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시모프 Dec 04. 2022

<탄생>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길을 만드는 자

유네스코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2021년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했다. 천주교가 전래된 나라도 많고 거기서도 처음 신부가 된 사람들은 적지 않은데, 김대건 안드레아는 무엇이 특별했을까. 실제로 조금 깊이 들어가 천주교의 선교 역사로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와 김대건 안드레아가 갖는 의의는 굉장히 특별하다. 영화 <탄생>은 그의 탄생 201년이 되는 해에 개봉한, 메이저 영화 최초로 만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이다.



신부 없는 천주교의 전래

조선의 천주교 전래는 그 어느 나라보다 독특하다. 보통 기독교(천주교+개신교)의 전래는 식민지의 전초전 격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데 쓰였다. 또한. 선교사나 성직자를 박해하고 처형하면 그것을 빌미로 침략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과정이 아니라 굉장히 주체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례적인 사례이다.


조선에 천주교 전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하나는 임진왜란에 조선으로 들어온 포르투갈 신부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가 전파했다고 보는 이도 있고, 영화 <올빼미>에 나오듯 청나라에 잡혀갔다 돌아온 소현세자가 지구의를 비롯한 여러 청나라의 문물을 가져와 소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톨릭 신자로 유명한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세례명: 아우구스투스)의 종군신부로 세스페데스가 같이 조선에 왔으나, 조선은 그들을 고립시켰기 때문에 세스페데스와 조선인과의 접촉은 전무했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세스페데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임진왜란 이후, 노비는 도망가고 상인과 중인은 돈으로 양반 지위를 사고, 몰락하는 양반이 많아지면서 조선은 신분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었다. 이에 신분제에 대한 회의가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때 조선의 실학자들은 청나라를 통해 이미 천주교를 접하게 된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평등'을 강조하는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통한 것이다.


조선은 철학의 나라다. 유교를 종교로 보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신(神)'을 믿고 섬기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교는 유학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조선에서는 천주교를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처음에는 서양철학 - 서학으로 받아들였다. 천주교는 당시 유학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진보적인 철학이었으므로, 유학을 기초로 하는 조선의 성리학을 개혁하고자 하는 실학자들 중에 서학을 받아들이고 종교로써도 인정해 천주교로 개종하는 일들이 생겼다.


이렇듯 조선은 신분제 철폐와 사회개혁을 위해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신부가 선교하러 오기도 전, 서학을 연구하던 이승훈은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명례동에서 교회를 만들고 미사를 집전했다. 이 명례동이 지금의 명동이고, 그 교회의 정신을 잇는 곳이 명동성당이다. 그때 다산 정약용도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조선은 이렇게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생적으로 천주교가 전래된 국가이다.


천주교에서는 '교구'라는 행정구역이 있다. 교구는 주교가 관리하는 구역을 뜻하며, 조선은 주교는 물론 신부도 없었으므로 '북경 교구'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천주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신자가 늘어가면서 신자들만으로 미사를 집전하거나 성사를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 학문에 대해 제대로 깊게 공부한 사람이 없었으므로 제대로 배운 사람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은 철학의 나라였으니,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독학으론 한계가 있던 것이다. <탄생> 영화 처음에, 조선의 신자들이 외국 교단에 신부를 요구했다는 자막이 나온다. 신부가 선교하지도 않은 국가에서 '우리가 그 종교를 믿고 있으니 어서 신부를 내놓으시오'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개혁가이자 개척가, 김대건 안드레아

그렇게 처음으로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온 최초의 신부이자 선교사는 파리 외방선교회의 피에르 모방 신부다. 영화 <탄생>은 피에르 모방 신부의 조선 입국부터 시작한다. 요새는 TV에서 워낙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많이 봐서 피에르 모방 신부의 연기가 좀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성당에서 외국인 사제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피에르 모방 신부님의 연기는 그 외국인 신부님들의 발음과 굉장히 흡사해서 외려 친근감이 들었다.


