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칸다, 트찰라, 블랙 팬서. 이것들은 흑인을 하나로 묶고 '백인에게 수탈당하는'실제 역사를 히어로물로 승화시켜, 보는 이들에게 현실에 대한 풍자, 백인과 흑인 세계의 미러링, 힘의 역전으로 보이는 쾌감 등이 모두 버무려진 단어들이다. '와칸다 Wakanda'라는 국가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최빈국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비브라늄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이며 비브라늄을 다루는 기술 또한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는 탈지구급 과학기술과 경제, 군사력을 갖춘 지구 초강대국이다. 다만 비브라늄이 매장된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 지구적인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 쉴드를 치고 최빈국으로 위장해 세계와 교류를 단절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설정들로 <블랙 팬서>는 미국 내의 흑인들 뿐 아니라 백인들에게 식민지 경험과 수탈당한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크게 환영을 받았다. 특히나 '블랙 팬서'라는 캐릭터 자체가 메이저 급 출판사에서 처음 등장한 흑인 히어로로써, 마블 세계관 내에서 가장 부자라는 아이언맨보다도 4배나 재산이 많기도 하다. 코믹스에서 히어로라는 것은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많은 흑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존재였고 이제 영화로써 전 세계의 흑인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트찰라(채드윅 보즈먼)는 MCU영화에 등장하는 첫 블랙 팬서로써,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주었다. 사실 <블랙 팬서> 솔로 무비의 성공에는 블랙 팬서가 처음 등장했던, 루소 형제 감독이 만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기여가 워낙 컸다. 트찰라는 거기에서 이미 아버지의 죽음과 고뇌, 전사로써의 강인함, 엄청나게 멋지고 독특한 액션과 포스를 보여주었다. 영화 <블랙 팬서>는 루소 형제가 다 만들어놓은 이미지와 서사를 가져다 쓰면 되었다. 그래서 '액션이 부족하다' '미국 시각에서 그린 흑인이다' 등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MCU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3개 부문 수상에 작품상 후보로까지 올랐던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그 후속작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은 분명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긴 러닝타임에, 시간에 비해 부족한 액션으로 좀 지루할 수는 있지만 여왕 라몬다(안젤라 바셋)를 비롯한 여타 연기자들의 호연은 부족한 부분을 어느 정도 메워준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친 트찰라, 아니 채드윅 보즈먼에 대한 추모는 MCU 페이즈 3에 대한 마지막 이별을 함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마냥 좋다고만 말할 수 없는 아주 큰 단점들은 존재하며, 즐겁게 보았더라도 짚고 넘어가야만 할 부분들이 있다.
영화의 계륵, 트찰라
채드윅 보즈먼은 <블랙 팬서>를 찍고 2년 뒤 대장암으로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었다. 사실 2016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찍을 때부터 대장암 투병 중이었다고 하니, 그의 블랙 팬서는 암과 싸우면서 보여준 진정한 히어로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더욱 슬퍼하게 되었고, <블랙 팬서>로 MCU에서도 독보적인 인기와 흥행을 하고 있는 트찰라, 블랙 팬서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시리즈 영화에서 배우가 사망하거나 사정상 배역을 맡지 못하는 경우, 추모의 문구를 영화 앞이나 뒤에 삽입하고 영화 내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다. 조커 배역을 맡은 뒤 사망한 히스 레저의 경우에도, 조커라는 배역을 영구 결번시키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이 조커를 연기한다. 해리포터의 덤블도어도 그랬으며 MCU에서도 헐크나 제임스 로드(워머신) 등 캐스팅 불발로 중요 캐릭터가 바뀌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영화 내에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찍다가 사망한 경우에는 CG나 특수촬영, 대역 등으로 영화를 겨우 마무리 짓는 경우도 많다. 