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rtonCottage Jun 14. 2016

Westie 몰리;이제 그만 아프자

식탐 비극 3 ; 복숭아씨

3주째가 되어가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녀석은 다름없이 토를 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양과 횟수의 노란 액체 더미를 여기저기 쏟아내고 있었다. 작은 몸 어디에서 저렇게 많은 물이 쏟아져 나올까 할 정도로 놀라운 양이었다. 입을 벌린 채 부시시하게 보고 있던 나는 급기야 녀석의 비틀거림에 잠이 확 깨어 황급히 다가갔다. 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힘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머리를 들고 헉헉 거리는 것조차 버거운 듯하다. 무언가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음을 느꼈다. 녀석을 조심히 안았다. 떨지 말라고 말하며. 좀처럼 사람에게 안겨있는 것을 싫어하는 놈인데 웬일로 가만히,  내 품안에 가만히 들어와 앉았다. 녀석이 2초에 한 번씩 부르르 하며 떨었다. 마치 몸서리를 치는 듯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시큼한 액체에 이제 힘이 달리고 몸서리 쳐질 만도 하다. 보는 사람도 이리 힘이 드는데.


"괜찮아. 떨지 마 몰리야. 떨지 마."


그때 처음으로 불길한 생각을 했고 정체모를 감정이 왔다. 깊고 컴컴한 물이 목젖과 가슴 한가운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게 생각보다 더 크고 무거운 존재였다는 것을 축 늘어져버린 녀석을 품에 안은 그때야 겨우 깨닫고 있었다.




다시,

ⓒscottvet(실제 VET과는 무관)

안티 박테리아 스프레이와 병아리 냄새를 닮은 개들의 채취로 꽉 찬 하얀 방에 들어왔다. J와 나는 진료대 위에 몰리를 올렸다. 또 똑같은 답변을 하고 뻔한 처방을 내릴 것 임을 예상하면서도 몰리를 Vet으로 데려왔다.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엑스레이를 해줘."

Vet -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할게."


마취를 하겠다며 무언가에 젖은 헝겊으로 몰리의 코와 입을 막자 녀석은 작은 몸을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힘으로 제어가 되질 않자 수의사는 몰리를 놓쳤고 녀석은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까만 눈을 더욱 커다랗게 부릅뜨고는 진료실 방 한쪽 모서리에 엉덩이를 잔뜩 밀어붙인 채 앉아 통곡을 하며 미친 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Vet-"좀 기다리면 마취가 될 거야"


한참을 기다려도 마취가 되기는커녕 몰리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기어코 끼악 끼악 악을 쓰고 있었다. 이 서툴어 보이는 수의사는 당황한 듯 이번엔 주사를 들고 왔고 저항하는 녀석을 힘으로 압박하며 사투 끝에 우리의 도움으로 겨우 마취 주사를 놓았다. 팔뚝보다도 작은 강아지를 둘러싼 학대 현장 같았다. 엑스레이를 하러 들어가는 동안에도 수의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몰리의 다리와 몸을 힘으로 억지로 제어했고 녀석은 비명을 질러댔다.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진료였다.


Vet-"아무 문제가 없어. 피검사도 정상이고 엑스레이는 얘가 발버둥을 쳐서 흐릿하긴 한데 별다른 게 발견되지 않았어"


너무 허탈했다.  몰리의 그 처절했던 상황 후 들려온 것은 또다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다. 뭔지 모를 원망감에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알았다며 몰리를 안고 나왔다. 녀석은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다 쉰 채 안 나오는 목소리로 계속 울었고 더욱더 힘이 빠져 내 무릎에 축 늘어져 버렸다. 집에 도착하고 식구들이 귀가하자 녀석은 오늘 있었던 사건이 얼마나 끔찍했는 지를 알리려는 듯 식구들 하나하나를 만날 때마다 꺼이꺼이 목소리를 높여 구슬프게 울었다.


B- "이구 몰리 그래쏘~"

J-" 우리 몰리 힘들었어~ 아팠어~"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자 다들 별 반응이 없이 침묵했다.  누구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답답한 지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엑스레이상에도 이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는데 나 혼자 복숭아씨 때문에 토를 하는 거라고 계속 주장할 수도 없었다. 엑스레이가 흐릿했다는 수의사의 말만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식탁 밑에서 취침 중


호박찜, 고구마밥, 현미밥, 연어구이, 북엇국, 계란밥, 미역국, 오리백숙, 양고기찜...

