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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범준 Sep 16. 2018

저는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사이에서
프로덕트를 사랑합니다

개발하는 디자이너, 디자인하는 개발자. 양쪽을 모두 경험한 나의 회고록

TL;DR

답답한 나머지 개발자가 되버린 디자이너. 나를 디자이너라고, 개발자라고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건 나는 좋은 프로덕트를 만드는 게 좋다.




사람들은 '화성에서 온 개발자, 금성에서 온 다자이너'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개발자와 디자이너는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금성인이기도 했고, 화성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프로덕트를 잘 만들고 싶고, 사용자에게 더 편리함을 주고픈 지구인이였다.



시작은 금성인. 디자이너


난 고등학교 1학년 때, 특별한 고등학교에서 난 디자인학과 였고, 특별한 친구들과 대회를 나가기 위해 UI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 후 디자인에 대해 배울 수록 '사용자의 심리, 움직임 등을 예상, 분석하여 편리한 경험을 만드는' UX 디자인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대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일이 내가 제일 원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화성인이 답답해.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나를 가장 답답하게 하는 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화성인. 개발자였다.

왜 개발자는 내가 만든 디자인과 똑같이 만들지 못할까?

왜 개발자는 이렇게 하면 사용자가 더 편리함을 느낄텐데, 왜 안하려고 하는걸까?

왜 개발자는 회의를 할때마다, "이건 안돼요.", "못해요" 라며 내 의견을 무시하는걸까?
내가 디자이너여서일까?

어떤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으면서, 이 고민들은 갈수록 심해졌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것만 잘되고, 잘보이면 되지 코드 품질, 재사용성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사용자는 코드를 보지 못한다고!


심지어는 위 처럼 개발자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정말 나쁜 팀장이였다) 몇차례의 말다툼이 끝나고 내가 생각한 결론은, 답답한 화성인을 대신해서 내가 프로그래밍하자! 내가하면 답답하진 않을거야!

금성인의 시각에서는 정말 합당한 결론이였겠지만, 현재 지구인의 시각으로는 팀을 무너뜨리고 갉아먹으면서, 프로덕트 품질도 해치는 나쁜 선택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나쁜 선택 덕분에 난 지구인이 될 수 있었다.






금성인이지만 화성인이 될거야


말다툼이 있던 날 이후로 나는 하루종일 머티리얼 디자인 가이드가 아닌, 생활코딩을 보고 있었다. 솔직히 '디자이너도 코딩을 배워야해!' 라는 말들을 들을 때는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잘해야지, 디자인도 못하는데 코딩을 배워서 뭘해!'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는 개발자 역할을 할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나선 디자이너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웹의 기초와 개념' 부터 HTML, CSS, JS. 디자인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해나갈 수 있었다.

화성인이 되는 첫걸음. 생활코딩


생활코딩을 거쳐, 화성인을 잘 이해하는 금성인이 되었지만 내 목표는 화성인이 되어 고통받는 금성인들을 구원하는 것이였기 때문에 더 공부를 하고 더 연습을 해야했다.


내가 생활코딩의 다음 단계로 Vue를 선택한건 아래와 같은 이유였다.

생활코딩에서 웹을 배웠기 때문에

앱개발은 하고싶지 않았고, 웹 개발은 여러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유행이라길래

더 유행하는 리엑트보다 쉽다길래


만약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면, Vue를 배우기 시작하려는 나를 붙잡고

"개발은 유행하는 옷 사입는게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싶다. Vue를 처음 배우면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바스크립트는 정말 겉에 보이는 것 보다 깊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유행이라, JS의 기본을 배웠으니 자신있게 시작한건 추후를 생각해서 말리고 싶다. 생활코딩과 W3C School을 통해 배운 JS가 전부라고 생각한건 코끼리의 코만 본것과 같다.







