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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Jan 21. 2020

갈굼에 시달린 1학년을 건드리면 큰일 나는 거야

선배라고 해도 안 봐준다





 20대여도 꼰대는 있다.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쁜 것만 골라서 내리 갈굼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젊다고 해서 다 생각이 깨어있고 합리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발표 당일. 모두 밤을 새우고 나온 터라 예민함이 극도에 달한 상태였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각자 할 몫들은 다 끝내 와서 적어도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를 잡히진 않겠다고 각자 생각했었다. 다들 오늘만 버티면 된다라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고,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래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는 뿌듯함 역시 있었다. 개강이 2주 밖에 남지 않았으나 그 기간이라도 알차게 누리겠다는 생각에 기뻤었다.


 문제는 그날 아침부터 스트레스로 인해 복통이 시작되었다. 쌓인 피로에 스트레스가 당일에 폭발해버리고만 것. 급기야 월경으로 인한 통증까지 함께 겹쳐서 배가 온 방향, 가지각색으로 아픈 상태였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가족들은 어떻게 쉴 수 없겠냐며 말렸다. 하필 내가 발표 담당이라 빠질 수 없었고, 진통제를 겨우 먹고 발표 직전까지도 간단히 대본을 읽어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졸업한 선배들 서너 명이 왔던가. 그리고는 1학년 우리들, 간부 선배들, 좀 더 윗 학번 선배들. 대강당도 아니었으며 다른 학과 건물의 작은 세미나실이었다. 그럼 학과장님이랑 교수님들은? 당연히 오지 않으셨다. 학과장도 와서 보는 자리라며... 간부에게 물어보면 분명 뭐라 할 테니, 자리 정리를 도와주던 그 이전 학번 선배한테 물어봤다. 학과장이나 교수님들은 안 오시냐고. 선배 말하길,



-교수님들이 여길 왜 와...?

-안 와요?

-안 오시지?

-왜죠.

-교수님 오신댔어...?


듣는 우리가 궁금한 말이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갔는데 교수님들은 오는 자리가 처음부터 아니었다니. 학과장 오는 자리라 정말 잘해야 한다며. 아무도 내색하진 않았으나, 1차적으로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분위기가 싸한 채로 시작한다. 동기들은 모두 잘 만들어왔다. 한 가지 슬픈 것은 모두 전 날 밤을 새운 것이 역력하여 다들 피곤해 보이는 분위기였고, 신속하게 진행해서 얼른 집에 가서 쉬자는 눈치였던 것이다. 두 달이나 되는 방학에서 한 달 반을 계속 학교에 나와 만든 프로젝트였으니 그래도 조금의 뿌듯함은 있었다. 서로 발표 자료를 보면서 저걸 어떻게 만들었어? 대단하다며 칭찬하고 물어봤다. 이게 이 난장판에서 얻은 아주 작은 행복이었던 것 같다.


 결국 발표가 끝날 때까지 학과장은 물론이며 교수님들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마지막 조의 발표가 끝나자, 간부 선배가 나와 마이크를 잡고 딱 한 마디를 하고 끝냈다.



-자, 이제 회식은 학교 후문 쪽에 있는 XXX에서 진행하니 선배님들 먼저 이동하세요! 예약했습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최종 목적은 술이었다. 나는 분노가 쌓이다 못해 한계치까지 채우고 말았고... 그래도 여기까지 참았다. 사람 이렇게 많은 자리에서 언성 높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다른 선배한테 먼저 통증이 너무 심해져서 회식은 안 가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새 x가



-야. 너 그냥 가서 앉아만 있어. 약 먹었으면 안 아플 거 아냐? 술만 마시지 마. 누가 마시랬냐?



 군대도 안 갔다온 게 군기 잡는 것도 황당했는데(물론 다녀온 사람도 절대 잡으면 안 된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그걸 저따위로 말하다니. 나는 더 이상 대꾸할 가치도 못 느껴서 그냥 무시하고 째려봤다. 그러다 그가 한 마디 더 하려고 하니까, 결국 네, 앉아있는 것도 못해요. 지금도 진통제 먹고 버틴 거예요.라고 말하고 가지 않았다. 나 이외에도 정말 저녁 아르바이트, 가족 일정이 있는 친구들이 불참을 통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간부들은 들을 생각을 안 했다.


