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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운 Dec 24. 2019

한반도 구석기시대 핵심 병기 '백두산'

영화 <백두산>과 고고 발굴의 접점

  최근 영화 <백두산>을 보았다. 화산폭발이라는 스펙터클한 소재와 민족주의 상징으로서 백두산이 갖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영화는 미군과 중국 정부가 핵 기폭장치를 뺏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미중갈등의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을 곁가지로 보여준다. 북한의 잦은 핵실험이 백두산 아래 마그마방(magma chamber)을 자극해 화산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실제 연구결과가 있기에 단순한 허구로 치부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사실 백두산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핵심적인 무기재료의 산지였음이 최근 밝혀졌다. 현대의 핵무기부터 선사시대 석기에 이르기까지 백두산은 중요 무대인 셈이다.

  

대구 월성동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 석기들. 약 2만 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백두산에서 원석이 채취된 사실이 밝혀졌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백두산, 한반도 핵심무기 산지


  구석기시대 선사인들은 흑요석으로 화살촉이나 칼을 만들어 무기로 사용하였다. 화산 분출물로 유리질 광물인 흑요석은 깨질 때 단면이 매우 날카로운 성질을 갖는다. 현대에도 흑요석으로 의료용 메스를 만들어 사용할 정도. 거대한 화산답게 백두산에서는 예로부터 흑요석이 많이 났다. 흥미로운 것은 2년 전 국립대구박물관 연구조사에서 대구 월성동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의 산지가 백두산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만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 백두산 흑요석이 700km나 떨어진 대구까지 전해진 것이다. 2006년 발굴된 월성동 유적에서는 후기 구석기와 청동기, 통일신라시대 유적이 한꺼번에 확인되었다.


흑요석 파편의 모습. 깨진 단면이 날카롭다. 위키백과 제공


  대구박물관의 ‘대구 월성동 유적 흑요석 원산지 및 쓴 자국 분석’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월성동 유적에서 발견된 흑요석 유물 100점에 대해 김종찬 전 서울대 교수(물리학)에게 레이저 플라스마 질량분석(LA-ICP-MS)을 의뢰했다. 그 결과 이 중 97점이 ‘백두산계열 1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백두산에서 생성된 흑요석 유형은 총 3가지가 있는데, 국내 구석기 유적에서는 주로 1형과 2형이 발견된다. 국내 구석기 유적에서 흑요석이 발견된 곳은 약 30곳으로 이 중 남부지방에서 가장 많은 흑요석이 월성동에서 출토되었다.


백두산 천지 전경.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백두산 흑요석은 구석기 시대 한반도 남부에까지 전파되었다. Science Advances 제공


  문화재에 대해 파괴분석을 할 수 없어 그동안 산지 규명에 한계가 있었지만, 대구박물관 조사에서는 레이저를 이용해 약 50μm 지름의 미세한 손상만 가하는 첨단기법이 도입돼 산지 분석이 가능해졌다. 연구팀은 월성동 흑요석들이 원석 형태가 아닌 반(半)가공 형태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원석이 갖는 특유의 자연면(自然面)이 없고,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적 내 석기 제작지 4곳에서 흑요석 부스러기들이 발견되었다.


  앞서 백두산 흑요석은 경기도 일대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흑요석 원석이 백두산에서 채취된 뒤 가공을 거쳐 한반도 중부지방을 통해 대구까지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기 구석기시대 한반도 남·북부를 잇는 거대한 교역 네트워크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대구박물관은 “구석기인들이 사냥감을 쫓아 이동한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물건을 유통시켰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라고 밝혔다. 김경진 프랑스 페르피냥대 교수가 월성동 흑요석에 대해 용도 실험을 진행한 결과, 주로 동물 뼈 등을 다듬는 ‘새기개’나 사냥용 ‘찌르개’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재앙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영화 <백두산>에서 지질학자 강봉래(마동석 분)는 3년 전부터 백두산 폭발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정부가 이를 무시했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사실 거대한 화산폭발은 터지기 전 전조 현상이 목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상 최악의 화산폭발로 기록된 이탈리아 폼페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폼페이 유적지에 전시된 남성 시신의 캐스트. 유독가스로 인해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숨을 거둔 모습이다.


  고고학 연구조사에 따르면 폼페이 주민들 상당수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지진 등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장거리 여행이 여의치 않았던 만삭의 여인이나 서민들, 화산 폭발을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싶었던 귀족 등이 대폭발의 희생자가 되었다. 대폭발로 쏟아내린 화산재는 유독가스로 희생된 사람들의 몸을 뒤덮어 '캐스트'(화산재 등 퇴적물이 쌓여 보존된 화석)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폼페이 유적에 가면 쭈그려 앉아 손으로 코와 입을 막은 남자와 얼굴을 감싼 채 엎드린 여자, 집 안에 묶인 채 죽음을 맞은 개 등의 다양한 캐스트를 볼 수 있다.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에서 고고 유적 발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nWqng3MswATmWIBUDTWd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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