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약비

by 당근

집이 산 아래에 있다 보니 장마철이면 늘 걱정이다. 집 위쪽 산길(하루에 경운기와 자동차 몇 대 정도가 다니는 비포장 외길)에 삽질로 얕은 수로를 내는 작업은 남편이 장마가 오기 전에 일찌감치 했다. 그래도 장마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꼭 산길로 올라가 본다. 장맛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2006년 6월, 집을 지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집 마당에 실개천이 흐른 적이 있다. 그때는 함께 땅을 사서 집을 짓기로 한 7 가구 중 가장 먼저 집을 지은 우리 집만 덩그러니 한 채 있던 때였다. 밤새 집을 무너뜨릴 듯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무서웠지만 그 밤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걱정만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우리 집 건너편에 집을 지으려고 땅파기 공사를 하고 있던 집 아저씨였다. 인사를 하더니 별말 없이 저기를 보라며 마당을 손으로 가리켰다. 산에서부터 쏟아진 물이 마당을 가로지르며 흘러가고 있었다. 삽질로 막을 수 없는 정도였다. 마당 말고도 우리 집 뒤쪽 땅으로도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며칠 뒤, 계속된 비에 길 건너편 땅 쪽 3미터 정도의 축대가 힘없이 스르르 무너졌다.


그 전해 겨울에 토목공사를 해서 땅이 다져지기 전이기도 했지만 축대가 그렇게 무너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이라도 예상했더라면 장마가 오기 전에 포클레인으로 물이 흘러갈 길을 만들자고 했을 것이다. 7 가구가 함께 복숭아 과수원이었던 땅을 사고 토목공사도 직영으로 하며 마을을 만들어 가던 때였다. 비가 그친 후 축대를 다시 쌓고 마을 위쪽 산길에는 집수정을 설치해서 마을 배수로와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그 후로 포클레인으로 길을 정비하고 수로를 파는 작업을 했었어도 마을 쪽으로 물길이 나서 삽으로 막는 작업을 몇 번 더 했어야 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장맛비에 물길을 걱정하며 산적은 없었다. 서울 태생인 남편은 자연재해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걱정이 없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마당을 가로질러 며칠 동안 흘러가고 마을 축대가 무너졌을 때 우리 집(빚내서 지은)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이후 폭우에 우리 집이 부서지거나 집이 통째로 물에 떠내려가는 꿈을 여러 번 꿨다.


며칠 만에 쨍한 해가 반갑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내일은 해가 나고 그 후는 비가 온다고 되어있다. 마당에 무성하게 자란 잔디와 풀을 깎았다. 예초기를 돌리는 일은 엄두가 안 나지만 잔디 깎는 기계는 어렵지 않다. 전기를 꽂고 밀기만 하면 되니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설렁설렁 느릿느릿 전깃줄을 걷어치우며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마당이 깨끗해졌다. 결의를 보이기 위해 밤송이처럼 머리카락을 바짝 사람의 머리 같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잔디를 닮은 풀이 더 많은 마당. 그래도 멀리서 보면 잔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당 귀퉁이에 둔 화분이 반짝인다. 다이소에서 사 온 봉숭아와 백일홍 씨앗이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몇 년 전 서울 시댁 마당에서 이사온 감나무도 작년에 A가 선물로 들고 온 사과대추나무도 키가 쑥 자란 게 보인다. 이번 장맛비가 꽃과 나무들에겐 약비였나 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추가 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