피에르 모방 신부는 김대건 안드레아(윤시윤)를 비롯한 세 명에게 신학생으로써 유학을 보내게 한다. 이렇게 빠르게 자국의 신부를 만들려고 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의 천주교 교세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외국인 선교사에 대한 박해다. 당시는 천주교에 대해 조선의 근간인 신분제를 흔들고 유학을 배신한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천주교인은 간첩 수준으로 박해받고 배교하지 않으면 처형당했다. 서양인은 더 눈에 띄므로 잡혀가기가 쉽기도 했다.


김대건이 가려는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다. 홍콩의 마카오까지 가서 신학공부를 해야 했고, 조선에서 처음으로 불어 영어 라틴어를 공부해야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천주교 신부가 되려면 라틴어를 필수로 공부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미사를 라틴어로 집전했기 때문에 더 중요했다. 미사를 각 나라의 말로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은 1960년대 중반에 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이다. 그전까지는 미사는 라틴어로 해야 했고, 미사를 드릴 때는 신자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등을 돌리고 했다.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하면 등을 돌리고 하는 게 맞지만, 사실 라틴어로 등 돌리고 하면 그게 평신도들에게 실제로 제사를 지내는 느낌이 날까. 그래서 미사를 드린다고 하지 않고 '미사를 보러 간다'는 말이 여기에서 생겼고 아직도 남아 있다.



아무튼 김대건은 모방 신부 밑에서 라틴어를 익히고 마카오까지 이동하며 중국어를 익혔고, 마카오에서 공부하며 불어를 익혔다. 그의 외국어 실력은 탁월해서 군사 통역을 할 정도였으며, 프랑스 군대의 통역을 맡아 군함에 타서 난징조약을 참관하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 내에서 김대건은 유창하게 중국어와 불어 라틴어를 구사한다. 그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선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던 개척가이고, 또한 조선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경로를 개척했다.


<탄생> 영화에 나오는 이 모든 장면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실화이며 대부분 실존인물들이다. 이렇게 자세하게 만들 수 있었던 건, 김대건이 자신의 행적을 꾸준히 기록하고 편지로 보냈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즈린(송지연)이라는 여인만 창작 인물이다. 영화에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나오는, 라파엘 호를 타고 서해를 건너 상해로 오가는 장면 역시 기록으로 상세하게 남아있다. 김대건은 단순히 최초의 조선인 천주교 신부로써의 의미뿐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 길을 만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당시 서해를 건넜던 라파엘호는 신부로써 처음 도착한 나바위 성지에 복원되었다

 


최초의 조선인 유학생

<탄생>은 김대건의 신부로써의 이미지보다 개척가로써의 이미지와 조선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의 이미지를 더 많이 보여준다. 파리 외방선교회에서는 군함을 타고 들어가는 것도 고려하지만, 김대건은 강압적으로 선교를 만류한다. 천주교의 이미지를 위해서다. 그저 순명의 길을 따르기로 했을 뿐인데 김대건은 서양과 조선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김대건은 최초의 신부일 뿐 아니라, 서양의 학교에서 정식으로 유학을 하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하다. 그는 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들여오는 역할만 있던 것이 아니라, 서양에 '조선은 이런 나라다'라는 것을 조선인의 시각으로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탄생> 영화에서도, 조선이 작고 하찮은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 부분들이 중간중간 나오는 데 참 인상 깊다.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바로 침략하지 않고 되돌아간 것에 김대건이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분명히 나오진 않지만, 영화에선 마치 그런 역할을 한 것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제주도를 켈파트(Quelpart)라고 이름 붙인 것을 어이없게 생각하고, 서양 언문으로 된 조선의 지도를 만든다. 또한 나중에 투옥되고 나서는 그 지도를 보고 역으로 서양 언문으로 된 외국의 지명을 한글로 번역하는데 일조하기도 한다.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김대건은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깃털 펜을 만들어 글을 써서 사람들이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김대건은 조선을 대표하는 최초의 유학생이었으며, 조선에서 보기에 비록 참수당할 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출중한 외국어 실력자였다. 영화에서도 보이듯, 실제로도 그의 능력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대건 안드레아는 사제가 되고 조선에 들어온 지 1년 뒤에 순교하게 된다.


