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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웅 Sep 05. 2022

105 "화성 배치"는 어떤 순서로 했을까?-전편

覘正祖之圖 : 정조를 엿보다-105


"화성 배치"는 어떤 순서로 했을까?-전편


화성처럼 넓은 지역에 여러 시설물이 있는 경우는 단일 시설물 설계보다 배치설계(配置設計)가 매우 중요하다. 성 둘레가 5.4km이고, 시설물이 19개 유형에 60개나 된다.


전략적으로 좋은 배치는 성(城)의 기능을 강화하나 잘못된 배치는 오히려 적의 침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설계 과정에서 한 곳이라도 앞뒤 순서가 잘못되면 이미 배치한 설계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성의 시설물 배치설계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형, 지세, 민가, 도로, 하천 등 토목 문제, 시설물 유형, 배치 간격 등 건축 문제, 그리고 인접 시설물과 역할 분담, 공조 체계 등 군사 문제를 통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화성 배치설계는 화성 성역(城役)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치설계 과정을 알게 되면 성의 성격, 건축 기술, 경제성, 전략 등 화성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의궤에 이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19개 유형의 60개 시설물을 화성에 배치하였다. 당시 배치설계는 어떻게 하였을까?

필자가 화성 성역 이후 처음으로 "화성 배치설계"를 재현해 보았다. 설계란 과정(Process)의 산물이고, 선후(先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앞 단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단계를 할 수 없는 것이 설계이다.


200여 년 전 임금 정조(正祖)의 가슴과 감동당상 조심태(趙心泰), 도청(都廳) 이유경의 머리로 돌아가 백지 위에 배치해 보았다. 4단계로 60개 시설물이 배치된다. 배치 순서, 선후 관계, 이유 등을 유심히 보아주시길 바란다.


배치설계 순서는 공사 순서와 다를 수가 있다. 다르다고 오해하시면 안 된다. 배치설계란 모든 시설물의 "위치 잡기 계획"으로, 해당 시설물 공사 전에만 확정되면 되는 것이다.

정조는 기존의 물웅덩이를 용연으로 만들고, 높은 바위 용두(龍頭) 위에 방화수류정을 세우라고 지시한다.

1단계로 시설물 16곳을 배치한다.


16곳은 문 4곳, 수문 2곳, 각루 4곳, 은구(隱溝) 2곳, 서장대, 용연(龍淵), 용도(甬道), 동북공심돈이다. 

이 부류는 위치성(位置性)이 매우 강한 시설물이다. 꼭 그 위치이어야 하고, 기준이 되는 시설물이다. 이미 존재하는 기존의 도랑, 수원천(水原川), 방위(方位), 도로 등은 고정 팩터(Factor)이다. 대체로 한번 정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 


먼저, "서장대, 용연, 방화수류정"은 왕명(王命)에 의해 배치한다.

서장대(西將臺)는 팔달산 정상에, 방화수류정(東北角樓)은 용암(龍巖) 위에, 용연(龍淵)은 기존 위치에 배치할 것을 정조(正祖)가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왕명이 고정 팩터이다.


다음, "용도(甬道)"는 성(城)의 노선과 함께 배치한다. 

용도가 설치될 팔달산 남쪽 능선은 적이 점거하면 화성 전체가 위험에 빠질 요해처(要害處)이다. 따라서 성의 전체 노선과 연계하여 동시에 확정해야 했다. 시설물 배치에 앞서 확정된 성 노선이 고정 팩터가 되었다.


다음, "은구(隱溝) 2곳"은 성의 노선과 기존 수계(水系)에 따라 배치한다.

북은구(北隱溝)와 남은구(南隱溝) 모두 도랑이 성을 관통하는 지점에 배치하게 된다. 기존에 형성돼있던 도랑이 고정 팩터이다.

화홍문은 수원천의 입구로 북쪽에 배치했다. 방어에 유리하도록 높은 용암 아래에 터를 잡았다.

다음, "각루(角樓)"는 화성 방위(方位)의 기준점으로 배치한다.

높은 곳이면서, 방위도 일치하는 곳으로 화성 시설물의 기준 방위 점이다. 서북, 서남, 동남, 동북으로 방위도 맞고, 높은 지형인 곳에 배치하였다. 네 방위가 고정 팩터이다.


다음, "문(門)"은 기존 도로에 맞추어 배치한다.

장안문은 한양(漢陽)으로, 팔달문은 삼남(三南) 지방으로, 창룡문은 광주(廣州)와 용인(龍仁)으로, 화서문은 남양(南陽)과 안산(安山)으로 통하는 기존 도로에 맞춰 배치한 것이다.


다음, "수문(水門)"은 수원 대천(大川)과 방어전략에 맞추어 배치한다.

화홍문은 높은 용암(龍巖) 아래에, 남수문도 높은 일자문성(一字文星) 머리 아래에 배치하였다. 모두 방어에 유리한 높은 지형 아래로 수원천 위를 택한 것이다. 수원천과 높은 지형이 고정 팩터이다.


끝으로, "동북공심돈"은 맞은편 선암산과 맞서는 곳에 배치한다.

동북쪽 성 밖 맞은편에는 화성이 내려다 보이는 선암산이 있다. 적이 점거한 경우를 대비해서 최강의 정탐력과 공격력을 갖춘 동북공심돈을 배치하였다. 이 경우 건너편 선암산이 고정 팩터가 된다.

화성의 4곳 각루는 화성 시설물 배치의 기준점이 된다.

이렇게 1단계 배치는 60곳 중 16곳으로 25%에 해당하는 시설물 배치 설계가 완료된다.


이후 2단계 배치부터 배치 완료까지는 다음 후편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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