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과 원자폭탄, 그리고 아내의 사망

부활하신 주님은 상처 입은 몸으로 우리의 일상을 회복시키십니다

by 초덕 오리겐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24:33-37]

엠마오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을 때의 모습은 매우 초라했습니다. 그들은 승리의 공동체가 아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힌 공동체였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까지 잡으러 올까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그 자리 한가운데에 부활하신 주님이 서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단순히 영적인 환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놀라 “영을 보는 것인가” 하고 두려워하자, 주님은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바로 그 손과 발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이 단순한 영적인 상징이 아니라 살과 뼈를 가진 실제적인 부활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는 여전히 십자가의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못 자국이 있는 손과 발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모르는 분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채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다카시 나가이는 일본 나가사키의 방사선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방사선 연구와 진료를 하다가 1945년 6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의사들로부터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두 달 뒤인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나가사키 의과대학 병원 방사선과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폭발로 그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고, 다른 의료진들과 함께 원폭 피해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뒤 폐허가 된 집터로 돌아왔을 때 그는 집이 완전히 무너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잿더미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 미도리의 불에 탄 유골과 묵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미 백혈병을 앓고 있었고, 폭발로 인한 부상까지 입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의 삶은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 속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폭 피해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고, 이후에는 병든 몸으로 글을 쓰며 전쟁과 원폭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이후 그는 폐허가 된 우라카미 지역에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글을 쓰고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그의 글과 신앙은 절망에 빠진 나가사키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병도 여전히 그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처를 가진 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생명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나타나셨지만, 그 몸에는 여전히 못 자국의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살린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상처 없는 승리만을 보여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상처를 가진 채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도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겪은 아픔과 눈물, 상처와 실패조차 부활의 생명 안에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통로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상처 입은 손을 가진 주님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실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헛된 삶이 아니라 부활의 생명이 역사하는 자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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