녀석을 위해 처음으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웨스티는 알러지가 많다고 하니 사료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마지막 시도 일 것 같았다. 매일 요리를 해서 몰리에게 갖다 바쳤다. 개에게 좋다는 갖가지 재료들로 만들었다. 부모님께 이렇게 했음 일찌감치 효자라고 소문이 났을게다. 아무렴 어떤가. 이 작은놈 하나 살리겠다는데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어야 한다. 점차  마른 사료를 안 먹고 거식하던 녀석이 내가 해준 요리들의 냄새는 거부할 수 없었는지 맛있게 먹어 치웠다. 특히 북엇국과 호박찜은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고 우리는 그걸 보며 또 흐뭇해했다. 누군가는 맛있는 거 먹으려고 토한다는 어이없는 말을 말했다.


찐 단호박 으깨기 ⓒ grainfreedog


보양식을 먹여도 몰리의 토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3,4일 정도가 더 흐르고 어느 날 오후. 낮잠을 자던 몰리가 또 헉헉 거리며 초조한 듯 어슬렁 거리더니 정말 미친 듯이 액체를 쏟아냈다. 마룻바닥에  온통 토해낸 역한 물이 퍼져있었다. 내 방 근처에서만 쏟던 녀석이 토할 공간이 더 필요했는지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계속 해댔다. 나는 그 양에 놀란 나머지 닦을 정신도 없이 어안이 벙벙하여 헉하며 몰리의 뒤를 따라갔다. 불길한 생각과 함께. 녀석은 K와 B의 방 앞에까지 어마어마하게 쏟아 놓고는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괜찮냐고 물으며 살펴보니 의외로 녀석은 멀쩡해 보였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빨리 닦자 싶어 휴지로 쓸듯이 닦으려 하는 와중에 나는 심봤다를 외쳐야 했다.


복숭아씨.......!!!


복숭아씨. 그 엄청난 양의 토물 속에 앙상하고 쬬삣한 복숭아씨가 섞여 있는 게 아닌가. 한껏 쪼그라든 엄지손톱만 한 씨. 둘러싸고 있던 과육이 녹아 없어져 끝부분이 송곳처럼 더욱 뾰족해져 있었다. 이게 지난 3주를 그렇게 애태우게 했던 그 문제의 복숭아씨라니.


ⓒwiki


"잘했어 몰리. 아주 잘했어 몰리. 장하네 우리 몰리! 착하네 우리 몰리. 잘했어! 잘했어! 고생했어!"


복숭아씨가 녀석의 몸 밖으로 나온 것에 날듯이 기쁜 나머지 실성한 듯 웃으며 몰리를 안고 투닥거리고 혼자 난리를 지었다. 나는 복숭아씨가 무슨 사리라도 되는 듯이 잘 닦았다. 그리고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온 식구들에게 보여 주었다.


"복숭아씨 나왔어. 이거 봐 진짜 이거 때문에 그런 거였어. 그래도 몰리 기특하지?"


ⓒsamhofman


식구들은 동물병원과 수의사를 욕했고 병원비를 아까워했으며 그런 걸 삼킨 몰리에게 핀잔도 주었다. 엄청 기뻐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복숭아씨를 본 K는 복잡한 심정의 어두운 표정을 지었고 그래서 얼른 씨를 내다 버렸다. (사실 어딘가에 담아 오래 간직할까도 생각했으나) 그러면서 다시 한번, 저 눔시키 이상한 거 처먹었다며 몰리에게 핀잔도 주었다. 몰리의 식탐과 우리의 부주의로 인한 복숭아씨 토 사건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종결되었다. 3주 동안 그 뾰족한  씨가 뱃속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통에 얼마나 괴로웠을까. 원인불명의 아픔이라면 사람이 그렇게 하듯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볼 걸 왜 안 그랬을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녀석이 안쓰럽다. 후에 이사를 다니며 찾아간 여러 다른 동물병원에서 두려움에 떠는 몰리를 그렇게 힘으로 제압해 진료한 곳이 한 곳도 없었고 수의사들은 그때 그것이 잘못된 진료였다고 조용히 얘기해 주었다. 나는 당시 왜 병원을 옮겨 볼 생각을 하지 못했나 하며 또 못난 후회만 했다.


다 같이 햄버거를 먹다가,

"야 주워"

"양파 떨어졌어"

(한쪽 발로 몰리를 막으며)"몰리 안돼! 오지 마 어허."

(급히 바닥을 닦으며)"치웠어. 치웠어."


3주라는 질릴 듯 길었던 그 사건이 있은 후 우리에겐 또 변화가 생겼다. 식구들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몰리가 삼킬만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면 비상이 걸렸고, 몰리에게는 병원 트라우마가 심각하게 생겼으며 식구들의 관심을 끌고 싶을 때면 토하는 시늉을 하기도 해 놀라게 만들었으며 나는 볼트(애니메이션)만 봐도 눈물을 짤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녀석의 머지않은, 언젠가 닥칠 가슴 아플 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은 건 몰리의 식탐뿐.



이제 아프지 말자.

건강이 최고다!

 

제일 구여운 슈퍼맨~ 포즈







매거진의 이전글 Westie 몰리;식탐 비극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