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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캣테일 Feb 18. 2023

사회 빼기 인문학

AI 시대에 인문학의 중요성을 외치다

  인문학. 학창 시절엔 이상하게도 암기 과목의 대표 격을 하는 단어. 그래서 듣기만 해도 지루해지는 단어죠. 하지만 인문학이란 개념에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 구성원의 기본 관념을 형성해 주죠. 윤리와 도덕관념을 키워주고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예의를 차리게 해 주며 타인을 배려하게 해 줍니다. 단순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주는 기초 학문이죠. 반대로 말해서, 인문학을 소홀히 하면 이러한 윤리 기반이 흔들립니다. 사회는 사람들의 윤리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므로, 인문학을 소홀히 하면 사회 전반이 흔들린다는 말도 되지요.


https://www.khan.co.kr/national/media/article/202302171721001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달군 화제가 있습니다. 바로 유튜브 채널 콘텐츠 표절입니다.

  지금까지 표절이 논문, 그림, 영화 등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조금 더 커다란 영역에서 벌어졌다면, 이번에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여파가 더 큽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창작물로 수익을 노릴 수도 있어서 더욱 질이 안 좋죠. 여기에 사용된 기술이 바로 AI, 요즘 열을 올리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입니다. AI를 사용하여 유튜브 콘텐츠를 복사하여 살짝 재가공만 해서 올린 것이죠.

  만화나 애니메이샨과 같은 서브 컬처가 발달한 트위터에서는 몇 달 전부터 그림 AI가 크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림 AI란 사용자가 원하는 상황이나 구도를 넣으면 그림을 생성해 주는 방식인데, 여기에 누군가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해 AI를 학습시키고, 그 사람 특유의 화풍으로 그림을 생성해 내고는 마치 자신이 그린 것처럼 올렸기 때문이죠.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서브 컬처 창작 사이트 중 하나인 픽시브에서는 이러한 AI 그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AI 태그를 따로 만들어서 순수 창작물과 섞이지 않게 조치를 했죠. 더욱이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냐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웃기도 합니다. 참 못된 사람들이죠.

  표절은 두말할 것 없이 나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표절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조금 더 깊게 파고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무언가의 표절로부터 시작된 것이므로 그 어떤 것도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요. 하지만 적어도 미안해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표절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것도, 표절이라는 행위의 결과가 너무나도 추상적이기 때문이죠.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오면 사람들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표절이 아닌 거 아니야?

  2022년 화제를 불러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ATM 기계에 도입한 특허 여부를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인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기술 도용이 아니라고 너무나 당당하게 주장하는 의뢰인과 달리 조사하면 할수록 기술을 도용, 그러니까 표절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게 되죠. 에피소드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끝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긴 하지만요. 이제 도용과 표절을 창피해하지 않는 사람이 드라마에서만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세태가 도덕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도덕은 인문학의 한 분야죠. 크게 보면 인문학 교육의 부재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지켜온 사회 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죠. 고리타분한 사회 질서가 자신들을 얽매는 악이고, 그걸 부수는 자신들을 히어로라고 여기며 피카레스크 소설의 주인공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처럼요.

  사실 도덕관념의 부재는 AI보다 훨씬 이전, 그러니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던 사안입니다. 그때는 자기들끼리 모여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제는 사회 관념에 통용되지 않는 생각과 발언들이 폐쇄적 공간을 떠나 개방된 공간으로 나오고 다른 사람의 경제적인 문제에까지 침투했습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929500047&wlog_tag3=naver

  앞으로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될 텐데, 우리나라의 인문학 인식은 좋지 않습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으니 투자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이겠죠. 이러한 예산이 우리나라 인문학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겠지만, 전반적인 방향성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성은 위에서 말했듯 "인문학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문제들과도 일맥상통하죠.

  저는 늘 말합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인문학과 과학이라면, 뼈대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고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것이 과학이라고요. 뼈대는 인테리어에 가려지면 보이지 않아서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지만, 뼈대가 약하면 제아무리 화려한 인테리어를 해도 눈속임에 불과하다고요.

  과학 기술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고 제동을 걸어주는 것이 인문학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브레이크가 망가졌습니다. 망가졌지만 그 누구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지금 과학 기술이 주목하는 과학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할 겁니다. 하지만 인문학이 제 역할을 못하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문제점 또한 하루가 다르게 많이 생길 겁니다. 적어도 사람의 "기본"은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인문학 교육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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