영화 초반 모방 신부가 그들이 거처하던 '은이 공소'를 보며 말하듯, 평등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양반과 천민이 친구처럼 지내고, 남자와 여자가 '조선보다' 평등하게 대해지는 곳. 모방 신부는 그것을 바라보며 '최초의 그리스도 공동체 모습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평등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일부 천주교나 개신교의 모습을 생각하면 반감이 들 수 있지만, 당시의 천주교는 분명 지금 같지 않았으며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했다.




<탄생>은 김대건이 16살에 마카오로 떠나, 25세에 순교하기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지금의 10대 후반 20대 초의 나이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목숨을 내건 삶을 살았다. 나는 그것이 단지 하느님이라 불리는 천주교 신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조선을 신분에 귀천이 없는 '평등한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열망이 그렇게 만들었다 생각한다. 그러기에 단지 종교적인 의미보다, 역사적으로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가진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김대건은 마치 예수의 모습처럼 그려진다. 험하게 몰래 밀입국을 하는 모습에서 천을 얼굴에 둘둘 감아 추위를 피하는 모습은 얼핏 유태인의 복식처럼 보인다. 그가 입국을 하려 험한 곳을 오가는 고행길은 예수의 고행을 연상케 한다. 또한 등에 나무 기둥을 짊어지고 어머니와 또 다른 여인을 보게 되는 그의 처형 장면은, 골고다 언덕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마주하는 예수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하지만 <탄생>은 전체적으로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너무 종교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오히려 교리에 의문을 가지며 토론하는 신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인 기록을 세세하게 한 김대건의 편지를 위주로 재현했다는 점이 볼만하다.


또한 <탄생>은 김대건의 성스러움보다는 스펙터클한 삶에 시선을 둔다. 그가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 거대한 폭풍우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아름다운 바다 노을, 상해와 마카오의 번잡하지만 멋진 풍경과 하늘 가득히 수 놓인 별들. 그 모든 시련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도 위로를 준다. 한 발짝 떨어져 보면 우리의 삶도 어디엔가 그려진 그림 같지 않을까.


남들이 가지 않던 길을 간 김대건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처럼.






*여담

- 영화 내에 등장하는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선부터 최근 한국까지 성령은 성신이라고 쓰여왔다. 성령으로 바뀐 것은 아주 최근, 1990년 미사통상문 개정이 일어난 이후다. 이에 대해 천주교 내부에서도 큰 논란이 있어왔고, 내가 성당을 다니던 중에 일어난 일이므로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영화 내에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신으로 고쳐야 했다.

- 한양을 서울이라고 부르고 적어서 조금 의아했는데, 사실은 훨씬 더 고증에 잘 맞춘 부분이다. 일반 사극에서는 조선의 수도를 '한양, 도성'등으로 부르지만 사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서울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서울은 왕이 사는 도시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위계질서가 중요한 조선에서 그런 지위를 가진 도시를 '지위적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마치 한국에서 부모님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것처럼.

- 영화 중반 옥에 갇힌 사람들을 보고 피에르 모방 신부가 와서 사방에 갇힌 천주교인들에게 손짓을 하며 기도하는데, 아마 곧 죽을 사람에게 하는 종부성사(병자성사)인 것으로 추측된다.

- 김대건 신부가 집전하는 부활절 미사에서, 신자들은 입으로 성체를 받아 먹는다. 신자가 손으로 성체를 받을 수 있게 바뀐 것도 위에서 언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다. 그 이후에는 포도주에 성체를 찍어먹는 양형 영성체가 아닌이상 손으로 받아서 먹는다. 그 이전에는 영화에서처럼 신자가 입을 벌리면 신부가 직접 혀에 올려주었다.

- 김대건의 처형 장면에서 마치 단칼에 목이 잘린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8번이나 칼을 쳐서 베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조선의 천주교 박해로 인해 처형당한 사람은 만명이 넘었다. 그 중 엄격한 교회법으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포함한 103명을 성인으로 인정했고, 1984년 교황요한바오로2세의 방한 때 103명에 대해 한꺼번에 시성식을 거행했다. 이 또한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 영화와 인문학을 접목한 저의 브런치북 <사소하지만 무거운 영화들> 도 재미있습니다 :)

https://brunch.co.kr/brunchbook/haveyouever


매거진의 이전글 <데시벨> 침묵을 강요하는 자에게 철퇴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