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당피 Aug 30. 2018

이들이 여행자를 대하는 방법

스며드는 비야 데 레이바, 우리를 흔들어 놓는 그들의 진심


결국, 사람


택시에서 내렸다. 무척이나 맑았지만, 또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맥주 한 캔으로 더위를 식히며 시골길을 걸었다. 호세와 딜런을 따라 숲길을 헤치고 들어가자 금세 폭포에 다다랐다.


‘라 뻬리께라(La periquera)’라는 폭포는 조용한 숲에 둘러싸여 시원한 물줄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물장난도 치다가,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만드는 기분 좋은 선선함을 만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그래, 이럴 때 하늘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언뜻 먹구름이 끼더니, 이내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졌다.



쏟아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하는 비에 창밖으로 쏠렸던 시선이 ‘툭’하는 소리에 테이블로 옮겨졌다. 비를 피해 들어온 가게의 주인아주머니였다. 테이블 위에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순대와 비슷한 모양새의 모르치야(Morcilla), 초리조(Chorizo)에 감자와 구운 바나나가 가득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음식이다.

“이게 뭐야?”

“피카다(Picada)!”


딜런은 신이 나서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건 소고기, 저건 돼지고기, 팝콘도 있고… 아, 이렇게 이쑤시개로 콕콕 집어 먹으면 돼!”


피카다다. 택시 안에서 콜롬비아 음식 중에 먹고 싶은 게 있냐는 호세의 물음에,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모르겠다고 되물었던 것이었다. 비도 오고 하니 피카다가 먹고 싶어졌다며 웃던 호세와 딜런은, 식사 내내 이것도 먹어보라며 음식을 우리 쪽으로 한껏 밀어주었다.


지젤과 라우라, 그리고 호세와 딜런. 오늘 처음 만난 이를 자신의 가장 아늑하고 사적인 공간으로 초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존재조차 몰랐을 시골 어귀의 폭포로 데려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이들. 그들에게서 여행자를 대하는 태도를, 우리에게는 조금 생경한 삶을 알아간다.



짧은 만남, 짧지 않을 인연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는, 13살의 ‘크리스티안’은 호스텔 주인아저씨의 막내 아들로 오후부터 자정 전까지 호스텔 리셉션을 지킨다. 첫 만남부터 우리에게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아침만 되면 리셉션을 찾아 서툴어도 너무 서툰 에스빠뇰로 이것저것 묻느라 진땀을 빼는 우리를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다, 간혹 번역기를 가지고 와 아저씨와 우리의 의사소통을 곁에서 돕던 아이였다.


첫날, 낯선 생김새의 정수기를 앞에 두고 잠시간 고민하던 우리에게 직접 찬물을 내려주며 그는 눈짓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라며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에게, 한시름 놓았다는 듯 눈을 찡긋해 보이며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도,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정수기 앞에 서서 물통을 채우던 우리를 크리스티안은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 오늘 어때?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은 단 두 마디뿐이었지만, 그의 미소는 어쩐지 사람을 아주 기분 좋게 하는 힘이 있었다.



비야 데 레이바를 떠나던 날, 터미널로 향하기 전 우리는 처음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서툴고 어색해 어쩐지 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야 웃음으로 메우면 그만일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호스텔을 나가야 할 때, 그는 수줍게 컴퓨터 화면을 돌려 보였다. 흰 화면 속에 적힌 문장은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고, 절로 앓는 소리를 내게 했다. 짧은 시간, 멋대로 정들어 버린 마음에 한참이나 작별 인사를 주고받고도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여행에 신의 가호를 빌어준 크리스티안의 마음이 예뻐 코끝이 찡했던 오후.


“No me gustaria que se fueran.(너희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Se cuidan mucho que dios las cuide.(가는 길마다 신의 보호가 함께 하길 바라.)”



결국엔 사람이다. 우리는 특히 그렇다. 사람이 좋으면 그곳이 좋아진다는 게 우리의 변하지 않는 불문율이다. 그토록 아름답다던 비야 데 레이바의 풍경이 해내지 못한 일을, 지젤과 라우라, 호세와 딜런 그리고 발렌티나와 크리스티안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은, 우리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이드를 자처한 낯선 두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