 결국 1학년들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참지 않고 탈퇴를 통보했다. 일방적인 공지에 무작정 통보만 하고 이게 뭐냐고. 다들 화를 가라앉히면서도 조용히, 차분하게 말을 진행하려 했다. 납득이 안 되는 통보 과정과 진행 방식. 일부는 과장된 거짓말이었으면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제 때 알려주지 않아 시간을 몇 번이나 낭비한 상태였다. 간부들은 왜 발표까지 다 잘해놓고 이제 와서 그러냐는 식으로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회식을 가자면서. 황당했다.


 이 분위기에서 술까지 먹고 싶었을까? 술이 들어가면 싸움이 더 커졌을 텐데. 우리는 다시 물었다. 너희는 도대체 어떻게 했었냐고. 작년에도 혹시 이런 것이냐고, 그럼 바꿀 생각을 해야지 왜 우리에게도 대물림을 하고 불이익에 가까운 통보를 하냐고. 나쁜 전통은 버리고 뜯어고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당일 통보들이었으면 우리에게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라도 했어야 했다.


 이것을 겨우 동아리 전통이라는 말로 퉁치기에는 우리는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첫날만 해도 이렇게 안 할 거라면 그냥 나가라는 폭력적인 말과 일부러 엿 먹으라는 식으로 직전 통보의 공지들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었다. 설마 미래에 진출할 사회 생활을 맛본 것으로 퉁치라고? 그럼 언제까지 그런 무통보로 인해 휴식 없이 시달리는 삶을 살려고?


 이미 그 시기에도 어른들의 사회는 그런 과도한 업무를 지양하며 합리적인 워라벨을 추구하는 추세였다. 어디서 꼰대짓만 알짜배기로 배워와서는... 차라리 학기 중 과제나 시험 때문이었다면 정말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린 각자의 계획과 여유를 영문도 모른 채 반납하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통보만 받아왔다. 우리도 과정과 일정에 대해 공유받았어야 했다. 1학년이라고 해서 선배들 말에 굽신거리며 따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동아리는 동아리여야 하지, 서로 눈치 보고 통제 받는 곳이 아니다.


 그렇게 폭풍같은 동아리를 나는 사랑하는 전우들을 얻고 탈퇴했다.



질풍같은 1학년 1학기와 첫 방학이 그렇게 끝났다. 진짜 이게 1학기였음.



 가끔 통학길이 겹쳐 버스에서 인사도 나누던 선배들도 이제는 째려보기 바빴다. 물론 나는 당하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 똑같이 째려봤다. 솔직히 째려보는게 무슨 위협인가 싶었다. 우리 아빠가 어디 가서 지고 다니지 말랬다. 무조건 버스에서도 먼저 내릴 정도로 지지 않았다.


 웃긴 일이 또 있었다. 탈퇴한 일부 여자 1학년들에게만 선배들이 학교에서 더 이상 아는 척 하고 다니지말라는 카톡을 했다는 것이다. 여자한테만 보낸 것도 진짜 웃기지 않나? 대거 탈퇴한 학생들 중에서는 남자들도 많았다. 당연히 공대니까 절대적인 성비로 보면 남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컴공이 성비가 가장 비슷한 공대여도, 약 6:4 정도의 성비를 유지하는 곳인데 말이다. 당연히 우리 1학년의 성비도 그 정도 되었다. 만만하다 생각해서 골라서 그런 것이 정말 치졸했다. 나는 카톡을 받지 않았었다. 탈퇴한 당일에 그냥 차단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까지 찌질하게 행동했을까. 정작 동아리 탈퇴나 '읽씹'에 대한 보복은 당연히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같은 학생들끼리 뭘 그렇게 하겠는가. 그들은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동아리에서 나간 친구 중 일부는 학교에도 정이 떨어졌다며 휴학을 했다. 여파는 엄청났고, 듣기로는 그 동아리는 2학기에도 남은 1학년들이 다 나가버렸다고 한다. 끝내 내 학번의 사람들은 그 동아리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 아래 학번들이 고생 많았을텐데, 그 이후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 또 힘겨운 나날이 벌어졌으니까. 동아리는 여러 고비 중 하나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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