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업에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트렌드가 존재한다. 기술은 항상 작업을 편리하게, 싸게, 대중적으로 퍼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는 기술 하나만 익혀두면 평생을 먹고 살 수가 있었다. 대장장이건, 유기장이건, 농부이건, 그림쟁이이건 간에 말이다. 잘 팔리고 아니고를 떠나서.
하지만 기술의 혁신은 종종 그러한 기존의 안정적인 직업에 위협을 가한다. 새로운 툴을 만들어 내는 기술개발은 누군가의 밥그릇을 빼앗는 일로 종종 비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진기의 발명이다. 옛날에는 ‘인물 기록화’가 화가의 중요한 업무였는데, 그 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심지어 사진기가 나오자 더 이상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로 까지 번지게 된다. 화가라는 것은 입체적인 실제 세계를 평면적인 종이에 옮겨 담는 아주 테크닉적인 직업이었다. 그림이라는 것에 추상적인 화법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진기가 나오기 이전의 화가들은 거의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진기는 사실주의 화가들의 자리를 빼앗았고 방직기계는 방직공들의 일자리를 빼앗았으며, 경운기는 소가 끄는 쟁기의 자리를 차지했다.
비단 기계적인 툴의 발명뿐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무수히 많은 직업들이 생겨났다가 뒷자리로 밀려난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는, 평생을 계량기 체크만 하던 공무원이 곧 전자식 체크 방식의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이야기가 그려졌다. 지금이 그런 시대다. 하나의 기술,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버렸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빨라지고 있고, 문화와 트렌드의 변화의 속도 역시 빠르게 변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업가’들이 특별한 기술을 지녔다고 마음 놓고 안일하게 일을 하고 있다면, 금세 새로운 것들에게 뒤쳐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따른 당연한 변화다. 지금 인터넷 전화의 활성화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비싼 국제전화를 쓰려고 하지 않고, 십 수년 전에 방 하나를 가득 메운 레이저 프린터는 이제 가정집 책상 위에 아기자기하게 올라가 있다. 대중들이 가지게 된 편리함의 이면에는 그런 냉혹한 직업 생존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업가들은 한 가지를 배워서 안일하게 그 일만 쿵짝쿵짝하지 말고,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툴과 트렌드에 귀 기울여야 한다. 멈춰있는 것들은 빠르게 뒤쳐지다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컴퓨터 프로그램들 중에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은 과연 몇 개나 되는가? 툴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경쟁은 치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산으로 ‘쉬운 새로운 툴을 공부한 사람들은 기존의 비싼 툴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지금 작업가들의 문제는 꼭 새로운 툴의 문제가 아니라, 질 낮은 대학 전공자들의 난립으로 인해 질 낮은 제작자들이 대량으로 매년 양산되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작업을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도 하다. 페이의 문제를 제한다면 작업 기간이나 작업의 완성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새롭고 쉬운 툴을 사용해 작업 기일과 퀄리티를 맞추는 것은 당연한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좋은 인물화를 그리는 데에는 며칠, 심지어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사진으로 찍었다면 의상과 콘셉트 잡는 시간을 생각해도 하루 이틀이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진사한테 ‘내가 그림 그리는 것과 비슷한 시간 동안 걸렸다고 얘기해’라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래된 기술에는 그 기술 나름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새롭고 쉽게 나오는 툴과 기술과 트렌드들을 자신의 파이를 깎아먹는다고 무시하고 배척하려고만 하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익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툴과 기술은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배워야 한다. 허영만이 태블릿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들었다고 배움을 멈추지 마라.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20년 가까이 어도비 플래시로 먹고 살아왔다.(물론 내 수많은 일 중 하나이긴 하다) 그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사라졌다. 인터넷의 발달, 스마트폰 등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다. 플래시의 벡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은 인터넷 속도가 느렸던 예전에는 엄청난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cpu에 부하를 줘 발열과 리소스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으니까.
나역시 새로운 미디어를, 아니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니까.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20년 넘게 일해온 일들을 담은 <불멸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사는 법> 브런치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