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말에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의 말에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토론을 하다 보면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지적 허영이 있기 때문에 "내가 네 말을 오해한 거야"라는 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나는 너를 오해하겠어"라고 밀어붙이는 사람이 있다. 생각보다 참 많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오해하여 비판하는 것을 허수아비 논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잘난 척을 하기 위해 (다시 말해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서) 또는 비열한 이유(논쟁에서 이기기 위해)로 허수아비 논법을 펼치는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무식해서, 그러니까 말 그대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문맥을 잘못 읽고 그렇게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무식해서 생기는 허수아비 논법이다.
그런데 실제로 토론이란 대화의 일종이다. 토론을 대화의 일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토론할 때 대화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허수아비 논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대화를 주고 받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이 어떠한 형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상대방의 생각이 조각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고 해보자. 상대방의 생각이 아닌 것을 덜어내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아닌 것을 구분해내는 과정이다. (마치 스무고개와 비슷하다. 다만, 스무고개는 항상 단어를 맞추는 것인데, 상대방의 생각은 단어로 명확히 정의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대화란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즉,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이 나를 비난하는 건가 라고 느끼기 쉽다. 동성애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을 때 같이 대화한 사람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동성애를 위한 교회의 반응이란 뭔데?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야? 동성애가 죄라고 하되 비난하지만 말라는 거야?"라는 말을 공격으로 알아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대화는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A: 너 밥 먹었어?
B: 응.
A: 뭐 먹었어?
B: 라면
A: 라면은 밥이 아닌데? 네가 밥을 먹었다는 네 주장은 틀렸어.
B: 내가 "밥 먹었어"라고 했을 때 "밥"은 rice가 아니라 meal을 의미해.
그런데 여기서 A가 "아니야. 그래도 너는 밥을 먹은 게 아니야"라면서 상대방이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대화가 아니다. "아, B가 라면을 먹었구나"라고 이해를 해야 한다. 즉, 이렇게 탁구공을 번갈아 가며 치듯이 대화가 맞물려가면서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대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토론이 산으로 가기도 한다. 쓸데 없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접어드는 거다. 아래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게 그거다. 내가 아무리 상대방의 말을 잘 이해한 것 같아도, 그 소리를 듣고 상대방이 "아닌데?"라고 말한다면 그건 이해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본인 등판, 삼자대면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아무리 잘난 듯이 떠들어도, 본인이 등판해서 "그건 내가 한 말이 아닌데" 하면 끝나기 때문이다. 본인이 등판하는 순간 쓸데없는 말이 필요가 없어진다.
A와 B가 대화를 한다.
A: 밥 먹었냐?
B: 아니.
그뒤에 A와 C가 만나 대화를 한다.
A: 야, B가 밥 안 먹었다는데?
C: 무슨 소리야. 걔 아까 뭐 먹더라.
A: 안 먹었다고 했다니까?
C: 내가 봤는데?
A: B가 직접 말했는데?
여기서 A와 C의 논쟁은 아무런 진전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현란하고 설득력 있는 말을 하더라도, 둘이 가지고 있는 증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는 본인이 등판해야 한다. 이때 B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B: 밥은 안 먹었어. 그런데 그게 "아무 것도 안 먹었다"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아까 과자 조금 먹었어.
이런 식으로 결국 "밥을 안 먹었어"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B가 본인등판해줘서 이야기를 하면 끝난다. 깔끔하고 명료하다.
그런데 여기서 A가 "아니야. 너는 밥을 안 먹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안 먹은 거야"라고 주장한다면..? 그건 그냥 멍청한 거다. B의 외면적인 말(밥 안 먹었어)에 꽂혀서 '이 녀석은 아무 것도 안 먹은 거야'라고 주구장창 주장하는 거다.
(차라리, "그러면 너는 밥은 안 먹었지만 과자는 먹었어 라고 말했어야 해"라고 하는 게 낫다. 물론 그걸 요구한다면 A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물론 위의 예시를 보면 너무 명료하게 A가 멍청해 보인다. 하지만 토론 중에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위의 대화를 정리하게 된 배경이 되는 대화는 아래에 있다. 대화 맥락 자체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와 같다.
깔뱅 - 로잔대회의 글을 다 보지는 못했는데, "구분"라는 단어라는 용어 사용이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성별(sex)이 아닌 gender도 남자와 여자로만 분리한다는 것인가?
여기서 깔뱅은 로잔대회의 모든 글과 맥락이 다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x는 "너가 로잔 대회를 오해하고 있는 거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부터가 의미부여이다. 물론 의미를 깎아가는 과정이 될 수는 있으니 이 부분은 다루지 않도록 하자.) 더 나아가 "사회적 성 역할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는 거냐"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다시 깔뱅은, "남자와 여자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성 역할이 인식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정당화하여 구분하는 것은 부정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x는 이것을 가지고 "너는 인식을 부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거다. 본인이 등판해서 인식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데 막무가내다.
그래서 이 대화의 맥락은 "깔뱅이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남녀간의 성 역할이 있었던 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느냐"가 주요 맥락이다. x는 "너는 인식을 부정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본인은 "나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주장한다. (사실 본인이 "나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이 논쟁은 끝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x가 "네가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라고 말한다면 완전 대화 전체 맥락을 헛짚은 거다. 대화 맥락 자체가 (그리고 대화가 진행이 안 되는 이유가) "깔뱅의 말의 본의가 무엇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맥락에서 로잔 대회에 대한 x의 주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 맥락에서는 깔뱅의 주장에 대한 x의 주장 "너는 인식을 부정한다"만이 중요하다. 사실 이게 이 대화의 주요 핵심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깔뱅과 내 주장은 "깔뱅은 인식을 부정하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아래 링크의 전체 골자는, "깔뱅은 인식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x는 깔뱅이 인식을 부정한다고 계속 주장한다"이다. (만약 여기서 x가 "깔뱅은 인식을 부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면 논쟁은 끝난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허수아비 논법이라고 한다면 x의 지성을 의심하게 되는 거다. (그러니까 둘 중에 하나다. <깔뱅이 인식을 부정한다는 x의 주장>이 허수아비이든가 아니면 허수아비 논법이 되지 못하든가.)
이게 참 멍청력이 돋보이고 이상한 대화이지만.. 실제로 토론을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