화성인이 될 기회가 왔어.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학교대신 식사시간 제외 매일 11시간 근무를 하던, 나를 힘들게 하던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담당하다가 퇴사를 했다. 한 외주 프로젝트의 웹(+ 코딩까지), 안드로이드, 아이폰, 브랜딩(반절이였지만) 을 다 담당하고 이제 나는 디자이너 지망생이 아니라 그래도 '디자이너' 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다음에 들어갈 회사도 디자이너 포지션으로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졸업한 학교 선배한테 연락이 왔다. 선배가 추천해준 회사는 나에겐 정말 특이했다.

ML과 NLP가 중점인 회사

외국인 개발자들이 있고, 공통언어로 영어를 쓰는 회사 (회의, 슬렉, 모든걸 영어로!)

유연 근무제. 슬렉에 '오늘은 원격근무할게요', '오늘은 쉴게요', '저 몸이 안좋아서 늦게갈게요', '저 늦잠잤어요' 라고 해도 누구도 뭐라 안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되는 회사

위워크에 입주해 있어, 맥주와 커피가 무제한. 멋진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도, 오피스에서도 일할 수 있는 회사


그리고 내게 가장 중요한건

웹프론트엔드 작업을 하면서 디자인도 할 수 있는 포지션

수평적인 문화아래, 모두가 같이 기획하고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회사

이 두가지 특징이였다.


솔직히 엄청나게 고민이 많았다.

이미 디자이너라는 포지션으로 합격한 여러 회사들이 아닌, '웹 프론트 엔드 + 디자인' 이라는 포지션으로 들어가는게 좋을까? 개발을 내가 회사에서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 '넌 아직 몰라서 그래', '내 말을 들으면 더 좋아 질거야' 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인지, 내 의견을 마음껏 말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크게 와닿았고, 디자이너 업무만 있는 회사를을 뒤로하고 나는 웹프론트엔드 + 디자이너 라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애매하다고 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화성인이 되니까 보이는 것들


회사에 들어와서 정말 여러 프로젝트를 팀원들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약 1년간 음성인식기, 챗봇, 대시보드, 랜딩 페이지 등등 난 지금까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리기만 했던 디자인을 실제로 만들게 되었다. 다같이 회의를 해서 프로덕트의 방향, 기능 등을 결정하고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 디자이너일때는, '이렇게 하면 사용자가 좋아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고 사용자가 편리해하는 상황을 생각하며 엄청난 기대에 빠졌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하면 사용자가 좋아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한 뒤, '아 근데 이걸 어떻게 만들지...?' 라는 생각이 뒤따라 오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디자이너 길범준이랑 개발자 길범준이 싸우고 있다. 물론 그 싸움은 대부분 디자이너 길범준이 이기고 개발자 길범준은 결과를 수긍하고 방법을 고민한다. 하지만 예외로 개발이 쉽지 않아서 마감이 늦어질 때, 현재 프로젝트 구조상 넣기 힘들 때, 정말 개발적으로 말도 안되는 의견일때는 개발자 길범준이 이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디자이너이고 다른 개발자와 일을 할 때, 그 개발자들이 거절하며 나와 다투었던 상황이 내 머릿속 싸움이랑 같았다. 개발자는 코드로 자신이 생각하는걸 구현하는 멋진 사람들이다. 물론 프로젝트에 참여중인 사람인데 프로젝트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아닐거다. 디자이너 못지 않게 개발자도 프로덕트를 잘 만들고 싶은텐데 거절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편해진다' 라는 큰 장점을 얻기위해 생기는 사이드 이펙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상황에서 디자이너였던 내가 같이 그 사이드 이펙트를 고민하고, 같은 경험을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사용자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으면 싸움도 없었을거고, 프로덕트는 보다 좋은 퀄리티를 가지게 됬을거고, 같은 팀원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팀의 생산성을 저하 시키는 일도 없었을 것 이다.


디자이너가 코딩을 배웠으면 하는 이유는 어쩌면 너무 프로젝트 상황과 팀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사용자'만 생각하면서 행복한 생각에만 빠져있는 디자이너가 답답한 개발자들이 조금이나마 자신들을 이해해주길 바라는게 아닐까?








