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내가 고등학생이던 1990년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교실 풍경은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뒤통수들의 모임이다.
누군가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수업에 집중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딴생각에 잠겨있기도 했지만, 뒤에서 봤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까만 행렬 그 자체였다.
나 역시 그 뒤통수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키가 큰 편이라 늘 교실 제일 뒷자리에 앉았고, 그곳에서 선생님의 눈을 피해 이어폰을 꽂고 몰래 음악을 듣거나 책상 밑에 숨긴 무협지와 만화책을 들춰 보곤 했다. 내 눈은 칠판이 아닌 종이 위에, 내 귀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닌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에 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우리는 아직 남자라 부르기엔 어설픈 고등학생 신분의 남자아이들이었다. 좁은 교실 안 줄줄이 늘어선 책상에 나란히 앉아 모두가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고, 속에는 각자 다른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의 교실은 늘 분필 가루 냄새가 가득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OHP 필름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칠판에 하얗고, 빨갛고, 노란 분필로 판서를 했다.
당연하게도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칠판 앞엔 하얀 분필가루가 소복이 쌓였다. 누군가가 교실 창문을 열고 칠판지우개를 탁탁 두드릴 때면 하얀 분필 가루들이 먼지가 되어 흩날리며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업 시간 동안 나란한 행렬 같던 뒤통수들의 모임은 10분 간의 쉬는 시간이나, 60분짜리 점심시간이 되면 엉망진창의 무질서한 배열로 변환되었다.
어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었고 누군가는 총알같이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농구, 축구, 야구 등 모든 구기 종목들이 복도나 교실 뒤편에서 떠들썩하게 펼쳐지곤 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는 아직 철부지 어린아이 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난장판 중에는 수업이 끝나고 종례 전 주어지는 잠깐의 청소 시간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내내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은 항상 한결같았다.
모두에게 목적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청소 시간만은 그 의미가 계속해서 변해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청소 시간은 의무 그 자체였다.
손걸레와 왁스를 챙겨 든 아이들이 머리를 책상 밑으로 들이밀고 자기 자리만큼의 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았다. 작은 손바닥에 묻은 왁스는 미끈거리기만 할 뿐, 나무 혹은 도끼다시로 된 바닥은 잘 닦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었으므로 모두가 열심히 흉내를 냈다.
교실에는 금세 왁스 냄새가 가득해졌고,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그 질감은 어린 마음에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걸레는 다음번 청소를 위해 빨지도 않고 어딘가에 처박혔다. 그렇게 며칠 바닥을 왁스칠하면 걸레는 금세 새까매지고 바닥면은 윤이 반들반들 나는 가죽처럼 변하기도 했다.
청소 시간에 누군가는 열심히 바닥을 문질렀고, 누군가는 대충 걸레질 흉내만 내면서 시간을 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모두가 청소를 함께했다.
나이가 조금 들자 청소 시간은 어느 정도 자율이 주어졌다.
분단별이나 번호별로 청소 당번이 정해졌고, 청소 당번이 아닌 아이들은 교실 뒤에 모여 수다를 떨거나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당번임에도 슬쩍 빠져나가던 아이들이 생겨났고, 반대로 당번이 아님에도 친구를 도와 함께 걸레를 쥔 아이들도 있었다.
청소 당번이 빠지면 그 빈자리는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 채워갔고, 누군가는 그런 상황에 대해 투덜댔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묵묵히 책상을 밀며 바닥을 훑었다.
그런 청소 시간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사회 시간에 자유와 평등, 권리와 의무를 분명 배웠지만, 수업 시간이나 점심시간과 다르게 청소 시간만은 그런 것들이 무너져 있었다. 어딘가 구분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청소를 했고, 누군가는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바라만 보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청소는 완전히 자율에 맡겨졌다.
선생님은 더 이상 일일이 지시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시간을 노는 시간으로 여겼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상을 옮길 때 힘을 보태거나 재미 삼아 빗자루를 들어 가끔 바닥을 쓸긴 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청소 시간에 교실과 운동장은 웃음과 농담으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쪽에는 늘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묵묵히 걸레를 짜서 바닥을 훔치고, 책상을 가지런히 줄 맞춰 정리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름이면 땀에 젖은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고, 겨울이면 차가운 물에 손끝이 아려왔을 테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 친구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같은 일을 이어갔다.
어느 날 공부도 잘하고 늘 계산이 빨랐던 반장 녀석이 그 친구에게 물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하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 말속에는 성적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요, 선생님이 알아봐 주고 칭찬해 주는 것도 아니요, 어떤 종류의 평가에도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남들은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거나, 신나게 떠들고 뛰노는데, 넌 왜? 너는 무슨 이유로 본인에게 손해인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대답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냥.”
옆에서 그 대답을 듣던 나는 너무 짧고 단순해서 허탈하기까지 했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 친구에게 청소 시간에 청소를 하는 일이 옳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나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따질 필요 없이 '그냥' 청소를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 청소를 손해라고 생각했던 반장 녀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또 묵묵히 교실을 청소하던 친구 녀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만약 청소라는 활동에 어떤 보상이나 이득이 있었다면 상황은 변했을 것이다.
청소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친구들이 보상을 바라고 열심히 쓸고 닦고 하는 모습을, 묵묵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스스로 청소를 했던 친구들이 그들에게 빗자루를 뺏기고 복도 밖을 서성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아마도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즐겁게 노는 것에 할애하고 가끔 기분이 내킬 때만 청소를 돕지 않았을까? 전에도 그랬듯이.
돌아보면 그때 들었던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 속에는 단단한 힘이 숨어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종종 떠오르는 순간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득이나 손해를 따지지 않고, 당연하고 옳은 일이니 하는 것. 그 ‘그냥’에는 그런 가치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태도가 아닐까.
요즘 하루를 살다 보면 모든 것이 계산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회사에서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외면당하고, 정치에서는 표가 되지 않으면 가치 없는 일로 치부된다. 일상에서도 남는 장사인지부터 따지는 분위기가 스며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냥 옳으니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출근길에 눈에 띄는 쓰레기를 주워 담는 이웃, 누가 보지 않아도 퇴근길 복도 불을 끄고 나가는 동료, 눈이 내린 아침에 조용하게 눈길을 쓸고 있는 어르신, 가족들을 위해 힘든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부모님.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깨닫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상이 없더라도, 단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하는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다.
‘그냥 웃어주는 것’,
‘그냥 도와주는 것’,
‘그냥 해내는 것’.
특별나진 않지만 그들이 쌓아 올린 작은 선택들이 우리가 사는 이곳을 아직 살만한 세상으로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도, 운동을 잘하는 키 큰 멋쟁이도 아니었던, ‘그냥’ 청소를 해내던 그때 그 아이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부디 어딘가에서 본인이 하는 일을 묵묵히 끈기 있게 해내어, 셈에 밝았던 그 누구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그 누구보다, 학생회장이며 반장이었던 그 누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해득실이 아니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며, 상식의 선에서 ‘그냥’ 옳음을 택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그런 보통의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 또한 순간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힘겹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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