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
지난 6월 마지막 주.
하나의 이야기를 쓰자고 마음먹었다.
제목은 "if 말고 while"
사실 오월 중순부터는 한 동안 힘들게 힘들게 브런치를 붙잡고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힘이 들었으므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쉽게 떠오르지 않던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어더랬다.
그런데 그렇게 한 달 정도 머리를 좀 비워냈기 때문이었을까? 6월이 끝나가는 주에 문득, 머릿속에 떠돌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엮이면서 '소설을 한번 써봐?'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릿속에 떠돌던 이야기들의 흐름을 정리했고, 그걸 활용해서 '조건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대충 흐름만 정하고선, 첫 문장을 적었다.
'그녀에게 오늘은 유난히도 힘든 하루였다.'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if)는 며칠 만에 쭉쭉 쓰여졌다.
다 적고 보니 얼추 3만 자쯤.
생각해 둔 커다란 이야기가 두 개(if와 while)고, 그 두 이야기가 합쳐지는 내용(if 말고 while)까지 있으니 잘하면 장편이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물어보니, 요즘 장편 소설의 기준이 8만 자 이상이라고 나와있었다. 물론 10만 자가 기준으로 나온 자료들도 있긴 했지만, 요즘은 8만 자만 넘어도 장편이라고...
그래서 8만 자를 목표로 삼았다.
두 번째 이야기(while)도 중반까지는 어렵지 않게 쭉쭉 나갔다. 1화를 발행할 때 5화까지 써져 있었고, 2화 3화를 발행할 때는 8화 11화가 써져 있었으니 속도가 빨랐다.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를 하니, 두 달의 여유를 가지고 써나가는 상황이었다. 이때는 '어렵지 않게 완성하겠네'싶었다.
그런데 그때 위기가 왔다.
이야기가 상승하는 내용은 술술 써졌는데, 하강하는 이야기는 첫 문장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분명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으나, 표현이 되지 않았다.
첫 번째 책(coffee & tree)에서도 '전개는 나름 괜찮았는데 마무리가 어렵네.'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이 휘리릭 지나갔다.
몇 번을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자정이 되는 날이 계속되었다.
날은 유난히도 뜨겁고, 습했다.
앞에 적어둔 글들을 다시 읽으며, 다음 전개와 그다음 이야기까지 머릿속에 흐름을 점검했다. 분명 이야기가 있는데 써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넌 왜 잘 쓰려고 하니?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면서. 소설은 써본 적도 없으면서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니?'
그렇다. 앞에 쓴 글들이 내 나름대로는 마음에 들어, 이어지는 이야기도 멋지게 쓰고 싶은 욕심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순간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래, 무슨 노벨문학상 받을 것도 아니고... 편하게 쓰자.'
하나의 욕심을 내려놓자, 두 번째 이야기의 후반부가 쭉 쓰여졌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소설은 벌써 7만 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거 잘하면 10만 자도 되겠는데...'
이제 두 이야기의 만남이 그려져야 했다.
그리고 그때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난 앞의 두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과 같은 상황을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바에서 만날 때, 그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서 다가갈까?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세상이었기에 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 역시, 나는 마무리가 약한가 보네...'
또다시 같은 종류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에 쓸 때는 거꾸로 써야 하나... 갈등과 결론부터?
그렇게 시간은 흘러 8월이 되었고, 나는 아직 3부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휴가부터...
난 프로 작가가 아니니, 일단 쉬기로 했다. 더위가 잠시 물러가, 꽤나 시원했던 8월의 어느 주에 나는 문경에서 휴가를 즐겼다. 글은 까맣게 잊고 그냥 쉬었다. 써 둔 글이 있으니, 착실하게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를 올리면서 그냥 시간이 흘러가도록 두었다.
가끔 적어둔 글을 손보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면 좋을지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진도는 빼지 않았다.
'언젠간 써지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광복절이 포함된 연휴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그 언젠가가 시작되었다. 3부가 써지기 시작한 것이다. 앞 선 이야기들보다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느리게, 꾸준하게 마지막 마침표를 향해 이야기가 나아갔다.
그렇게 두 번의 주말을 거치며 전체 스토리가 얼추 완성되었다. 글자수를 확인해 보니 9만 자... 이렇게 되고보니 1만 자가 아쉬웠다.
어떤 식으로 1만 자를 채울까. 이야기를 덧되면 좀 무너지려나...
'모르겠고 일단 쓰고 보자.'
그렇게 8월 마지막 주말에 1만 자를 추가하여, 10만 자를 채우며 이야기를 끝냈다.
끝내고 나서도 고민이 계속 됐다. 9만 자 버전이 더 좋은 것도 같고... 추가된 이야기도 나름 괜찮은 것 같고...
그런 고민으로 30일 낮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적당한 방식이 떠오르며 잠에서 깼다.
'음, 이런 방식이면 10만 자 버전도 나쁘지 않겠군.'
그렇게 8월 30일에 초고를 끝냈다.
10만 자라니...
하나의 이야기로 10만 자를 썼다니...
어딘가에서 소설은 내용이나 문장보다 완결 여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결국 완결이 났다.
6월 마지막 주부터 8월 마지막 주까지,
25년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 그렇게 'if 말고 while'이란 이름으로, 10만 자의 이야기로 내게 남았다.
'if 말고 while'이란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도 소설로써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끝낸 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았다. 그것이 10만 자의 글 말고도, 25년 여름이 내게 남긴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