넌 어디에 서있니? 금성? 화성?


회사에서 Angular, Vue, React 모두 경험해보고 React를 회사의 주 스킬셋으로 정했다.

프론트엔드를 위한 간단한 api 요청을 해줄 서버가 필요해서, 챗봇을 만들어야해서 Node.js 도 경험했다.

정말 내가 회사에서 존경하는 디자이너님을 도와 대시보드도 디자인했고, 간단한 프로젝트는 내가 스케치로 디자인해서 내가 코드를 짜기도 했다.

마케터의 빈자리가 생겨서, 난 우리와 우리 프로덕트를 알리기 위해 팀원들과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마케팅 컨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도중 나는 살짝 혼란이 왔다. 어떤 컨퍼런스를 가서, 행사를 가서 '저는 주니어 디자이너 입니다' 라고 말했었지만 지금의 나는 디자이너 인지, 개발자인지, 마케터인지 명확히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팀원들과 서로 존중하며 회의를 하고 우리 프로덕트를 위해 내가 해야할 역할, 내가 할 수 있는 테스크를 가져와서 일했다. 나보다 경력이 높고 흔히 말하는 스펙이 좋으신 분도, 외국에서 개발을 해왔던 개발자분도 나에게 질문을 하고 나도 그 분들께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을 했다. 회의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나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하는게 익숙해진 것 뿐인데,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불확실 해졌다.


사실 아직도 명확하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팀에서 프로덕트를 위해 디자인을 해야할 땐 나는 디자이너이고, 프로덕트를 위해 프로그래밍을 해야할 땐 개발자고, 프로덕트를 알려야할 땐 난 마케터니까. 하지만 확실한건 난 '프로덕트'를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다. 프로덕트가 더 좋아질 수 있는데, 내가 할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서 합당한 이유없이 눈을 돌리는건 바보같으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UX + 프론트엔드 기술 = UX 엔지니어

UX + 시각적인 디자인 = UX 디자이너

UX + 프론트엔드 기술 + 시각적인 디자인 = 유니콘!


아직 나를 유니콘이라고 말할 순 없을거 같다. 물론 추후에 내 명함에 이름 : 길범준, 직업 : 유니콘  이라고 적고 싶지도 않다. 그냥 프로덕트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한테 회사가 원하는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하면서 프로덕트를 만들고, 지금 회사처럼 역할 구분이 없다면 상황에 따라 역할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름 : 길범준, 직업 : 프로덕트를 사랑하는 사람) 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별고민 없이 회사에서 나에게 제일 원하는 역할로 나를 소개한다.








마치며, 그냥 나는 지구인할래


수많은 고민을 하며 지금까지 왔지만, 고민의 끝은 없는거 같다.

그래도 고민을 계속 하니까 변화가 있다. 물론 변화와 함께 또 다른 고민도 생긴다.

그리고 난 요즘 정말 간단하지만 어려운 방법을 하나 생각했다.

어떤 역할로 구분하기 힘들면, 어떤 역할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실력과 경험을 각 분야에서 쌓아 나가면 된다

말로는 쉽지만 힘들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완벽하게 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하다.


여튼 정리하자면,

나는 디자이너 였지만, 개발자가 답답해서 개발자가 되었다.

개발자가 되니, 디자이너일때 이해가 안됬던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랑 개발자랑 굳이 싸울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싸우지 말고 서로를 설득하면 간단하게 풀릴 일들이다.

나는 지금 내 역할을 정확히 구분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회사에서의 역할, 각각의 프로덕트 팀에서의 역할은 정확히 할 수 있다. 회사와 프로덕트팀 밖에 본 '길범준'이라는 사람이 어떤 역할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의견이 있다면 꼭 알려주세요 :)


정말 머릿속에서 생각나는대로 글을 적었다.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그대로 적기엔 제일 좋은 방법이였지만 이 글을 읽을 '사용자'에겐 나쁠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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