배우의 죽음이나 개인적인 사정이 영화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아마 트찰라의 경우와 가장 비슷하게, '이 배우가 아니면 이 역할은 절대로 다른 배우가 못할 것이다'라고 인식이 된 경우는 <슈퍼맨>의 크리스토퍼 리브일 것이다. 1978년 개봉한 <슈퍼맨>은 인기도 인기였지만, 만화 속 캐릭터가 살아 나온 듯 정말 완벽했다. <슈퍼맨>은 4편이 나오는 동안 영화의 작품성과 흥행과는 무관하게, 그는 그저 슈퍼맨 자체였다. 그는 실제의 삶도 슈퍼맨처럼 건강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1995년 승마 사고로 목이 부러져 전신마비가 왔고, 2004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한 재활로 건강을 되찾아가는 모습으로 모두를 감동시켰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사망하고 나서 2006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찍은 <슈퍼맨 리턴즈>를 보면, 그에 대한 추모와 헌사가 가득하다. 이미지가 가장 닮은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노력했으며, 슈퍼맨의 움직임 또한 트렌드에 맞지 않게 예전 슈퍼맨의 우아한 움직임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 그래서 예전 슈퍼맨의 향수를 가진 사람들은 좋아했지만, 최신 트렌드에 맞지 않는 액션과 연출 때문인지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다. 그만큼 슈퍼맨 시리즈에 있어서도 '크리스토퍼 리브'는 계륵이었던 셈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과 헨리 카빌이 제대로 리부트를 하고 나서야, <슈퍼맨>은 크리스토퍼 리브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코믹스와 시리즈 영화가 장기간 계속되는 중에, 시대의 변화나 배우의 노화는 제작자들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DC나 마블 캐릭터들은 20세기 초중반에 나온 것들이다. 코믹스나 영화는 다음 캐릭터에게 자신의 능력을 물려주는 방식을 취하거나 리부트를 하는 방식으로 프랜차이즈를 이어나갔다. 블랙 팬서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솔로 무비는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아서 아쉽지만, 다음 블랙 팬서에게 세대를 물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영화가 시작할 때, 트찰라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성대하게 블랙 팬서로써 장례식을 치른다. 영화 내내 와칸다는 왕이 죽었다는 이유로 외세에 위협받고, 그의 여동생인 슈리는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질 못하고 자기가 살려내지 못했다는 것에 자책한다. 이 영화 내내 트찰라의 그림자와 죽음이 드리워져있다.
영화는 그 영화나 배우의 팬만 보는 게 아니다. 또, 연결된 소식이나 관련 영상, 다른 드라마를 모두가 보는 것도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은 트찰라가 갑작스러운 병에 걸렸고 모습도 나오지 않게 죽음을 연출한 것에 대해 이해하고 또 슬픔이 살아났지만, 사실 영화적으로 보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연출이다. 블랙 팬서를 다른 배우를 쓰지 않고 물려주기로 했다면, 또 트찰라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였다면 다른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 죽은 지 한참 지난 후로 시작을 하던지, 아니면 응급상황 치료를 받는 장면이나 죽고 나서 덮이는 모습은 딥 페이크 기술을 활용해서라도, 적어도 그림자라도 보였어야 마땅하다. 슈리 혼자서 뭔가 긴박하게 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연출상 굉장히 밋밋했다. 영화가 트찰라에 대한 추모를 담고 있다곤 하지만 어찌 보면 트찰라의 죽음을 상업적으로 이용한 셈인데, 이용할 거면 더 제대로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어야 했다.
영화 속 트찰라로 한정해서 보자.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트찰라가 와칸다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며 블랙 팬서로써 와칸다와 아프리카의 명예를 지킨 것은 분명하고 뜻깊은 일이다. 그리고 왕의 죽음은 당연히 슬프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와칸다라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지구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왕위 계승자 한 명의 죽음일 뿐이다. 사실 와칸다의 입장에서 더 악재는 하트 허브가 모두 불탄 것이었다. 그런데 하트 허브마저 유전자 기술로 되살린 와중에, 마치 모든 원로들이 죽고 전통이 무너진 것처럼 왕위나 블랙 팬서의 계승, 군사 시스템 등이 엉망인 와칸다의 모습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채드윅 보스먼이라는 배우의 죽음을 트찰라의 죽음에 너무 과몰입시켜 반영한 나머지, 영화의 서사와 밸런스가 망가진 느낌이었다.
