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으로 이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이 집은 창문이 커서, 아침에 너무 눈이 부셔서 깨게 된다. 내 집은 이제 임시로 사는 집이 아니라, 비록 월세지만 처음으로 진짜 내 보금자리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소품, 좋아하는 물건들로 채우고 깔끔하게 정리한다. 쓸모없는 물건들은 찢고 부셔서 버렸다. 불과 올해 초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올해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해이다. 오랫동안 끝내지 못한 것들을 끝내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던 업계도, 한국 상황도, 세계정세도 너무나 휘몰아치고 있어서 '사실 나의 일이 이렇다'고 뒹구는 것이 어린아이의 떼쓰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기에 말하기 힘든 것들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말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에 적을 수는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일들일테니까. 요 몇개월 간의 일을 돌이켜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나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누구인지, 누가 누구에게 정말 죄를 지은 것인지. 혼자서 가만히 방에 앉아 생각하면 지나가는 것들을 떨쳐 버리려 애쓰는 내 초라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을 감내하는 것이 내가 지은 죄를 씻는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나 혼자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서, 도와줄 손을 내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뿌려놓은 조각들이, 하나로 뭉쳐져 별이 되어 내 손을 잡아줬을 때 나는 그제야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는 구덩이에서 기어 나왔다.
사실 그곳에서 나오면 모든 것이 잘되고, 모든 것을 되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임재범의 노래 가사처럼, 모두 나를 기다리지 않고 떠났다. 이제 내 옆에는 그동안의 내 이상한 행동을 용서해 줬던 사람들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안정을 찾아갈 나이에, 나는 이제 모든 걸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지만, 나는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잘린 다리로 달리고 있으면서 예전처럼 달리고 있다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세상은 마치 나에게 등돌린 것처럼,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세상은 나에게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속에 평안과 고독이 공존한다. 뭐 사실, 아무에게도 출간제안이 오지 않는 브런치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긴 하다.
그래도 일어서야지. 그래도 걸어야지. 그래도 달려야지. 예전 같은 걸음은 아닐지라도 다른 걸음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떠난 것들을 뒤로하고, 반추하지 말 것. 그래야 앞에서 손을 흔드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