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물리 문제에서 철학을 배우다
중3인 딸아이가 2학기 중간고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엊그제 밤에는 수학을 꽤나 어려워하는 딸이 물리에서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도움을 청해왔습니다. 이과 출신의 공대 졸업생인 저는 '중학교 문제쯤이야.'하고 문제를 풀어주겠다고 했죠.
문제는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가지고 답을 구하는 문제였습니다.
전 문제를 쭉 읽고 딸에게 물어봤죠.
'위치에너지 공식이 모니?',
'E(위치에너지)=m(물체의 질량) * g(9.8, 중력가속도) * h(높이)'
'운동에너지 공식은 모니?'.
'E(운동에너지)=1/2 * m(물체의 질량) * v(속력)의 제곱'
공식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모르고 있었죠. 너무 오래전에 배웠던 내용이니까요.
문제는 이랬습니다. 2kg의 물체를 9.8의 속력으로 던졌을 때, 물체는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단, 공기의 저항은 무시한다)
운동에너지가 위치에너지로 변환이 되니까, 운동에너지가 0이 될 때가 최대의 높이가 되는 것이라는 개념을 아는지를 묻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공식에 넣어서 계산을 할 수 있는지를 보는 문제였겠죠.
먼저 운동에너지를 구해보면 아래와 같았습니다.
E = 1/2 * 2(물질의 질량) * (9.8(속력))의 제곱 = 96.04J
이 에너지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구하려면,
96.04 = m(물체의 질량) * g(9.8, 중력가속도) * h(높이)
96.04= 2 x 9.8 x h 가 됩니다.
높이를 구해야 하니 h를 남기고 모두 반대편으로 넘기면 최대 높이를 구할 수 있겠죠?
1. 96.04= 2 x 9.8 x h
-> '='을 중심으로 양변에 모두 존재하는 9.8로 나누어 줍니다.
-> 96.04 / 9.8= 2 x 9.8 x h / 9.8
2. 9.8 = 2 x h
-> 우변에 h만 남기기 위해 양변에 1/2을 곱해줍니다.
-> 9.8 x (1 / 2) = 2 x (1 / 2) x h
-> 4.9 = 1 x h
따라서 높이는 4.9가 됩니다.
수학에 약한 따님은 양변에 똑같은 수를 곱하거나, 나누는 것에 대해 좀 어려워하더군요.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저, '='이 같다는 뜻이니, '='을 사이에 두고 양 쪽을 똑같이 대하면 공평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용돈을 줄 때 너에게 만 원, 동생에게 만 원을 주면 서로 불만이 없지 않냐면서요.
이보다 더 좋은 설명을 해줄 수는 없었네요. 학교에서는 무어라 가르칠까요?
어쨌든 자기 전에 똑같은 개념으로 속력과 높이를 구하는 문제를 몇 번 풀어주고 잠을 자려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저 h에 '나'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누구인가?'
이 얼마나 철학적인 질문인가요.
하지만 수학적으로 심플하게 써보면, 나 = 'X'가 되지 않을까요?
X와 나의 관계가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처럼 '='로 표현이 된다면 일이죠.
그리고 좀 더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붙어있는 국적, 직업, 나이, 성별 같은 것들이 나에게 저 수식처럼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는 집착, 나약함, 욕심, 불안 같은 것들도 내게 붙어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위와 같은 수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이 되겠죠.
'X' = 나 x (국적 x 직업 x 나이 x 성별 x.....) x (집착 x 나약함 x 욕심 x 불안...)
그리고 다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X'가 너무 거대해지지 않을까? 너무 무거워지지 않을까?
그리고 저 높이를 구하듯이 나에게 붙어있는 것들을 덜어내면 진짜인 '나'만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앞에 딸아이에게 설명했듯이 2 x h에서 h만 남기기 위해 2 x (1/2)을 하듯이 말이죠.
'나를 알기 위해서 내가 붙들고 있고,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을 찾아 없애는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의 반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두 개의 균형을 맞추면 된다.
균형을 맞추어 두 개의 관계가 '1'이 되게 하면, 결국 나에게 곱해지는 모든 수들은 1이 되어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나 자신을 유지하게 된다.'
꼭 자기 계발서나 철학적 주제를 다루는 책에 나오는 내용과 같지 않나요?
지금 당신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 가짜다. 그런 것들을 버려야만 비로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버리라는 것이 찾아 없애라는 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찾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걸 '1'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요.
만약 '나'라는 존재가 욕심이 과하다면 욕심을 없애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반대되는 성질의 '봉사나 기부'를 통해 두 개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 말입니다. 욕심으로 내가 가질 수 있었던 만큼, 그걸 남에게 베풀면 두 개가 상쇄되어 '1'이 되는 거죠.
만약 '나'라는 존재가 1보다 작은 자존감으로 작아지고 있다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활동을 통해 두 개의 관계를 '1'을 만드는 거죠. 그렇다면 오만하지도, 나약하지도 않은 진정한 나의 모습만 남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수학적으로 말입니다. 중학교 3학년 물리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의 수학.
그래서 '1'이라는 숫자는 참 신기하다. 도대체 어떤 숫자길래 곱해도 나눠도 자기 자신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은 누구와 곱해져도 대상을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존재하게 해 주니까요.
(내가 1이라면 정말 환상적이지 않을까요? 누구와도 찰떡같이 잘 맞을 테니까요.)
그리고 '0'.
'0'이라는 숫자는 어떤 존재든 곱해지면 다 '0'으로 만들더라고요.
불교에서 말하는 '空'을 깨닫게 되면 '나'라는 존재에 '空'이 곱해지면서 '무아'가 되는 걸까?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나 x 0 = 0이니까요.)
이런 종류의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다가 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깼을 땐...
'1'과 '0'에 대해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했고요. ^^
이 글을 적으면서도 신기합니다.
어쩌면 1이라는 숫자는 그저 숫자 1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오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닐까?
0이라는 숫자도 음수와 양수 사이에 존재하는 숫자 0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수의 개념이 아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글로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균형을 맞춘다면 내가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1'로 만듦으로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