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손 그림으로 간판을 올리는 극장,
드라마 <야인시대>나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우미관(優美館)이 아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관(單館·상영관이 하나인)극장, 전국 유일 대형 예술극장, 개관 88주년 <광주극장>에 붙는 수식어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 대한 낭만을 설파하고 싶진 않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이 설레고 따스한 촉진이 있다곤 말하고 싶다.
스마트폰이 아닌 피조물로 송강호와 찰리채플린의 익살을 볼 수 있으면, 좋은 경험이다. 영화관에서.
멀티플랙스(megaplex), 다수의 상영관에서 다채로운 색깔의 영화를 담을 줄 알았던 그 공간은 단관극장들보다 다양한 영화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고 경제적 논리에 종속되가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논할 것 같은 광주에선 그 흔한 영화제를 찾아보기 힘들고,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상영공간도 흔치 않다. 광주는 호남을 대표하는 광역도시다. 광역도시 안 시공조차 멀티플랙스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바뀌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반문해 본다.
"광주극장은 1933년 교육자이자 사업가인 최선진씨가 설립해 1935년 10월 1일 개관했다. 조선인이 설립한 광주 최초의 극장이자 1250석에 달하는 대극장이었다. 1930년 일본인이 세운 제국관과 함께 광주 지역 양대극장이었다. 광주극장을 한 문장으로 규정하면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개관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명맥을 지켜온”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1939년 조선영화주식회사 사장 최남주가 첫 번째로 제작한 영화 <무정>이 개봉됐다. 1945년 8월 17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남위원회 결성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광주극장 출입구 1과 2 사이에 있는 임검석의 흔적이 그 긴 역사를 보여준다. 1922년 일제의 검열이 시작된 이후 극장에 파견 나온 경찰은 임검석에 앉아 영화나 공연을 검열했다. 독립을 상징하거나 식민지배의 설움을 표현해 비위를 가스를 때마다 경찰은 호루라기로 주의를 줬고, 호루라기를 세 번 불면 공연을 중단해야 했다. 임검석은 해방 후에도 검열이나 선도를 위한 공간으로 남았다."
<위기의 지방극장 구하기, 고향사랑기부제가 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주영재 기자(2023.11.26) 중 일부 발췌>
https://www.khan.co.kr/culture/movie/article/202311260900021
<원주아카데미극장>이 철거 됐다. 여러 이유가 상존하겠으나, 그 자리에 주차장이 덜어서고 철거된 주된 이유가 경제적 우위라는 것은 진실이다.
<다음소희>로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받은 정주리 감독이 최근 광주극장의 보존을 위해 챌린지 영상을 찍은 것을 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6ARhVTdPs
"저는 광주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 커다란 스크린에 한 줄기 빛이 쏘아지고 엄청나게 큰 그림판이 움직이는 그 경험, 그것은 단관극장만이 줄 수 있는 영화적인 체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극장, 광주극장. 여러분 꼭 지켜주셔야 되요! - 정주리 영화감독"
https://www.wegive.co.kr/shop/donationProduct/0000000390
'위기브(wegive)' 사이트에서 광주극장에 기부하면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 한우 김치 광주극장 이용권 등의 무료 답례품을 받는 혜자스러운 기부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광주광역시 동구가 광주극장을 보존하고자 고향사랑기부제라는 제도를 통해 이를 지원한다고 한다.
https://dailian.co.kr/news/view/1292644
직장인이라면 10만원 기부하고 13만원 돌려받는 이 기부에 참여해 보자.
우리 시대, 무작정 경제 논리로 꼭 하나 존재했으면 하는 이 극장이 사라지지 않길 빈다.
광주극장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제목처럼 <버텨내고 존재하기>였으면.
100년 극장의 꿈이 구현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