흑인 민족주의를 강조한 미국 중심주의 영화
<블랙 팬서>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흑인 민족주의에 기반한 영화라는 점이다. 우리가 보통 흑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사하라 이남지역,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을 말한다. 사실 인류의 기원이 이곳에 있고, 사하라를 건너가 유럽과 아시아로 간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였다. 사하라 북부의 인종 유전자 전체를 거슬러 올라가면 불과 40~50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할 정도다. 흑인의 유전자 다양성은 그의 몇 배는 된다. 그만큼 흑인은 피부만 까맣다 뿐이지, 그 색도 다양하고 키나 생김새, 언어, 문화가 정말 다양하다. 그걸 단지 '너희는 피부가 까만색이니까 하나의 흑인이야'로 퉁친 역사는 미국이 주도했다.
미국의 흑인들은 정말 다양한 부족과 국가에서 노예로 끌려왔다. 그리고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다른 부족이 잡아서 팔아넘긴 경우도 많다. 서로 인접한 부족이나 국가라면 역사적으로 더 날을 세우고 사이가 안 좋아지는 건 한국, 중국, 일본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북한과 남한은 또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은가. 하지만 미국에 끌려간 흑인들은 서로 부족 언어도 달라서 영어로 소통해야 했으며, 다른 부족의 문화가 서로 섞이도록 백인들이 종용하기 시작했다. 소설과 드라마로 나온 <뿌리 Root>를 보면 이런 상황이 너무나 잘 나와있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잊고 어떻게 미국에 흡수되어 하나의 흑인으로 뭉쳐져 살게 되었는지. 흑인을 하나의 민족처럼 인식하는 것이 말콤 엑스가 주장했던 흑인 민족주의다.
어떤 가상의 국가를 만들 때, 그 주변 환경과 역사를 버무리고 연결시켜야 제대로 된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에서 제주도의 탐라국이 아직도 있다고 가정을 하고 영화를 만든다고 해 보자. 적어도 왜나 청나라가 아닌 조선과 가장 밀접한 교역을 했을 것이므로 탐라국은 조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정도의 문화를 가지고 제주도 사투리와 비슷한 탐라어를 쓰는 국가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만약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탐라국이 터번을 쓰고 있거나 태국어를 쓰고 있다면,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탐라국에 모여있다면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 전체에서 난리 날 일이다.
'와칸다'라는 국가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 에티오피아와 케냐 사이에 있다고 추정되는, 6개의 부족이 연합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연합 국가다. 연합국가라는 이미지는 아마도 '모든 흑인 문화를 포용하는' 흑인 민족주의를 나타내기 위해서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와칸다의 공용어는 남아프리카 부족이 사용하는 코사어다. 심지어 와칸다 부족 중 하나인 자바리 부족은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남부의 요루바어 방언을 쓴다. 각각의 부족들의 모티브는 아프리카 대륙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섞어놨다. 우리가 보기엔 그냥 '아프리카 분위기가 물씬 풍기니까 좋아 보이네'라고 하지만 실제 광대한 아프리카 대륙과 그 안의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생각하면 이건 말도 안 되게 무례한 설정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언어가 와칸다의 공용어라고 해서 극장 가서 봤던 코사어를 쓰는 사람들은, 자막으로만 알아들을 수 있는 코사어 발음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블랙 팬서>에서 잠깐 나온 한국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충 그럴싸하게만 만든 것뿐이다.
또 음악은 어떤가? 케냐나 에티오피아, 혹은 그 근처 지역과 전혀 상관없는 가수들이 '그저 아프리카 분위기를 낸다'는 이유로 들어가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의 메인 보컬 중 하나인 바바 말(Babba Maal)은 세네갈의 국민가수인 이스마엘 로의 뒤를 잇는, 음발락스 장르를 주로 하는 세네갈의 퓨전 전통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에 기초해있다. 그걸 동아프리카 쪽에 그냥 막 가져다 쓴 것이다. 영화에서 장례식 장면에 바바 말의 노래가 메인으로 나오는데, 실제 바바 말도 출연해 노래하는 모습이 잠깐 나온다. 오리지널 스코어를 보면 그것뿐 아니라, 아프리카 여기저기의 음악을 섞어서 만들어놨다. 헐리우드 영화에 한국이 등장할 때 베트남 음악이 흐르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또 거기에 그냥 미국의 흑인 팝 뮤지션들의 때깔 좋은 음악을 입혀놓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 제3세계 음악 애호가로선 영 찝찝할 뿐이다. 미국인들이 한국과 일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게 이유가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도 그런 식으로 보는 거다.
