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지방시의 저자 김민섭의 <대리사회>
작년 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었다. '309동 1201호'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약칭 '지방시'라는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그는 지방의 한 대학교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자신이 겪은 대학의 부조리와 강사들의 처참한 현실에 대해 고발했다.
'309동 1201호'가 말하는 대학은 차가운 곳이었다. 시간강사로서 성실히 근무해도 도저히 생계를 이어나갈 방법이 없었다. 건강보험 역시 지원되지 않았고, 다쳐도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근무했던 맥도날드에서 건강보험을 지원받았다. 이런 현실을 기록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동료들은 그가 저자라는 걸 눈치채고 비난했다. 결국 그는 대학을 떠나야 했다.
그가 선택한 새로운 직업이 대리기사다. 대학을 떠난 그는 이제 대리기사가 되어 서울의 밤 길을 누빈다. 그리고 행동과 언어를 통제당한 대리기사의 삶을 느끼며 모두가 다른 사람의 '대리인간'이 되어 살아가는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그의 책 <대리사회>가 말하는 사회는 모두가 을이면서도 갑의 입장을 생각하고 살아가야하는, 통제당하는 대리인의 사회다.
<지방시>를 내고 대학을 떠난 저자 김민섭씨가 대리기사로서 근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과 연구실을 오가던 사람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다니던 학교를 제외한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재빠르게 콜을 눌러야 하는데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베테랑 기사들은 출발지와 도착지만 봐도 도착지에서 막차가 언제 끝나고 언제쯤 버스를 타서 돌아와야 하는지 계산한다고 하니, 초짜 기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저자는 여러 대리기사를 부른 다음 한 명이 도착하면 다른 기사들을 전부 취소해버리는 손님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럴 경우 나머지 대리기사들은 전부 허탕치게 된다. 인구가 적은 동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도로를 무작정 걷기도 했다. 그가 이런 대리기사의 삶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대리기사는 행동과 언어는 물론 사고 역시 통제되는 존재다.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는 대리기사의 차가 아니기 때문에 세팅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하여야 한다. 손님이 요구하는 대로 차를 모는 것이 상책이다. 조수석에 앉은 손님이 창문을 열어도 뒷자리에 앉은 손님이 왜 추운데 창을 여냐고 대리기사를 탓하기도 한다. 손님이 다른 운전자에게 민폐가 되도록 음악을 크게 틀어도 그저 속으로만 민망해할 뿐 막을 수가 없다.
손님이 정치나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더욱 막막하다. 언어 하나 하나를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어를 잘 포장해서 손님이 들을 만한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 의도에 맞춰서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주체로서 사유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사유와 발화의 자유를 찾으려면 운전이 끝나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사유와 발화의 자유를 잃는 것은 대리기사만이 아니다. 타인의 운전석에 있는 대리기사처럼, 타인에게 순응하는 사고방식이 각인되면 주체로서 발화할 수 없게 된다. 갑의 숨겨진 의도에 맞춰 재빠르게 순응해야 하는 을의 공간은 사회 곳곳에서 존재한다.
수많은 사회의 을들은 의사 결정의 자유를 잃고 의도에 벗어나지 않게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면서 타인에게 순응을 강요한다. 결국에는 사유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순응하는 몸에 익숙해진 개인들이다. 국가/사회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는 한 그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을 대리하는 '대리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하고, 주체가 되어 사유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다. -37P
저자는 이렇게 모든 사람이 순응하며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사는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사유의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지 말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위치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구조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책에는 이전에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강사로서의 시선이 아닌, 대리기사가 되어 다시 방문한 대학의 입장을 다시 바라본 부분이 있다. 그가 외부에서 바라본 대학의 울타리는 하나의 폭력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대학은 외부인에게 개방되어있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몹시 폐쇄적인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외부인이 대학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구경을 하거나 일부 식당을 이용하는 수준의 그칠 뿐이다. 돌이켜보면, 저자 역시 대학에 환대받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한다. 자신도 대학의 대리인간이었던 것은 아닌지 저자는 회고한다.
노동에 관한 르포라는 점에서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과 유사점이 있기도 하지만 다르다는 점이 본문에 언급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노동을 정해진 기간 동안 체험하며 글을 쓴 뒤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저자는 돌아갈 대학에서 완전히 떠나 노동과 지식을 한 손에 들고 있다.
대리기사는 한국에서 특히 발달한 제도다. 밤에도 찬란한 거리가 낳은 새로운 직업인 셈이다. 한국적인 직업과 독특한 저자의 경력이 만나서 독특한 사유를 담은 책이 나왔다. 저자는 앞으로도 경계인으로서 균열을 탐색하고 싶다고 한다. 계속 거리의 언어를 몸에 새겨나가며 살아가고 싶다는 저자가 또 어떤 글을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