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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Jan 20. 2020

바가지를 긁으면 폭탄이 된다

셀프로 불 붙이기 전에 놔라




 입학 뒤 여러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린 결과, 전반적으로 과 사람들은 물론이고 타 과 사람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이중 교내 활동으로는 학과 학생들끼리만 구성하는 전공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상하게 선배들의 수가 유독 적은 동아리였지만, 이곳에서 구상하고 목표로 하는 전공 세부 목표가 마음에 들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왜 선배들이 적은 지 궁금해졌을 때 도망쳐야 했는데.)


 초반에는 꽤 예쁨 받는 신입생이었다. 입부 신청을 한 신입생 중, 유일하게 사전 자료를 준비해 자기 PR도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나서 뿌듯했었다. 그 덕분에 선배들이 나를 제일 먼저 기억하고 우선순위에 두었다고. 게다가 술자리에서  주량도 센 덕에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마시면서 동기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모습을 보니 다들 나를 차기 부장 감으로 여겼을 정도다. 가끔 우주 공강 시간에는 선배들이랑 PC방에 가 롤도 하면서 친목 아닌 친목도 잘 다졌다. (탑은 늘 내가 지켰다. 데마시아!)


 문제는 내가 단체 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적응하는 만큼, 개인주의적 성향도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단체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걸림돌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마다 요구하는 단체 생활의 참여도가 모두 달랐던 것. 나는 충분히 잘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동기들도 비슷하게 생각할 정도. 너 정도면 통학이라 집이 먼데도 꾸준하게 잘 가고 지각도 안 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문제는 동아리 선배들이 더욱 높은 참여도를 요구했던 것.


 몰아치는 신입생 적응기를 끝내고, 종강을 일주일 정도 앞둔 무렵, 동아리 소집이 있었다.


-방학 동안 다들 학교 나와야 하는 거 알지?

-? 아뇨?


 한 학기 내내 말이 없다가 갑자기 나오라니. 여기서 참석하지 못하는 타당한 이유를 말하라는 선배들의 말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타 지역에서 올라온 친구는 본가에 내려가서 못 나올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한 선배로부터 그 친구는 그럴 거면 동아리를 아예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생활비 때문에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할 예정인 친구에게는 네 개인의 일보다 동아리에 대해서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게 10분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분위기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곧 있음 종강이라는 생각에 들떠있던 판에 찬 물이 쏟아졌다.


 물론 매일 나오라는 것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러나 처음 맞는 방학을 여행, 아르바이트, 각종 일정으로 잡고 있었던 동기들에게 한 달도 아니고 일주일도 안 남기고서 들어온 통보에 다들 충격이었다. 당연히 일정이 있는 동기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르는 사이에 공지라도 올라왔었는지 재빠르게 동아리 단톡방과 홈페이지를 뒤졌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간부 선배들이랑 친밀해진 편이라 생각했어도 따로 듣지도 못했는데. 정말 일주일 전 갑자기 떨어진 소식이었고, 이 소통의 부재 탓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잠깐 나가서 얘기하고 오겠다는 선배들, 이어  너머로부터 우리도 작년에  왔는데  못해?  나오면 나가라고 !라는 말이 들린다. 간부보다    학번의 선배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들어와서는  나오는 친구들만 간단하게 사유를 다시 정리해서 말하고 가면 자기가 말해보겠다며 달래주었다. 필수는 아닌데 서로 오해가 있었던  같다고. 그렇게 다른 선배들 덕에 싸움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래도 분이  풀린 친구들은 결국 동아리를 탈퇴했다. 종강 일주일을 앞두고 시험에 과제가 몰아치는데 이런 불편한 일이 있었으니 다들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나는 다행히 방학 중 잡아둔 일정이 크게 없었지만, 왕복 2시간 통학을 하는 입장이라 가는 과정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환승까지 있어서 학교만 오면 진이 빠졌으니 학교에 도착하고 10분 정도는 가만히 있어야 체력이 회복되었다. 특히 종강 직후는 장마철이라 비까지 오기 시작하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다. 늦지 않게 겨우 도착해서 가면 동기들과 함께 선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근데 왜 모인 거야? 스터디도 아니고 그냥 나오라고 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정보 값이 0도 아니고 null의 선택. 추측할 수 있는 언질이라도 주던가. 선배들은 약속 시간이 다 되고도 30분 더 후에 왔다. 인원수를 대강 체크하고는 대뜸 말했다.



