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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seinate Sep 17. 2016

범죄 수사의 표적이 되는 사람들과 예외자들

[서평] 맷 타이비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입헌 민주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법치국가의 원리에 따라, 행정도, 복지도 모두 법률에 따라 진행된다. 형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기는 어렵다. 물론 법률구조제도와 국선변호인 제도에 따라 최소한의 보장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의 귀천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날카로운 법적 논리를 들이대는 일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위험은 크다. 잘못하다간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렵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승소 확률도 높은 데다가 패소 시의 사회적 비판도 덜할 것이다. 법 집행자가 집행의 기준을 비틀면, 민주주의의 법치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소련 치하 레닌그라드에서 공부했던 미국 칼럼니스트 맷 타이비는 과거의 소련과 현재의 미국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그가 젊은 시절 살았던 소련에서는 달러와 같은 특정한 화폐의 소유가 금지되어 있었다. 어린 소년들은 3달러만 소지해도 체포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공무원은 해외 명품을 지고 돌아다녀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형사 제도와 형벌이 차등적으로 적용된 것이다. 그는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소득에 따라 권리가 제한되고 있다고 본다. 월 스트리트의 거대 금융 기업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곧 합의에 도달하고 실제로 처벌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뉴욕에 사는 흑인이라면 길을 걷기만 해도 보행자를 방해한 혐의로 체포당할 수 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구부러지는 법 적용

미국 내 수감 인구는 1991년의 100만 명에서 2012년의 220만 명으로 가파른 증가세에 있다. 가석방과 수감 중인 인구를 모두 포함하면 오늘날 미국 흑인의 수감 인구는 흑인 노예제 시대를 앞지르고 있다. 

가파른 속도로 수감률이 상승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감은커녕 범죄 처벌 단계까지 나아가지도 않는다. 월 가에서 금융 범죄로 기소된 회사는 대개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대형 금융 회사들은 정부와 거래하여 수백억 달러의 합의금을 내기로 합의한다. 합의금은 회사가 벌어들이는 액수의 극히 일부지만, 합의금 지불로 형사 재판은 실질적으로 끝이 난다. 

            

▲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

ⓒ 열린책들


한 쪽에서는 감옥에 갇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 쪽에서는 검사들이 재판을 유죄로 끌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맷 타이비는 이런 구부러진 법 적용에 의문을 품고 이 책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를 쓰게 되었다. 

'사람들은 공무원들의 위선에 놀라우리만큼 담담하게 적응해 가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권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을 듣고도 분개하지 않게 되었다.' - 본문에서

미국의 법무부가 월 가의 회사를 기소해서 처벌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우선, 월 가의 업무를 맡아주던 엘리트 법조인들이 선거 승리 후 법무부 간부로 승진하는 일이 있다. 둘째로, 타산이 안 맞는다. 월 가의 회사를 기소하면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하는 초호화 변호인단과 맞서 싸워야 하며, 패소한다면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이 마음먹기에는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 

반면 중간에 합의한다면 월 가의 회사는 달콤한 합의금을 내놓을 것이다. 셋째로, 월 가의 회사가 행한 범죄를 밝혀서 회사를 처벌시키면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다. 범죄를 저지른 회사는 신용을 잃는다. 그 회사가 무너지면서 일어나는 연쇄 금융 사고로 일자리가 사라진다며 언론에서 공격하기 시작하면 정치권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 회사의 규모가 그 회사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에는 '길에 서 있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뉴욕 주 경찰들은 언제든지 <질서 교란 행위>를 했다는 구실로 사람들을 검문하고 체포할 수 있다. 업무의 질이 아니라 양에 근거한 체계 때문에 사실상 체포 할당량을 배급받은 경찰들은 위장을 하고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 도시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물론 실적을 위해 체포할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범죄자를 발견하고 법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지나가는 아무 사람을 억지로 체포하기도 한다. 뉴욕 주가 2000년대 중반에 경찰 초임 연봉을 4만 달러에서 2만 5천 달러로 삭감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찰 임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찰들은 특근 시간을 늘려서라도 월급을 더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근 수당을 최대한 늘리고 경력을 쌓기 위해 더 많은 체포 건수가 필요했다. 경찰들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애쓴 나머지 기업형 어업처럼 그물을 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잡아들이는 기계가 되고 말았다. 결국, 경찰의 이런 행보는 인도에서 걷지 않고 서 있는 사람을 잡아서 '보행자 통행 방해' 명목으로 기소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말았다. 도보에 서 있는 흑인은 그 자체로 체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체포된 사람들은 주로 빈곤한 소수 인종이다. 아이비 리그 대학에 다니며, 부모가 준 돈으로 고급 승용차를 모는 명문가의 백인이라면 교통을 어긴다고 바로 체포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렵게 살림을 꾸리는 옷이 남루한 흑인 남성이라면 체포될 수 있다. 국선 변호인들은 적군의 침공을 늦추려고 탱크 바퀴에 몸을 던지는 이들처럼 어떻게든 유죄 선고 공장을 중단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보석금을 내고 형사 재판이 다 끝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보다 이미 구금 기간을 채워버린 김에 경범죄 판결에 합의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훨씬 부담이 덜하다. 무죄든 유죄든 이런 소모 전략 앞에서 지치지 않을 피고인은 없고 결국 사법 절차는 곧 처벌로 이어진다. 

'천한 사람들은 천한 행동을 한다'는 모멸적인 편견이 이들의 구제에 대한 판단을 막는다. 대량의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 어쩔 수 없는 절차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람을 감옥에 넣는 일은 효율성만을 중점에 두고 처리할 업무가 아니다.

저자가 직접 느끼고 적은 현실은 극단적인 격차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다. 법을 효율적으로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권리는 보존되지 않았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갖는 존귀함과 중요성 때문에 기소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이 보여주는 법 집행의 격차는 한국과 약간 다른 면도 있다. 

뉴욕 주는 깨진 유리창 이론(낙서, 유리창 파손과 같은 경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론)에 따라 강력한 경범죄 처벌 정책을 실시했지만, 이런 모습은 한국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일에 양과 효율성을 강조하면 가장 약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권리가 제한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법치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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