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seinate Aug 02. 2017

대출 빚이 너무 많다, 자식한테 물려줄 수는 없었다

[리뷰] 개인만 남은 지옥 같은 사회...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총잡이가 사는 곳은 외로운 곳이다. 미국의 중부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 비해 공권력이 미약하게 그려진다. 옛 영화 속의 황야와 초원 사이에는 마적단이나 은행 강도가 돌아다닌다. 도시나 보안관은 너무나도 멀기에, 의지할 것은 자신의 총과 가족뿐이다. 평탄한 지형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서 오직 개인의 의지와 강함만이 증명의 대상이 된다.

과거의 총잡이 이외에도, 오늘날에 개인의 의지와 강함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이들이다. 토지와 재산을 저당 잡히고, 은행의 대출 만기일까지 돈을 끌어모아야 하는 이들에겐 인생은 험난한 시련의 연속이다. 믿을 것은 자기밖에 없다.

최근 개봉한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 (원제: Hell or High Water)는 텍사스 서부의 은행 강도 형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강도 장면과 범죄뿐 아니라 은행 대출과 빈곤과 싸우기 위해 처절함도 감수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다.

대출의 악순환... 빈곤의 되물림


영화는 텍사스 미들랜드 은행의 강도 장면으로 시작한다. 복면을 쓴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와 은행에 강도질을 한다. 한 명은 차분하고 필요한 행동만 하며, 한 명은 폭력적이다. 그들은 다발이 아닌 낱장의 돈만 내놓으라고 협박해서 돈을 챙겨 떠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다른 은행에서 강도질을 한다.

둘은 동네 할아버지가 동전을 모아서 들어오는 자그마한 은행에 총을 들고 침입한다. 할아버지가 가진 권총을 뺏지 않고 책상 위에 두었다가 나중에 할아버지의 사격에 맞을 뻔한 엉성한 모습을 보인다. 또 낱장만 모아서 떠난다. 피해액은 수천 달러에 그친다.

다른 범죄 영화의 강도보다는 훨씬 적은 액수의 돈을 훔치는 이 강도는 형제 사이다. 감옥을 출소한 전과자 태너 그리고 농부 토비. 둘은 다 부서져가는 고물 차를 몰면서 영세하고 작은 은행에서만 강도질을 한다. 바로, 어머니의 유산인 토지에 걸린 저당을 없애고 토비의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이혼한 전 아내의 자식들을 지극히 여기는 토비는 전과가 전혀 없고, 강도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은행을 이용하러 온 한 할아버지의 권총을 은행을 털러 온 것이지 할아버지를 털러 온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뺏지 않았다가 할아버지의 총에 맞을 뻔하기도 한다. 영화 내내 토비는 강도질로 번 돈으로 도박도, 매춘도 하지 않는다. 그는 은행을 털어서 돈을 모으고도 쓰지 않고 조용히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이다. 그가 은행 강도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기 아들들이 제발 가난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이나 삼촌과 같은 인생은 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강도질을 통해 번 돈을 들고 농장의 토지에 걸린 저당을 없앤다. 그의 머리에는 가난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강도질을 통해서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돈만 모은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과 형의 죽음을 통해 얻은 돈으로 석유가 숨겨진 토지의 저당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

형인 태너는 훨씬 단순한 사람이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고 살인도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죽여 감옥에 갔다 온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토비의 만류에도 강도 와중에 사람을 때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켜 하지 않는 토비에게 더 큰 은행을 털자고 권한 이도 태너다. 그는 총을 겨누는 이를 먼저 쏴 죽이기도 하고, 이 와중에 시민과 경찰이 살해된다. 태너는 토비를 아끼기에 토비의 계획에 동참했고, 끝내는 자신이 미끼가 되어서 토비를 살리고 죽음을 맞는다.

개인의 삶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영화는 대출 속에서 살아가는 황량한 개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토비의 가족은 먹고살 정도의 액수만 대출받았지만, 농장의 토지를 저당 잡히고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 토비의 농장에 사는 소는 너무 말라서 스테이크 한 점도 안 나올 지경이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문 황량한 주택과 대출 광고만 보인다. 작고 무너져가는 도시의 은행에는 직원 두어 명이 서 있을 뿐이다. 

영화의 배경은 텍사스 서부 지역이고, 카우보이가 돌아다니는 곳이니 옛날에도 풍요롭게 그려지던 곳은 아니다. 그래도 강도로 돈을 버는 일은 일찍이 끝난 곳이건만, 영화의 배경은 삭막하고 건조하다. 21세기에 이 영화의 황량함과 고통을 가속하는 것은 인디언이나 마적단이 아닌 대출 광고와 은행이다. 작중, 토비는 은행에 반감을 품은 이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토비를 비롯한 텍사스 시민들이 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은 철저한 개인주의적이다. 텍사스 레인저가 강도를 보면 신고해 달라고 요청하자 지나가던 시민은 보면 신고하기도 전에 묻어버릴 것이라고 답한다. 불이 번져도 카우보이들은 그저 가축 떼를 옮길 뿐 공권력의 원조를 기대하지 않는다. 토비 형제가 강도질을 하는 도중 저항하는 이들은 개별적으로 총을 들고 있다. 도망치는 토비 일행을 쫓아서 오는 이들은 총을 든 시민들이다. 주인공인 토비 형제는 저당을 갚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범죄 행위에 손을 뻗쳤다.

토비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대출과 가난의 빚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행하는 행동들은 가족 이외의 사람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그는 최대한 사람을 죽이지 않기를 원하지만, 결국 은행에서 사람이 죽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의 윤리는 개인과 가족 안에서만 정상적으로 움직일 뿐이며, 사회 윤리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영화의 휑뎅그렁한 배경 속에서, 총을 든 사람들은 개인의 안전과 질서를 직접 지키려고 한다. 그들의 사회는 문제 해결에 공권력에 의지하지 않는 자경 사회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다. 안타깝게도, 영화 내에서 개인이 문제 해결을 위해 총을 든 결과는 다른 개인의 적이 되는 것이었다. 개인만 남은 지옥 같은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 영화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 <라쇼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