장례식 장면에 등장하는 바바 말. 여왕 뒤에 노래하는 사람이다. 잠깐 크게 클로즈업된 화면으로도 나온다.
이렇듯 '와칸다'는 자신들의 뿌리가 피부색으로 비추어 볼 때 그저 '아프리카'라는 것 외에는 다 잊어버린, 미국 흑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판타지를 대상화해서 만들어진 국가인 셈이다. 와칸다가 지극히 전통적인 무기를 멋지게 사용하고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알고 보니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점이 미국의 흑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이래야지'라는 것들의 총집합이다. 미국은 여전히 타 국가와 문화에 대해 무례하다.
실제 아프리카인들은 <블랙 팬서>를 보고, 굉장히 어색함과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너무나 멀리 떨어진 각 지방 문화나 언어가 모두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건 아프리카를 마치 하나의 국가, 흑인을 단일민족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상의 아시아 국가를 만드는데 기모노를 입고 중국어로 노래하며 하회탈을 쓰고 있다고 하면 무슨 느낌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 팬서>가 전 세계 흑인들에게 찬사화 호평을 받은 이유는, 대부분의 국가가 백인들에게 수탈당하거나 식민지가 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흑인 민족주의에 동질감을 가져서이다. 그리고 사실상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할리우드 영화에 '같은 피부색을 가진 히어로'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것이었다. 와칸다를 아프리카 대륙의 자존심과도 같이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끼리는 단지 피부색이 같다고 동질감을 엄청나게 느끼지 않는다. 아프리카 대륙의 내전이 얼마나 심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우리가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서양에 여행 갔을 때 빼고 굳이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그 후속작인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여전히 그러한 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콤 엑스가 주장한 흑인 민족주의의 전작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까지 오르고, 미술상, 음악상, 의상상을 받았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렇게 해도 된다고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이번 편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국가인 탈루칸은, 마야 문명을 기초로 하고 있기에 마야 상형문자를 쓴다. 하지만 그 고증 또한 엉망이라고 한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모든 문명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미국인들이 보기에 그럴싸하게만 만들지 현지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자신들이 흑인, 혹은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설움과 핍박을 드러내고 미러링 하며 백인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정작 영화에는 미국 중심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어설픈 서사와 설정들
'블랙 팬서'는 신비한 하트 허브로 버프 받아 뿅 하고 힘을 얻는 그냥 히어로가 아니다. '블랙 팬서'는 왕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전사 자격 같은 것이다. 그래서 와칸다에서는 왕을 형식적으로나마 6개 부족의 결투를 치르는 의식이 존재한다. 그 결투에서는 하트 허브의 힘을 억제하는 약을 먹고, 일반인으로 싸우게 된다. 즉 블랙 팬서가 되려면 이미 육체적으로 완성된 전사여야 한다. 블랙 팬서가 될 계승자는 하트 허브를 마시는 순간부터 결투 의식까지, 의미 없어 보이지만 소중한 전통의식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왕이 되어 여러 부족을 이끄는 책임감도 포함된 것이다. 또 하트 허브가 맹독이기도 해서,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죽음을 이기고 선조들을 만나 지혜와 힘을 얻는 과정이 들어간다. 그래야 진정한 블랙 팬서가 된다. 전작인 <블랙 팬서>에는 이 과정이 아주 잘 나와있다.
그러나 트찰라의 동생 슈리(레티티아 라이트)는 천재 과학자로서 전통의식을 무시한다. 그녀는 장례의식을 무시하고, 블랙 팬서가 되는 의식을 무시한다. 그녀는 오로지 과학적인 것에 매달린다. 사실 이 부분은 집중이 좀 안되긴 했는데, 슈리의 역을 맡은 배우인 레티티아 라이트가 백신 음모론자로써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실제로 백신을 거부하기도 했어서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역은 천재 과학자인데 실제로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미지라...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아무튼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슈리가 한 명의 히어로로써의 성장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 이전에도 왕가의 자손인데다 전투능력이야 꽤 탁월했고 머리도 좋아서 블랙 팬서가 되기 위한 자질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과정이 너무나 억지스러웠다.
