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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환 Sep 11. 2016

개척한 에조치, 침략 당한 아이누모시리

홋카이도 공정여행 답사 - 2.

개척한 홋카이도, 침략 당한 아이누모시리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는 1869년에 일본에 편입된 지역으로, 상이한 주체에 따라 상이한 '기억(역사)'이 존재하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편입되어 본격적으로 개척되기 전 홋카이도는 아이누 민족이 살고 있는 아이모시리 또는 에조치라 불렸다.


신사 역시 와진들의 홋카이도 개척 시기에 이 땅에 자리잡게 된다, 홋카이도 개척촌

아이모시리는 '사람(아이누)이 사는 땅'이라는 뜻의 아이누어이며, 반면 에조치는 '오랑캐의 땅'이라는 뜻이다.홋카이도로 개칭된 것은 1869년 개척사가 설치되면서부터다.


메이지기 홋카이도 개척사가 설치되면서 이주한 둔전병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가옥, 홋카이도 개척촌

따라서 홋카이도로 이주한 와진(혼슈인)에게 홋카이도의 역사는 개척의 역사지만, 선주민족인 아이누 민족에게는 침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 '관광'으로 읽는 홋카이도, 조아라 중 일부


개척이란?

1.

거친 땅을 일구어 논이나 밭과 같이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듦. 예) 불모지 개척

2.

새로운 영역, 운명,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 나감. 예) 신문학의 개척


홋카이도 역사를 120만 년 정도로 규정하는 현재, 홋카이도 박물관

현재 일본은 홋카이도 역사를 120만년 정도로 규정하는데 홋카이도는 1869년에 편입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권력 투쟁에서 밀리게 된 동북지역인들은 홋카이도 개척사 설치 이후 북방경비외 개척 등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며 이주하게 된다.


당시 설립된 근대학교의 모습, 홋카이도 개척촌
당시 설립된 근대학교의 모습, 홋카이도 개척촌
당시 설립된 근대학교의 모습, 홋카이도 개척촌
당시 설립된 근대학교의 모습, 홋카이도 개척촌

이 때, 아이누에 대한 동화정책이 시작되고, 전통적인 풍습, 수렵, 어업 등이 금지되고 농업과 일본어를 장려한다. 아이누의 생활양식과 사회구조는 급격하게 붕괴하고 아이누에 대한 전방위적인 차별이 시작될 때, 조선반도가 겪었던 창씨개명, 내선일체 등과 같은 식민지배 정책은 이미 완성된다.


결국 일본제국주의는 아시아•태평양 친략 전쟁을 일으키기 전 식민지배에 대한 연습 혹은 적용을 오랫동안 교역해온 이웃에게 벌이고, 학습한 뒤였다.


홋카이도 최초의 탄광 가야누마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동원 된 장소이기도 하다), 홋카이도 박물관
홋카이도 개척 시 실시된 농경의 모습, 홋카이도 박물관

와진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홋카이도 개척은 농업, 임업, 석탄 등의 산업을 기반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던 동력이 되었고, 전후 해외 식민지를 모두 상실한 일본에게 합법적(?)으로 남겨진 식민지 아닌 식민지 홋카이도는 경제 재건의 역군으로 국가주도 경제개발이 이 땅에서 시작된다.


아이누의 입장에서 보자면 제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이후까지 그들은 침략 당한 역사를 살아내고 이제는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는 추세다.


"어렸을 적 어른들은 아이누어를 못 배우게 했어요. 주변으로부터 받을 뿌리깊은 차별이 두려워서였죠", 비라토리 쵸 아이누 민숙


윌리엄 박사 동상, 홋카이도 대학교
농학부, 홋카이도 대학교

"Boys Be Ambitious"라는 말을 남긴 윌리엄 박사(S.C. William)는 메사츠세추 농과대학 교수였는데, 홋카이도의 농업 개척의 일환으로 대학을 농업특성화 하기 위해 초청 받아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는 삿포로 관광의 상징으로 윌리엄 박사는 활용되는데, 그가 강조한 야망은 아이누가 아닌 와진인을 향했을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서부 개척 방식을 본 따 홋카이도 개척을 완성하기 위해 미국인을 초청했다고 본다.


누구에겐 개척이었고, 누구에겐 침략이었다.

관점의 차이는 놀랄만큼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홋카이도 개척기, 홋카이도 개척촌

일본 제국주의에게 조선은 개척지였다.

개척촌 곳곳을 거닐며, 등골이 다 서늘해 견디기 힘들었다. 성공한 개척은 현재로서 면죄다.


한국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근거없이 혹은 작위적으로 혐오하며 그려낸 100만부 가까이 팔렸다는, 만화 혐한류

일본은 의무적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다. 한일사를 거슬러오르면 끊임없는 교류와 침략의 역사로 점철된다. 진보하는 인류라면 공생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배우고 토론해야 할게 너무나 많다. 또 싸운다면 지금가진 무기 따위로 공멸일테다.


우리는 어떠한가, 자신있게 어떻다고 말할 수 있나.


역사를 경시한 민족의 후손은 과연 어떤 관점에서 놀아날까, 개척도 침략 당함도 아닌, 새로운 만남과 관계 맺음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함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낸 아이누의 모습, 가야노 시게루 민속 박물관
이 땅에서 살아낸 아이누의 모습, 가야노 시게루 민속 박물관

우리에겐 정의롭고, 한 편으론 진보하는 관점을 가질 의무이자 권리가 있다.


#아이누

#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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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박물관

#홋카이도 개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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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


1) 홋카이도 박물관 & 개척촌

일본 〒004-0006 Hokkaidō, Sapporo-shi, Atsubetsu-ku, Atsubetsuchō Konopporo, 53−2


2) 홋카이도 대학교

5 Chome Kita 8 Jonishi, Kita-ku, Sapporo-shi, Hokkaidō 060-0808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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