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서 경제로 성장해온 시선
아래에 나열한 세 가지의 사진의 등장인물 간의 공통점은 무엇일지 추측해보자.
영화 <암살>, <명량>, <군도:민란의 시대>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화배우 조진웅 씨, <무한도전> 박명수-아이유의 방송 분량에서 강력하게 인상을 남긴 작곡가 UL/재환 씨, 귀여운 매력으로 큰 사랑을 받은 영화배우 올라프씨(?). 과연 이 세 등장인물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바로,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유명세 혹은 큰 인기를 얻은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영화 업계에서 참 많이 쓰이는 용어인 신 스틸러는 직역하자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으로 주연보다도 더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치는 인물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대부분의 미디어 콘텐츠는 대부분 카메라 앵글에 따라 뷰(View)가 소비자에게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형태이다. 즉, 우리는 장면 하나하나를 주어진대로 소비하는 것이며 짧은 프레임안에 치명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최대한 파괴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수록 우리는 신 스틸러라고 표현한다.
본 텍스트에서는 조금 더 확장하여 시대를 막론하고 시선 스틸로 인해 형성될 수 있었던 경제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서양의 옛 모습에서 '시선'은 곧 권력이었다. 화려한 삶에 감추어진 불안한 권력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의 모습을 보면 철저히 대칭적이다. 원근법적 원리를 적용하여 루이 14세가 거하는 성이 소실점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도록 하여 대칭과 균형의 정점에 자신의 시선이 머물도록 하였다.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완벽한 구조의 시선으로 파악하고 느끼려 했던 것이었다. 심지어 이 시선 때문에 자신의 충신을 좌천시키도 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동전의 양면인 권력과 불안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의 원형은 보르 비콩트 성(Vaux-le-Vicomte)이다. 루이 14세의 재정을 담당했던 니콜라스 푸케가 지었다. 성이 완공된 후 열린 화려한 연회에 참석한 루이 14세는 보 르 비콩트 성의 원근법적 정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연회가 끝난 후,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한 루이 14세는 푸케를 체포하고 종신형에 처한다. 국왕만이 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선의 지배를 자신의 부하에게 허락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정운 지음, <에디토롤지(Editology)> p.163, 21세기 북스
역사적으로도 대부분의 왕정 체제의 고궁에서는 왕의 의자는 항상 높은 곳에 있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자만이 시선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임의의 조직에서의 '권력자'의 위치는 항상 행사장의 모든 상황을 시선으로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선의 권력이 화폐의 유통 및 자본주의의 시대로 접어듬에 따라 '시선의 경제'를 이루는 데 이른다.
근현대에서 가장 안정한 자산으로 평가받으며 화폐와의 가치교환이 빈번히 일어나는 '부동산'에도 사실 시선의 경제가 숨어있다. '조망권'이라는 명목으로 불리며 억대의 프리미엄을 형성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이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한강변 아파트나 빌라의 방향은 대부분 다 한강 쪽으로 가격도 엄청나다. 심지어 한강이 보이는 레스토랑이나 남산 타워 꼭대기에서 서울 야경을 감상하며 차를 한잔 하려고 해도 특별한 날에는 너도나도 앞다투어 예약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프리미엄이 붙어 값비싼 가격을 치러야 할 경우도 생긴다. 결국 사람들은 '시선'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광고(Advertisement) 시장도 역시 '시선'의 경제의 산물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 어디든 광고가 있으며 뉴욕 타임스퀘어, 한국의 강남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의 광고물이면 엄청난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큰 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WWW(World Wide Web)을 시작으로 한 웹의 시대가 도래하고 근래 들어서 모바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시선'의 경제 역시 개인의 5인치 남짓한 화면으로 스며들어왔다. 이미 성숙한 모바일 시장에서 증명되었다시피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물 수밖에 없는 메신저 앱(Whatsapp, KakaoTalk 등)과 SNS(Facebook, Instagram)의 킬러앱들은 사상 유래 없는 15억 ~ 20억 명의 시선을 빼앗으며 세계의 증시를 기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가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실제로 구글은 검색이라는 기술에 광고로 크게 성장한 회사이며 페이스북 역시 15억에 육박하는 사용자들을 기반으로 엄청난 광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DAU, MAU 등의 가치를 산정하는 활동적인 지표가 등장하고 리타게팅 광고가 성행하니 시선 강탈을 위한 치열한 전쟁은 매초, 매분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SNS 페이지의 좋아요(Like)의 개수를 사고 파는 시장이 형성될 정도니 가히 '시선의 경제'의 르네상스가 바로 모바일 시장의 성숙이 아니었나 싶다.
몇 년전 부터 유행한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자신의 삶의 한 조각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고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받지 못해서 불안해하는 것일 수 있다. '권력'에서 시작하여 '경제'까지 흘러온 '시선'의 강력한 힘. 이러한 시선의 힘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자가 더욱 많아지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