여왕 라몬다도 네이머에 의해 죽고 가족을 모두 잃은 슈리는 네이머에게 받은 선물을 이용해 하트 허브의 유전자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실험실에 누워서 하트 허브를 마신다. 거기서 간단한 의식을 하며 환상을 본다. 하지만 슈리에게 나타난 환상은 트찰라처럼 선조들이 아니라, 킬몽거였다. 깨어난 슈리는 환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주먹질을 하는데, 몸에는 블랙 팬서의 힘이 성공적으로 생겨났다. 그리고 6개 부족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나 등장해, 음바쿠와 팔씨름 한번 하더니 '블랙 팬서다!'라며 추켜세우고 환호하는 모습은 솔직히 코미디에 가까웠다.
킬몽거가 나타난 걸 숨기고 화를 내는 슈리는 '그런 바보 같은 의식도 했는데!'라며 말하지만 사실 블랙 팬서 의식의 반의 반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주문을 몇 번 외우며 누웠을 뿐이다. 보는 관객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대체 저렇게 화를 낼 정도로 무슨 의식을 했다는 거지?'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슈리에게 킬몽거가 환상으로 나타나고 그녀에게 힘을 전해주는 것은 이 영화의 반전이다. 그런데 킬몽거가 나타나는 연출은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선조나 오빠인 줄 알았다가 킬몽거가 등장해 슈리가 기겁하는 연출이 있어야 했다. 자신이 어떤 인물에게 힘을 받는지 몰랐다가 알아야 했고, 킬몽거가 가지는 그 어두운 내면세계를 마주한다면 훨씬 무섭고 강하고 섬뜩한 연출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킬몽거랑 간단하게 슥슥 이야기 나누는 게 다였다. 영화의 최고 반전 부분 중에 하나인데 이렇게 밋밋할 수가. 그리고 깨어나서 힘을 얻은 슈리가, 자신이 킬몽거와 같다는 것에 실망감과 자기혐오, 또 킬몽거와 같은 섬뜩함이 동시에 복잡 미묘하게 느껴지는 내면연기가 들어갈 연출이 있어야 했다. 그런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전통을 깡그리 무시한 채 하트 허브를 먹고 뿅 블랙 팬서가 되었는데, 6개 부족 특히 항상 블랙 팬서나 왕이 되고 싶어 했던 음바쿠도 팔씨름 한 번에 블랙 팬서가 된 슈리를 인정한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전쟁 준비 중이라 바빠서 그렇다고 한다면, 전쟁이 끝난 후 정식으로 블랙 팬서를 6개 부족에게 선보이던 마지막 장면은 또 어떤가. 블랙 팬서가 나올 줄 알았던 비행선에서 음바쿠가 나와 도전하려 한다. 하지만 슈리는 사라지고 없다. 그때 슈리는 아이티의 한 해변으로 가서 상복을 태우는 의식을 하며 마치 자신이 싫어했던 전통을 받아들이며, 이젠 죽은 오빠를 떠나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또 블랙 팬서로써의 의무나 의식을 무시하고 거기에 가 있는 것 아닌가. 음바쿠가 도전장을 냈으면 하트 허브의 힘을 억제하고 둘이 맨몸으로 싸워서 왕위쟁탈전을 해야 하는데,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도망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슈리의 모습이 마지막이라니.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을 깔면서 마무리지었지만 전혀 성장한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이 생각만 내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도망가면 음바쿠가 왕이 되는 것 아니야?"
불쌍한 음바쿠
어설픈 서사와 설정은 그것 외에도 많다. 비브라늄이 채굴당하자 그게 자신의 영토를 침략한 것이라 여긴 네이머와 탈로칸은 침략자들을 죽인다. 그곳이 자신들의 영토였고, 비브라늄이 그들에게 중요했다면 왜 백인들이 채굴 장비를 가져와 뚫을 때까지 가만히 두었는가? 자신들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면 이미 배가 들어올 때부터 세이렌과도 흡사한 자신들의 능력이나 고래, 물폭탄 등 자연현상으로 보이게 해서 자신들의 영역에 접근 못하게 막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바다 밑은 모두 탈로칸의 영역이었다거나 비브라늄 자체를 자신들의 것으로만 여기고 있다는 말인가?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는 설정부터가 허술하다.
