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영적인 눈이 열릴 때 우리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진다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눅24:13-17]
누가복음 24장 중반부에는 모든 기대를 잃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주님이 죽으시는 모습을 보자 모든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주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그들에게 책망하시거나 기적을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성경을 펼치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통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말씀이 풀어질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나님의 말씀이 열릴 때, 얼어붙었던 마음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진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존 웨슬리는 젊은 시절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미국까지 갔지만, 오히려 자신이 진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선교 사역도 실패처럼 보인 채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738년 어느 저녁, 그는 런던의 작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람이 Martin Luther가 쓴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이 설명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순간 웨슬리는 일기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바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그분이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내게 주어졌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낙심 속에 있던 한 사람이 말씀을 통해 새롭게 불붙었고, 그 불은 영국 전역을 뒤흔드는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열리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식어지고 절망에 빠지는 이유는 부활의 주님이 멀리 계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에 풀어질 때, 차갑게 식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집니다.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발걸음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절망의 길이 복음의 사명의 길로 바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