-프로젝트를 만들어.

-네???????????????????????????????

-8월 초에 발표해! 학과장님 오셔.

-네?????????????????????????????????????????????????????????????????




 프로젝트? 그것도 학과장님 앞에서? 무슨 소리인데? 일단 완성하라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질문만 다시 했다. 그러나 아무도 답을 주지 않았다. 매년 1학년들이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전통이라는데... 그럼 전통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참고해야 할 양식이나 자료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기초적인 시안, 전년도 자료 하나 없이 무작정 통보.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두길 바란다...) 일방적 통보가 좋은 것은 로또나 보너스 지급 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이들이 명심해두었으면 한다.


 문제는 정말 다들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새내기이고, 무엇보다 우리 윗 학번과 커리큘럼이 또 크게 달라진 학번(이래저래 고생 많이 한 학번이다.)이다. 2학기 때 필수 과목인 부분을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예습을 한 친구들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우리 동아리에서 지향한다는 과목도 아니었으며, 동아리에서 주도하는 스터디는 1학년 필수 과목 복습 스터디에 불과했다. 생뚱맞게 프로젝트를 완성하라는데 이미 배운 C++이나 HTML 같이 간단한 건 하지 말라고 한다. 작년도 샘플은 딱히 없다. 그럼 우리 보고 뭐 어떻게 하라는 걸까. 차라리 컴퓨터를 새로 만들라고 하지. 스트레스 버튼을 누르면 쌍욕이 튀어나오는 최신형 컴퓨터이며, 반복문을 통해 일정 값을 넘어가면 폭탄처럼 터지는 컴퓨터다. 너도 터지고 나도 터지고 얼마나 공평한 게임인가.


 그래도 일단 하라고 하니까 대충 머리들을 짜기 시작했다. 문제는 프로젝트 발표 전 리허설 날, 조원들 각자 사정으로 인해 문제가 생겨 나만 시간이 되었고, 나 혼자 학교에 가 리허설을 진행해야 했다. 프로그램을 돌리고 대본대로 발표를 마쳤다. 그중 한 선배가 날 되게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거 무슨 파일이야?

-네? 이거 ***형식으로 실행했죠.

-우리 프로그램 없는 대강당에서 발표할 건데? 과실에서 발표할 줄 알았어? 이거 거기서 못쓰는 형식이야. 다시 만들어와.


...

...

...

?




 그걸 이제 말하냐!!!!!!!!!!!!!!!!!!!!!!!!!!!!!!!!!!



 마감일 18시간 남겨두고 할 소리냐? 이들에게 '사전 공지' 개념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선배고 나발이고 어차피 누가 먼저 갈지 모르는 인생, 지금 순서 정해보자며 멱살 잡고 싶은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침착하게 같은 조, 그리고 다른 동기들에게 재빠르게 카톡으로 물어봤다. 너희 그거 알았어? 전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아니, 이제 알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우리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배포 형식 파일을 제작하느라 다시 구글링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것은 검색만 하면 흔히 잘 나오는 것이었지만, 다른 조 친구들은 그로 인해 오류가 나버려서 그날 밤을 새워서 코드를 다시 고쳤다고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건이 터진 것은 이 날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참았었다.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게 끝나는 날이니 다들 훌훌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당일, 겨우 5시간 동안 아주 지구가 멸망할 기세로, 난 모든 사람이 그렇게 각자 최소한의 이성을 지키면서도 분노를 표출하나 학교라는 자리이기에 침착히 말하는 장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다. 폭탄은 리허설 날 만들어졌고, 불을 붙인 것은 바로 발표 당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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