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부터 ‘엑시트’까지. 2019 한국 영화에 소위 ‘사기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누군가는 사기 캐릭터의 등장이 ‘부의 엄청난 격차에 비해 사람들의 능력은 그만큼 큰 차이가 없는 지금 이 시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나, 과연 이들의 능력이 ‘사기’라고 부를 만큼 그렇게 엄청난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사기캐 : 만화 또는 게임 등에서 다른 캐릭터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생충’의 박소담과 최우식은 영민한 두뇌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게 ‘사기’인 정도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이들은 그저 처한 ‘상황’에 비해 똑똑하기에, ‘사기 캐릭터’라고 명명된 것이다. ‘엑시트’의 조정석, 임윤아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에서 탈출하기는 했으나, ‘산악 천재’ 정도는 아니다. 백수, 컨벤션 센터 직원이라는 상황에 비해 의외인 산악 능력을 가졌기에 ‘사기’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기 캐릭터’가 된 이유는, 결국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평균 이상의 능력을 지녔음에도 그를 발휘하기보다 기존 시스템에 편입된 것이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자’ ‘직장인’ ‘공무원’이 아닌 삶은 여전히 위험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외의 ‘다른 삶’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최우식이 끝끝내 대학입시에 도전하는 대신 화려한 언변으로 유튜버를 했다면? ‘엑시트’의 조정석이 취업하기보다 과감하게 산악인의 삶을 택했다면? 그랬다면 이들은 본인이 빛날 수 있는 곳에서 더 행복하게 살지 않았을까.
결국 위의 영화에서 '사기캐'가 탄생하는 현상은, 천재들이 천편일률적인 시스템으로 편입돼야 하는 현실 세태를 담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요즘 아이들’은 그래도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장래희망이 30년 전 ‘과학자, 의사, 교수’이던 것에 비해 최근 ‘요리사, 운동선수, 유튜버’ 등으로 훨씬 다양화됐다. 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다양한 직업에 훨씬 더 열려있다. 제도보다 바꾸기 힘든 것이 인식이다. 이들이 유튜버에 보이는 관심은, 진짜 유튜버가 되지 않더라도 그만큼 긍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인식이 다양한 직업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르면, ‘엑시트’의 조정석 같은 장기 백수가 보다 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보다 다양한 인재 양상이 받아들여지는, 이들이 더 이상 ‘사기캐’로 불리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