탈로칸은 현대의 전쟁처럼 기습전 등을 하지 않고, 와칸다에게 시종일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 선전포고를 하고 경고한다. 또 상대방 공주를 죽이지 않고 극진히 예우한다. 근대사회까지 전쟁이라는 것은 이런 전통적인 의식이 필요했다. 죽고 죽여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당성이 있어야 했으며 그러기에 전쟁에도 예의가 있었고 서로를 존중했다. 탈로칸의 국왕이자 신적인 존재인 네이머는 여기까진 그런 위엄이 있고 예를 아는 자였다. 그런데 슈리를 구하러 온 나키아(루피타 뇽오)의 손에 감시병이 죽었다고 해서, 전쟁을 결정하고 상대방 여왕까지 죽인다? 이건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스러운 전개다. 자신들이 강제로 데리고 온 것이 맞으므로 오해를 살만 했고, 왕국의 중요인물이 암살당한 것도 아니므로 전쟁까지 결정하고 상대방 왕을 죽일 일은 아니었다.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동맹을 제안하고 있는 중인데. 그냥 '내가 따끔했으니 너넨 다 죽어라'라는 식의 결정은 네이머의 거대한 왕국을 다스리는 왕의 모습이 아니라서, 이전에 예를 알던 네이머가 아니라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원작 코믹스라면 워낙 성격이 더러워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영화로 한정해서 봐야지.
그리고 네이머는 자신의 약점이 피부로 호흡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 텐데, 왜 물 밖으로 나갈 때 헐벗고 다니는가? 아쿠아맨 같은 쫄쫄이만 입었어도 무적이 되는 것 아닌가. 비브라늄이 탈로칸에게 왜 중요한가? 인공태양을 만들기 때문에? 제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물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인공태양을 만들었는가? 비브라늄 설정은 이렇게 아무거나 갖다 붙여도 되는 걸까? 또 비브라늄 탐지기를 만든 리리 윌리엄스(도미니크 손)는 왜 애초에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가. 리리 윌리엄스는 이 영화 내용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없는데, 안 그래도 슈리의 블랙 팬서만으로도 이야기가 긴데 거기에 아이언 하트를 왜 끼워 넣었는가. 아이언 하트를 만들 때 왜 망치질이나 하고 있는가. 애초에 엄청난 나노기술 슈트를 만드는 와칸다의 기술력이면 이미 아이언맨 나노슈트보다 더한 걸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마지막 전투는 왜 그리 조악한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이 백병전이라니.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액션이 적어서' '이야기가 지루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PC 함을 자본주의적으로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이전에 '<겟 아웃> 정치적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서 PC를 자본주의적으로 이용하는 디즈니의 행태가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다룬 적이 있는데, <블랙 팬서> 시리즈는 서사 자체는 흑인 서사라서 마치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적인 이야기에 흑인들을 끼워 넣은, 굉장히 불편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또 반드시 넣어야 할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을 짜 맞추느라 안간힘을 써서 만든 모습이다. 마블은 페이즈 3에서 자신들의 드라마와 각종 영화들의 연계로 재미를 좀 보았고, 그걸 페이즈 4가 되면서 엄청나게 확장하고 있다. 넘쳐나는 새로운 캐릭터를 얼른 등장시켜 써먹기에 바쁘고, 디즈니 플러스 나올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이야기가 심심하도록 만들고 있다. 관객이 트찰라와 채드윅 보즈먼에게 가지는 애정과 슬픔을 이렇게 쥐어짜서 이용해 먹었으면서, 그것 때문에 서사와 밸런스가 망가지는 건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이다.
특히, 이 영화가 재미없어서 정말 망작이면 모르겠지만 재미가 없지는 않다는 게 문제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아프리카인을 만날 때 친근하게 대한답시고 "이범베!"라고 외친다면 그들이 좋아할까? 만약 그들이 코사어를 쓰는 부족과 적대적인 부족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한국인이 유럽 여행하다 '니하오!''와사비!'등의 말을 듣는 것과 별 차이 없지 않을까? 재미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흑인 민족주의와 미국 중심주의가 짙게 깔린 영화를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게 된다. 기존에 백인 우월주의가 잔뜩 들어간 헐리우드 영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