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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과 채찍 Jan 01. 2021

과학은 어떤 방법으로 발전할까?

<과학인문학으로의 초대>를 읽고

'과학이란 무엇인가?'
공대 출신인 나에게 과학이란 친근하면서 어려운 존재이다. 교육 과정 중에 과학에 그나마 노출되었었다. 과학과 관련된 시사도 주의 깊게 보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과는 다르게 과학은 어려운 존재이다. 과학이 어렵지만 알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과학이 현재 지식의 왕좌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슈에 대해서 논하다가도 과학적으로 어떻다는 걸 알게 되면 과학적으로 증명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슈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만큼 과학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도 기술발전의 산물인데, 그 기반에는 과학이 있다. 과학은 우리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런 과학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과학이라고 하면 연구라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모든 과학이 연구로 된다고 볼 수 없다. 나름 과학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과학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과학인문학으로의 초대>는 과학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기초 이론을 설명하거나 과학의 성과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과학을 알려주지 않는다. 과학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발전했고(과학사), 과학발전의 방법적 특징(과학철학), 과학이 사회의 관계(과학사회학)를 설명해 준다.
과학사에 대해서는 서양의 과학사를 위주로 설명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과 같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 중에서 갈릴레이와 뉴턴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17세기 유럽에는 '과학자'라는 말이 없었고, 그들은 살아생전에 과학자로 불리지 않았고, 자연 철학자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17세기에는 과학이 지적제도로 확립되지 시작하였다. 이후에 19세기가 되면서 과학이 사회제도로서 구조를 갖추었다. 실제적으로 과학자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건 19세기 중반이었다. 17세기의 사건을 1차 과학혁명, 19세기의 과학 사건을 2차 과학 혁명이라고 한다.
 1차 과학혁명 (17세기) - 과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체계를 갖춤
 2차 과학혁명 (19세기) - 과학이 사회제도로서 구조를 가짐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은 최신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 시대의 과학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이론이 지배하고 있었다. 천동설과 천상과 지상의 운동을 구분하고 생명체적인 운동으로 설명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과 낙하운동을 지면이 물질이 고향이므로 가까이 올 수록 빨라진다라는 생각은 우리가 듣기에는 비논리적인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이미 과학적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기에 저런 소리들이 비논리적이라고 판단하기 쉽지만,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기 못했다. 17세기가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이 나타나면서 우리가 아는 세계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구가 중심으로 별들이 운동, 천체들의 원운동을 한다는 천동설의 두 가지 핵심 개념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이 운동하지 않았다고 제기하고, 케플러가 원운동이 아닌 타원 운동을 밝히면서 천동설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었다. 물질의 운동은 유기체적인 자연관으로 물질과 운동을 설명했다. 물질에 내재된 생명력으로 변화와 운동이 일어난다는 관점을 보였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수학적인 방법과 논증, 실험을 통해서 유기체적인 자연관이 아닌 수학적 법칙으로 이루어진다고 알아냈다. 이후에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힘을 발견해서 천상과 지상이 하나의 운동법칙으로 움직인다고 알아냈다.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고대와 중세를 지배하던 법칙을 이겨내고 과학이 부흥하게 만들었다. 산업혁명 이후에 과학은 기술의 발전에 기반이 되었다. 사람들은 학회를 만들고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렇게 19세기에 2차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과학이 발전을 이루면서 과학을 탐구하는 방법 또한 발전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법칙을 찾는 방법은 2가지이다. 논리적인 사고나 추론을 통해서 규칙이나 법칙을 찾는 연역법, 결과를 통해서 법칙을 이끌어 내는 귀납법이다. 두 방법은 장단점이 존재하는 데 연역법의 경우 올바른 논리 방법을 사용했으면 틀릴 경우가 없지만, 법칙의 확장이 어렵다. 귀납법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여 법칙의 확장에 용이하지만, 한 가지라도 반례가 나온다면 틀린 이론이 된다. 이런 장단점을 고려해서 연역법과 귀납법 모두를 활용하는 가설 연역법이 있다. 가설 연역법은 추론으로 예상되는 법칙을 만들고, 법칙에 맞는 내용을 관찰하고 증명해서 추론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가설 연역법은 연역법과 귀납법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단점을 극복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과학 법칙에도 수학의 오류와 물리학의 위기로 인해서 과학에 위기가 발생한다. 과학의 위기는 논리적인 모순으로 인해서 기인한 것인데,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논리실증주의이다. 논리실증주의는 핵심은 현실에서 증명한 내용만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을 위한 체계만은 아니었지만 과학에서 추구하는 바와 결이 맞아서 한 시대의 과학철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논리실증주의도 귀납적인 오류와 문제로 인해서 과학 철하의 주류에서 멀어지게 되고, 증명의 방법으로 반증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합리주의를 주장한 칼 포퍼가 나타난다. 미국으로 건너간 논리 실증 주의자 들은 실용주의 과학론을 주장한다. 실용주의 과학론은 본질은 없다고 하는 반본질주의, 사실과 가치의 연속성, 결론에 이를 때까지의 끊임없는 대화를 추구한다. 비판적 합리주의와 사실주의가 과학철학의 대세이던 시기에 하나의 이론이 부정되고 다른 이론의 교체는 증명이나 실용적인 관점이 아닌 '패러다임'의 변화로 설명하는 토마스 쿤이 나타나게 된다. 각각의 과학철학은 자신만의 영역을 지켜가면서 유지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기술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구조상 과학은 중요한 학문이 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과학 사회학이 대두되게 된다.




  과학은 물리, 생물, 화학 등 각 영역에서 발전을 이루고 있다. 발전은 단순히 연구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과학 철학으로 바탕으로 과학은 발전한다.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구조도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의 결실을 기술로 전환하기 위해서도 사회적인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과학은 단순하게 관찰, 수학, 연구로만 이루어진 학문이 아닌 자신의 철학이 있고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과학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고민해야 봐야 한다. 연구라는 측면은 보장되어야 하지만 어떻게 판단하고 적용될지는 다 같이 고민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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