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모두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완전히 망한 입시, 꿈을 미루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시점. 그럼 무턱대고 공대를 들어갔는가? 사실 그것도 아니다. 따져보면, 꽤 많은 고민과 여러 이유를 종합해서 들어갔기에 완전히 생뚱맞게 지나갔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계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컴퓨터도 꽤 좋아했다. 단순히 게임의 목적은 아니었다. PC방은 싫어해서 대학 들어가서도 수강 신청 제외하고는 전혀 가지를 않았으니까. 웃긴 것이, 과거에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 카메라가 꽤 있었다. 당연히 간단한 편집을 위해 집에는 컴퓨터도 일찍부터 있었다. 아버지가 동요 사이트를 열어주면, 거기에서 간단한 버튼을 눌러 혼자 동요를 틀면서 동생이랑 춤추고 놀고, 망가진 키보드가 있으면 아주 열심히 방망이질에 가까운 타자를 치며 컴퓨터 한다고 자랑을 했다. 혼자 PPT나 엑셀, 워드 등의 기본적인 오피스 프로그램도 이미 초등학교 때 완성형의 실력이었다. 이미 당시에 타자는 느려도 500타를 치고 있었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는 1000타에 가까웠고, 이게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홀로 익힌 컴퓨터 실력으로 중학생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했다. 물론 내용은 거창한 거 없이, 내가 읽은 책이나 본 영화, 애니메이션 정도에 대해 리뷰를 쓰고 거기에서 인터넷 친구들과 가볍게 교류하는 정도였다. 당시에는 축구도 좋아해서 월드컵 시즌에는 일일 방문자가 무려 1000명이 넘게 드나든 적도 있었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에 비하면 물론 적은 수겠으나, 당시 중학생이 운영하는 평범한 블로그 치고는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우리 반에서 최초로 스마트폰을 샀던 것이 나였다. 실은 어머니께서 당시 안드로이드 도입 초기의 스카이 ‘이자르폰’로 바꾸셨다. 디자인으로는 흠잡을 곳 없던 스카이답게 손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크기, 둥근 형태의 모서리로 구성된 스마트폰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스마트폰이 도입되던 시기였기에, 젊은 층의 세대들도 스마트폰을 익히고 시작하는 단계였으니 어른들에게는 말 그대로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결국 어머니는 피쳐폰을 다시 쓰시고 그 폰은 내가 얼떨결에 사용하게 된다. 정말 의도한 것도 아니고 우연이었으나, 반에서만큼은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몰려들었고, 나도 이런 고가의 전자기기가 무서웠던 만큼 모두 숨죽여서 터치를 하고 게임을 해보기 시작했다.
더욱이, 내게는 '덕질'을 빼둘 수가 없다. 참 다양하게도 덕질을 하느라 망한 인생이었다. 앞서 말한 블로그 활동도 그렇고, 스마트폰도 일찍 접했기에 2012년에 이미 카카오톡 테마가 적용된 어플을 제작해본 적도 있었다. 문과였어도 얼리어답터였다는 것. 결국 고등학교 다닐 시기에는 기초적인 C++ 문법과 HTML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덕질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진 보정도 도전해보니 포토샵도 익히고 있었으니...
이제 감이 오십니까? 정식적으로 학원을 다니거나 교육받은 적이 없어도 혼자서 해내고야 마는 자급자족 '오타쿠'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름 내 취향과 과거 행적을 따랐다, 바로 이 말이다. 이렇게 한 두 번 해보니 그래도 공대 계열을 간다면 컴퓨터 공학 쪽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은 나처럼 문과에서 이공계로 전향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탑 3에 드는 것이다. 단순히 뜯어볼 줄 안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말해보겠다. 입시를 말아먹었던 당시의 나에게 말을 해줄 수 있다면, 공대는 가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이건 당시의 나처럼 '교차지원'이라는 무거운 고민을 하고 있을 학생들에게도 무척 조심스럽게 말할 지점이다. 내가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니, 이쪽에 빗대어 말해보겠다. 당신이 정말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고, 간단한 함수 구조를 직접 짜는 것도 괜찮다면 가도 좋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야일 테니 조금 더 같이 고민해보자고. 지금이야 나는 잘 풀려서 취직도 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지만, 대학 생활은 내게 참 안 좋아서 어서 빨리 졸업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바랬기 때문이다. 내게 시간과 돈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재수를 해서 가고 싶던 학과를 갔을 텐데.
여하튼, 나는 수년간의 나름 또래에 비해서는 IT에 눈이 밝은 사람이라고 자부한 것에 따라 컴퓨터 공학을 덜컥 선택해버린다. 이렇게 처참한 대학 생활이 시작되는데... 이 구체적인 엉망진창의 대학 생활의 초입은 이어지는 3편에서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