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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Jan 16. 2020

살아남아라, 공대 새내기!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1학기


영원히 스무살 하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무살이 되었다. 술도 마시기 시작하고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도 신분증 마빡에 붙여 당당하게 보러 다녔다. 입시는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어도, 일단은 갓 성인에 새내기니까 기분이 나지 않겠는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용돈도 조금씩 모으고, 불안하지만 스무살이 된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대학 전공을 반드시 해야 내 꿈을 이룰 수 있나? 방향은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고, 새로운 꿈이 생길 수도 있다. 전공을 원하는대로 가지 못했을 뿐이지, 그동안 쌓아온 내 세상이 부정당한 것이 아니니까. 내 경험은 부정당하지 않았고, 부정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완벽히 긍정적인 사고의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순간에 주저 앉아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했다. 입학 동기들과 사이 좋게 지내고 싶었고, 전공 수업에서 처음 만나는 얼굴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후에는 전공 동아리에도 참여했다. 가끔은 친구들이랑 좀 더 번화가로 나가 맛있는 것도 사먹고,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이렇게만 들으면 열심히 지내는 새내기의 복잡하지만 재밌는 일상일 것이다. 물론 이후에 바로 이 대학 때문에 스트레스 돌직구로 받아서 매우 힘들 예정이다.



"C++ 할 줄 알아? 컴구론은 어느 정도 이해했어?"



그거 배우려고 왔는데 아냐고 물어봐?



 이건 교수님이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물어보신 것이 아니다. 동아리 첫 모임 술자리에서 한 학년 위였던 선배가 물어본 질문이다. 솔직히 내가 다룰 줄 안다고 해도 뭐 얼마나 다루겠어? 얄팍하게 알면서 아는 척은 금물이다. 여기에는 나보다 최소 1년, 많게는 30년 이상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학사, 석사와 박사가 모두 넘쳐나는 곳))) 나도 그렇고 내 동기들도 모두 모른다고, 배운 적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과에서 왔으면 학교에서 컴퓨터 관련 과목을 문, 이과 공통으로 적용하기 전에는 중학교 정도까지 배운 것이 끝이었다. 심지어 나는 중학교에서도 기술, 가정 과목에서 대충 다룬 것이 끝이었고 혼자 대충 알게 된 과정이니 내가 '덕질'만 안 했다면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물음은 소맥 한 잔에 넘겨버렸다. 잘 몰라요~ 그래, 천천히 배우면 된다! 그렇게 가볍게, 모두 별 생각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1편에서 말했듯, 우리 동기들은 수능 제도가 아래 학년부터 바뀐 나머지 수능 범위와 체제가 싹 바뀐 학번이었다. 따라서 나처럼 교차 지원해서 온 문과 출신도 다른 학번에 비해서 꽤 있었다. 당연히 동아리에 같이 온 동기들도 있었고, 애초에 이과에서도 심화적으로 컴퓨터에 대해서 배우질 않으니 입학 전에 따로 학원을 다니지 않은 이상은 아무도 모르던 상태였다. 나는 당연히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새로운 것이고, 우리 모두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안일한 착각이었다. 내가 언론에 뜻이 있어서 고등학교 때 그리 많은 활동을 한 것처럼, 컴퓨터 공학에도 당연히 비슷한 사람이 많았다. 어디에나 뜻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선행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실감하지 못한 것이다. 동기 중에서는 아예 컴퓨터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3년이나 먼저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또한 재학 내내 완벽하게 꿰찬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열심히 공부한 것도 있지만, 프로그래밍을 정말 즐거워하는 친구라서 부러워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취업을 잘 하고 싶어서 머리 쓴다고 왔다고 하면, 그 친구는 그 분야를 정말 좋아했다는 점이 부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이 시작될 무렵, 나는 큰 회의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전공은 듣는 내내 이해하기 어려웠고 과제가 나와도 겨우 커트라인을 넘는 정도였다. 그리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적응하는 것 같은데. 감을 잡는 듯 하면서도 자신감이 또 없어지고, 시험 기간에 늘 도서관에 머물렀으나 결과는 막상 안 좋고. 남들이 다 앞서가는데 나 혼자 제자리인 기분을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나도 같은 길을 뛰고 있는데, 마음 가짐의 문제였을까. 아님 이거야말로 재능과 적성의 문제였을까. 




 설상가상으로 1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지날 무렵, 나와 동기들이 동아리 일부 선배들과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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