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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dy Carraway Jan 15. 2020

공대에 가버린 문과 천재를 아시오?

가려고 한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됨.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 날개 中



 이상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면 난 공대에 가버린 문과 천재를 자처하련다.

 그런데 이상도 건축과 나왔다며.



네, 제가 바로

교육부에서 그렇게 중요하고

취업 전선에서 그렇게 유리하다는

무려 문이과형 통합 인재입니다.



그런데 인재라고 또 자칭하기에는 부끄러워서요, 통합 인간 할게요...



 어디에 내 인생 한 번 들어보시겠냐며 명함 내밀기에는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솔직히 내가 봐도 다이내믹한 인생이다. 롤러코스터도 이렇게 타면 그냥 죽는다. 친구들은 나의 일상을 두고 코미디형 다큐멘터리라 말한다. 그들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이 그 어떤 쇼핑과 문학보다 재밌다며 놀려먹는 재미에 사는 듯하다. 친구들이 가장 신기해하는 것은 내 인생과 영 딴판인 전공인데, 솔직히 내가 봐도 특이하다 못해 돌연변이라는 생각까지 들 과정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당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는 나와 동생이 늘 책을 읽을 수 있게 주기적으로 새로운 책, 더 수준 높은 책을 장만하셨다. 덕분에 한글도 일찍 깨치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미 '안네의 일기'와 같은 어려운 내용의 책을 정독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도 청소년을 위해 내용이 축약된 책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고전을 읽기까지 하였으니, 글이란 나의 재미였고 일상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읽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여기서 사용하는 필명이 캐러웨이랍니다.



 그만큼 청소년기의 모든 활동은 책과 글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초등학생 때 이미 독서 영재 개발 프로그램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경력이 있으며 학창 시절 내내 모든 활동도 신문, 교지, 기자단과 같이 글을 반드시 써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기른 글빨 하나로 환경부 장관상과 서울시 주최 청소년 기자상까지 받아본, 내 나이 또래 문과 학생들이 갖출 수 있는 스펙 중에서는 상급 중 상급이었다. 그만큼 여기저기서 기대도 많이 받았고 어깨에 힘도 잔뜩 들어갔다. 당연히 성적에 맞춰 유명한 이름의 대학들에 원서를 넣었다. 배짱 좋게도 모두 언론 쪽으로 넣었다. 문과 학생들이 한 번쯤은 꿈꾼다는 꿈의 학과들 말이다. 경쟁률은 기본이 20:1을 넘어갔으며, 끔찍한 수치로는 40:1까지도 봤었다.


 아직 쓴 맛을 보기 전, 당시의 꿈은 신문사 기자, 그중에서도 사회부 기자를 꿈꿨다. 치기 어린 10대,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으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시기에 나는 어른들의 모순적인 사회에 돌을 던지고 싶었던 혁명가 양반이었다. 이상적인 사회를 나름 구상하고 있었다. 자유를 부르짖고 시민의 편에 서는 공정한 언론사를 말이다. 언론사라는 작지만 파장력 큰 사회에서 리더가 되어 근무할, 나름 확고한 언론사 설립과 운영 계획까지 세웠다.


 결국 과거의 이야기라 얽매이고 싶지는 않기에 어디에서 이 과정을 말하는 것은 그만둔 지 당연 오래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너는 왜 언론 관련 학과에 안 갔냐는 말을 늘 듣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으니까.


 내 인생에 있어서 첫 번째 실패였다. 수시 전체 탈락이라는 끔찍한 결과, 생전 본 적 없는 등급이 찍힌 수능 성적표. 와. 진짜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가 있나? 재수를 하기에는 수능 제도의 잦은 변경(교육부는 각성하라)으로 인해 못해도 n년을 잡아야 했다. 눈치가 보이고, 어서 내 밥그릇 챙기고 살아야겠는데 취직을 해도 능력이 없으니 대학은 가야겠고. 결국 학교를 아예 하향해서 취직 잘 된다는 공학 대학에 가버린다. 


 일단 먹고 살길을 찾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때부터 돈에 대한 집착이 다소 커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돈이 좋은 인간이었다면, 돈에 미친놈이 되어버린 것. 등급컷이 낮았으나, 비참하게도 내 또래의 우리 학번은 격동의 학번이었다. 앞 문단에서 말해서 아마 눈치를 챘겠으나 나는 한 학년 후배들과는 완전히 다른 입시제도, 수능을 거치게 된다. 결국 다들 대학 들어가기 어려워도 몹시 어려웠다는 말이다. 내 또래 아이들 중 어느 용감한 녀석들이 다시 재수를 준비하겠는가? 당장 내 주변만 해도 재수를 접고 하향 지원한 친구들이 널렸었다.


 결국 기존 성적에 비해서는 대폭 하향 지원한 학교였음에도, '우리 전부 망했어' 모드에 휩쓸린 탓에 정말 어렵게 대학에 붙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추가 합격도 꽤 되어서 지원했던 학교 중에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 입학한다. 이 입학 과정에도 아주 슬픈 사연이 있으나, 이는 천천히 풀어보겠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출판사 다니면서 도서 기획합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19년을 문과로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공대에 가길래 완벽한 이과형 인간으로 변한 줄 알았더니 문과 중의 문과인 도서 기획자가 된 과정들. 하나하나 풀어보겠다.




 이래서 친구들이 코미디형 다큐라고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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