 날도 있었다. 강의 시간이 통학시간보다 짧았다. 이런 날에는 괜히 나갔다 온 것이 아쉬워서 도서관에서 과제를 마치고 가거나 학교 주변 영화관이나 서점에 가곤 했다. 이 시기에 영화를 제일 많이 봤던 것 같다.
이렇게 개판난 시간표로 인해 1학년 2학기는 널널하지만 널널하지 않은 모순적인 시간표를 갖게 되었고,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학점 수가 적은데 왜 성적까지 개판이 났을까? 그것은 그만 전공 필수 과목에서 만난 교수 한 명이 나와 상극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